북측이 16일 개성공단 내에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습니다. 6.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 다음날입니다. 남북이 공동행사는커녕 독자적인 행사조차 변변찮게 치르지 못해 6.15선언 20주년을 가뜩이나 침울하게 보낸 터에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소식은 남북의 진로를 어둡게 만듭니다.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은 2008년 6월 북한이 6자회담의 재개에 앞서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연상시켰습니다.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은 북미 간 핵대립과 불신의 상징물이었는데, 그 냉각탑이 폭파됨으로써 당시 북미 간 불신이 한순간에 날라 간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순간이었지요. 그렇다면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북측은 남측에 두 가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는 북측이 입에 달고 다니는 ‘우리는 빈말하지 않는다’는 금언(?)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앞서 김여정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경고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실행에 나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측에 ‘단절’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이 앞의 담화에서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고 밝혔는데, 역시 이를 지체 없이 실행한 것입니다. 공동연락사무소를 이벤트 하듯 ‘폭파’한 것은, ‘폭파’를 통한 ‘단절’인 셈이지요. 게다가 그 폭파대상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어떤 것입니까? 4.27판문점선언의 결실 아닙니까? 결국 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는 4.27판문점선언의 파기이자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일말의 파탄을 의미합니다. 이제 남측에 기대할 게 없다는 강력한 표시이지요.

이 파탄이 어디까지 갈까요? 북측은 추가조치도 예고한 상황입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16일 공개보도를 통해 “북남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북남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라 하면 일차적으로 개성공단 지역이 떠오릅니다. 개성공단이 들어설 때 북한군이 뒤로 물러섰다는 얘기가 나돌았으니까요. 개성공단이 철거되고 이 자리에 북한군이 재주둔하게 된다면 이는 문재인 정부 이전인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2000년 6.15선언 시대 이전으로 역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네 번 만났고,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선언 등 두 개의 의미 있는 합의문을 도출해냈습니다. 두 개 합의문은 당연히 지켜야 하고 또 지켜져야 합니다. 내부 사정이 있고 또 외세의 입김이 있다손 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측과 북측의 계산법이 달랐습니다.

이번에 빌미가 된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만 보더라도 그렇고, 남북이 하고자 하는 일은 매번 한미 워킹그룹에 의해 막혔고, 게다가 남측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비핵화 문제는 주지하다시피 북미 간 ‘하노이 노딜’로 끝났으니 말입니다. 남측은 할 데까지 했는데 안됐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북측이 보기엔 하나도 된 게 없으니까요. 오죽하면 북측은 최근 남측을 향해 “늘 뒤늦게 설레발을 치”고, “번지르르하게 말보따리만 풀어놓”고 “말이야 남쪽동네 사람들만큼 잘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하고 조롱할 정도였으니까요. 남측은 말로만 하니까 북측은 실천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엄하게 한 수 가르쳐 준 것입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통해 북측에 유감 표명과 함께 강력 대응을 밝혔지만, 이 상태에서 멈춰야 합니다. 북측의 행위가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가 봐도 남측이 부족했고 안일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뼈아프지만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남북 간 신뢰가 함께 날라 갔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4.27선언과 9.19선언을 차분히 이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구축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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