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김정은 위원장 ‘건강 위중설’은 역시 가짜였다. 비례해 대한민국 사회는 고스란히 그 민낯을 드러냈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태영호·지성호(탈북자 국회의원 당선인)와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적폐언론, 혹은 그에 기생해있는 반북 지식인들 탓만 하면 될까? 아니다. 보다 우리 사회가 ‘북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동반되지 않으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과제임이 명확해졌다. 해서 이 글은 다시 한 번 이런 사달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북 바로 알기’가 보다 체계적이고 대중적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나가는데 조그마한 부싯돌이 되고자 한다. / 글쓴이 주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들어가기에 앞서: 우린 이번 ‘김정은 건강 위중설’ 사태를 어떻게 교훈화 할 것인가? 
   ②북의 수령정치작동방식: 현지지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5/8)
   ③북은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가능한가?(5/15)
   ④북의 후계승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5/22)
   ⑤북의 급변사태는 과연 가능한가?(5/29)

 

기억을 되돌려보자. 2018년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은 기사 하나를 내보낸다. 기다렸다는 듯이 국내 보수수구언론매체들은 이를 집중 조명해준다. 전형적인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패턴이다. “김정은 대신, 김평일 옹립”, 제목은 그러했다. 

김평일은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 김성애의 장남이자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는 삼촌이다. 김정일과의 후계과정에서 밀려난 이후 수십 년간 해외에 체류한다. 1998년부터 17년간 폴란드 대사를 지내다 2017년 2월 체코 대사로 부임, 2019년 당해 연도 북으로 귀환했다. 출생년도는 1954년이다. 

그 망령이 또 부활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위중설’과 맞물려 체제이탈자 태구민은 “김여정은 애송이… 김평일 주목해야(4월 23일)”로 다시 북 후계체제를 건드렸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등장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위중설’이 너무나도 명명백백하게 ‘가짜’임이 드러나자 김정은 위원장과 관련한 오보의 진원지였던 <CNN>은 다시 "김여정 후계자 가능성”을 집중보도(2020.5.3.,현지시각)했다. 당연히 국내 수구보수 언론매체들은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대서특필해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이들은 또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절대 그들이 원하는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매번 그렇게 틀리면서도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들의 대북 인식적 DNA능력이 북 체제는 반드시 붕괴해야 된다는 소망적 기대, 혹은 지금의 북 권력체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광신적 믿음체계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참으로 불쌍하다.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절대 좋은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쓸데없는’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는 북에 대한 잘못된 정 보로 인해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서 막대한 장애가 생기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남남갈등이 생기고, 정치권 차원에서는 소모적인 논쟁이 생겨 늘 실체 없는 유령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독재와 억압을 넘어 촛불시민국가로, K-방역으로 표징되는 포스트 코로나의 모범국가로 전 세계에 우뚝 섰다. 또 북은 북대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경제력과는 상관없이 핵보유를 통한 전략국가로 발돋움시켜냈다. 두 국가(민족)의 위상이 그렇게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들만은 여전히 1970년대 인식에 포박당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시간 여행자’로만 방황하고 있으니, 이 어찌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따져 보건대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들의 집권기간이 DJ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 10여년을 제외하고 나면 그들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근 60여년을 지배해온 저력 있는 정치세력이고 집단이었다. 그런데도 북에 대한 인식(특히, 북 체제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여전히 1970년대의 유신인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니, 더 상징하면 북과 관련한 이들의 인식능력이 주술공화국의 신권나라에서나 있을법한 대북인식능력과 정확히 비례하고, 맹신으로 북 체제멸망과 후계문제를 자신들만이 인식하고 싶은 대로만 인식하고 싶은 후진성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니, 이는 마치 썩은 동아줄이건만, 여전히 이 동아줄을 자신들의 희망이자 이를 여의주인양 숭배하는 어리석음이다. 

