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 KAL858기 사건 연구자

 

▲ 지난 3월 31일 공개된 외교부 KAL858 문서. 2,000쪽 정도에 달한다. 

“내가 알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들은 모를 테니 그냥 지나치자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나를 속일 수 없다고. 그래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영화 <감기>에 나오는 말이다. 2013년에 나온 이 영화는 지금 계속되고 있는 감염병 위기와 관련해 외국에도 몇 번 소개되었다. 내가 보기에 탈식민(미국-한국, 서울-지방) 관점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외교부가 30년이 지난 문서들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KAL858기 관련 자료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규정에 따라 문서를 공개한 외교부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연재는 원래 4월부터 하기로 했지만 감염병 위기와 관련된 상황으로 일정을 갑자기 늦추게 되었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글을 어서 써야 한다는 마음을 속일 수 없었다. 그러면서 ‘갑작스레 찾아온 불확실함’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감염병 위기도 그렇지만 KAL기 사건도 그렇지 않냐고. 33년 전 갑자기 사라진, 그리고 지금까지 불확실함이 이어지고 있는.

외교부, KAL 관련 2,000쪽 정도 공개

3월 31일 공개된 외교부 KAL858 문서는 2,000쪽 정도로, 그 일부는 2016년 개인적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열람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기록에 포함됐었다. 당시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직접 생산한 자료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외교부 등이 보내온 자료는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시간 제한, 그리고 특별히 대단한 내용은 아니라는 판단 등도 작용했다. 어찌됐든 이번에 공개된 문서를 지금부터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려 한다.

가장 주목되는 자료 가운데 하나는 당시 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작성한 사고조사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1987년 12월에 작성되었는데, 구체적 날짜는 내용상 12월 23일에서 31일사이로 추측된다. 시점이 중요한데 이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수사보고서 1988년 1월 및 버마(미얀마) 조사보고서 1988년 2월에 앞선 것이다. 인도 조사보고서 작성일자도 1987년 12월 23일로 빠른 편이지만 보고서 자체를 놓고 보면 교통부 자료가 훨씬 중요하다. 다시 말해 교통부 보고서는 시기와 내용 측면에서 특별히 관심이 요구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바레인 수사보고서는 주로 폭파범으로 지목된 김현희와 관련된 것으로 작성일자는 1987년 12월 31일로 알려진다.

교통부, 폭파검사 없이 폭파로 추정 결론

교통부는 보고서에서 비행기가 “폭발물에 의해 공중폭파 되면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결론 낸다(2016070060, 31쪽). 근거는 “수거잔해 물품에 대한 1차 상태확인 검사결과 및 유력한 용의자... 확보 등 실종사건의 주변 정황”이다. 그런데 기체가 폭파되었다고 말하려면 폭파와 관련된 검사를 해봐야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교통부는 이러한 검증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구명보트에 내장되어 있던... 수동펌푸는 완전파손되었으며... 기타 내장품들도 상당부분 파손된 것으로 보아... 또한 구명보트의 위치는 전방 객실상부에 장비된 것으로서... 바다위에서 발견된 점 등으로 미루어... 공중 폭발된 것으로 추정됨”(29쪽).

폭파와 관련된 검사가 중요한 이유는, 특히 구명보트 위치가(수사결과에 따랐을 때) 폭탄이 설치됐던 곳과 비교적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곧, 김현희 일행의 좌석은 7B와 7C로 기체 앞쪽인 “전방객실”과 아주 멀지는 않았다. 따라서 위의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폭파 관련 검사가 있어야 했고 그러한 검사를 할 수 없었다면 “추정”은 하되 결론에 적시하지 않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통부는 그 추정을 결론에 넣었고, 나아가 이 사건은 “테러에 의한 폭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현재 관계수사당국에서... 원인이 규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32쪽).

결국 교통부는 실종 직후부터 사건을 북의 테러로 규정지었던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국정원)와 청와대 입장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교통부가 압력을 받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다. 핵심은, 결론의 내용을 떠나 보고서가 과연 책임 있는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느냐는 기본원칙의 문제다.

참고로 2018년 11월 29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현 국토부 관계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안기부가 워낙에 이걸 가지고 테러라고 규정을 해버리고 국정원에서 직접 조사라든가 그런 걸 다하다보니까 사실은 그 당시 국토부에서는 전혀 이걸 개입을 못 했던 것이죠.”

실종 전에 있었던 엔진 개조작업

그리고 잘 알려졌듯, KAL858기는 실종되기 전에 미국에서 수리를 받았다. 기간은 1987년 10월 13일부터 11월 10일까지 4주였다. 참고로 이 사건을 재조사했던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원회)는 수리 마지막 일자를 단순한 실수인지 모르겠으나 11월 8일이라고 했다(<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448쪽).

▲ KAL858기가 실종되기 전 수리를 받은 곳으로 알려진 미국 공장. [캡처-www.Air-and-Space.com]

수리작업은 당시 캘리포니아주의 산타바바라에 있었던 관련 업체가 맡았고(TRACOR CO.), 목적은 엔진에 소음경감장치를 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엔진 4기에 대한 전반적인 성능시험결과 정상”으로 나왔다(2016070060, 26쪽). 이 가운데 오른쪽 날개 안쪽에 있던 3번 엔진은 미국에서 수리받기 직전 교체된 듯한데, 영문보고서에 따르면 장착시기(Date installed)는 10월 3일이다(13쪽). 나머지 엔진들은 그해 1월과 7월에 장착됐다.

해당 미국업체는 텍사스에 본부를 두고 있었고 1985년 미 정부와의 계약 관련된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그 뒤 재정적 어려움으로 1986년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Diana J. Kleiner, "TRACOR"). 이 업체의 이름 및 관련 내용은 <월간조선> 2002년 1월호를 통해 처음 알려진 듯하다. 당시 기사는 안기부 수사관계자와 국정원 현직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한편 수리장소는 산타바바라 공항 동북쪽에 자리했던 업체의 공장으로 보인다(United States General Accounting Office, "Aircraft Maintenance", 26쪽 ; Bill Hough, "Santa Barbara in the early 198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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