결과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국정운영능력이 ‘이것밖에 안 됩니다’를 고백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고, 무능도 이런 무능이 없고, 낡고도 후진적인 정치적 감각도 이보다는 더하지 못한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위중설’이 가짜임이 판명되고 나서도 정치적 성찰대신, 되려 얼토당토하지 않는 ‘2인자 김여정’이라는 시리즈2를 들고 나온 것은 그 정점이다. 

즉, 북의 유일체계와 지도체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구축되어있는지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바탕 하에서 제대로 된 팩트 체크를 할 생각은 전혀 없이 여전히 김여정(중심의 집단지도체제), 혹은 김평일로의 권력승계 운운하며 자신들의 과오를 덮으려만 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그러면 그럴수록 더 분명해지는 것은 그들의 그러한 소망과는 달리 그들의 무지는 더 드러나고, 60여 년 동안 소중한 국정운영능력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몰락은 그렇게 현재진행형(~ing)이고, 시작부터‘바보스러운’그들의 제2라운드는 그렇게 그들을 옥죈다. 해서 제3편과 마찬가지로 대신, 답 준다.  
 
1. 이론으로서의 후계자론 

① 기본특징

북에 있어 후계 승계문제는 자본주의, 일반 민주주의체제에서 접근하는, 혹은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소망적 접근-절차로서의 권력이양·통치권 선출문제-과는 달리, 혁명의 근본문제인 수령의 영도권과 후계자의 지도권을 함의하고 있는 그런 문제로 북 스스로는 인식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사상이론화한 것이 자신들의 유일한 사상적 좌표인 주체사상의 한 구성부분으로 체계화한다. 

주체사상 총서 10권중 9권(영도체계)과 10권(영도예술)에 기초한 '주체의 후계자론' 정립이 그것이고, 그 내용을 함축하면 북의 후계문제는 핏줄로 세습되거나 절차적으로 선출되는 그런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후계자는 수령의 혁명업적과 노선을 그대로 순응하여 승계되는(순응승계) 정치기제로서의 혁명 근본문제라는 것이다. 

설명하면 이렇다. 후계자는 핏줄에 의해 후계자가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그런 세습의 문제가 아니라, 핏줄이든 핏줄이 아니든 상관없이 후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강조, 필자)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 결정을 이뤄내는 유일한 기준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김정일과 김정은에 연동하면 김정은이 김정일의 핏줄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김정은이 후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췄느냐 아니냐가 보다 본질적인 문제였고, 포스트 김정은 이후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② 구성과 내용 

첫째, 제1 요건은 뭐니 뭐니 해도 수령에 대한 절대 충실성이 그 기본이고, 

둘째, 제2 요건은 수령에 의해 개척되어온 혁명전통(수령의 혁명업적과 노선)을 충실하게 계승, 발전시켜나갈 신념과 의지가 분명히 있어야 하고, 

셋째, 제3 요건으로는 위 둘(첫째, 둘째)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사상·이론적 예지와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덕성의 소유자여야 한다. 

바로 이 세 가지 요건을 and적으로 갖춰내어야만 수령의 후계자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자격요건이 갖춰진 후계자는 비로소 수령에 의해 지목되어 이후 전체 인민대중에 의해 만장일치로 추대되어 수령이 된다.

③ 구현방식 

첫째, 위 자격요건을 갖춘 후계자는 그들 스스로 집대성한 ‘주체의 후계자론’에 의해 인물본위의 원칙으로[후계론이 아니라 후계자론(강조, 필자)임에 반드시 착목해야 한다], 

둘째, 선대수령에 의해 후계자가 보증되고, 당과 그들의 주체혈통을 가장 잘 집적시킨 항일빨치산 세대 및 혁명유자녀 세대들의 충성맹세 되고,  

셋째, 선대 수령들의 정책과 노선을 100% 그대로 계승한 순응승계방식을 거쳐,

넷째, 공산주의 후계 승계과정의 학습효과 및 김영주의 예에서 확인받듯이 선대수령과는 반드시 한 세대 아래인 세대교체의 원칙이 구현되어, 

다섯째, 수령의 정치·사상적 혈통 "사상적 순결성", 이름 하여 주체의 혈통을 보다 강화되어지는 방향으로(유일사상체계와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후계자 중심의 강한 정통성을 확립하고, 인민들의 만장일치로 추대되어 수령이 된다.

2. 실천적으로 검증된 후계자론 
- 김평일이든, 김여정이든 절대 후계자가 될 수 없다

그래놓고 실천적 검증을 한번 해 보자. 김평일과 김여정를 대입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즉 북의 후계문제를 위 ‘1. 이론으로서의 후계자론’과 같이 이해했을 때 위 두 인물은 절대 후계자가 될 수 없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근거는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절대 불가능해서이다. 그런데도 계속 그런 정치적 주장을 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거나, 둘째는 정말 몰라서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일 것이다. 

동시에 또한 전제해야 할 것은 북에서 말하고 있는 수령은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말하고 있는 그 어떤 정치 리더, 즉 정치지도자를 뽑거나 선출하는 그런 개념이 절대 아니다. 달리 말하면 국가주석이나 국무위원장을 뽑는 그런 정치행위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놓고, ①북의 후계자론에 근거했을 때 왜 김평일이 후계자가 될 수 없는지는 아래와 같다.  

첫째, 수령은 교체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계자에 의해 승계되어 ‘승계순응’의 법칙에 따라 전체 인민의 의사로 집약, 옹립되어지는 원리이다.  즉, 후계자가 정해지고 그 후계자가 수령에 의해 후계수업을 거쳐 수령의 사상과 혁명노선, 혁명업적을‘그대로’승계하는 순응절차다.

하지만, 김평일은 이런 후계자 수업을 절대 받은 적이 전혀 없다. 수십 년 동안 해외에 머물다(대사 등) 2019년 65세가 되어서야 귀환했다. 

둘째, 차기수령은 선대수령에 비해 한 세대 아래에 해당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음을 위 ‘1. 이론으로서의 후계자론’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한 세대 아래’라 함은 통상 30년 내외를 가르친다. ‘~대를 이어’는 그 정치적 함의이다. 

결과 지금의 수령(3대, 김정은)은 김정일 수령(2대)보다 한 세대 아래였고, 포스트 김정은 이후 수령도 김정은보다 한 세대 아래여야 되는 것이다.

왜 그럼 북은 한 세대 아래로 하는 후계자 선정 원칙을 가졌을까?

그 이유는 어렵지 않다. 국제공산주의 정치운동사가 보여준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북은 이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다음 수령을 뽑을 때 당대 수령과 같은 연배에서 추대하게 되면 비례하여 그만큼 후계자 추대를 짧은 기간에 자주 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그만큼 안정된 영도를 보장하기 어렵게 되어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확고히 계승하는 데 있어 많은 차질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즉, 자주 수령이 교체될 경우 영도체계가 확실하게 서있지 않는 조건으로 인해 영도가 일시적이나마 중단될 수 있으며, 그 틈을 타서 권력쟁탈이 발생되고 나아가서는 영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는 총화가 그것이다. 

1950년대 초 스탈린 이후의 소련, 1960년대 말 호치민 이후의 베트남, 1970년대 말 마오쩌둥 이후의 중국, 1980년 티토 이후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을 북은 너무나도 똑똑히 반면교사 했다. 그러니 차기 수령은 반드시 다음 세대에서 선출하는 원칙을 확립할 수밖에 없었다.(이 내용을 보다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본인의 졸저, <수령국가> 참조)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김평일은 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김정일과 같은 연배 세대이다. 해서 3대 수령자격이 원천적으로 없는 것이다.(물론, 북이 수령제 사회주의체제를 포기하고, 쿠데타에 의한 정변 등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예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지난 번 글, “북은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가능한가?(5.15)”에서 확인받듯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해서 김평일이 절대 수령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② 그럼 김여정의 경우는? 이 역시 불가능하다. 불가능 증명 또한 어렵지 않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김정은과는 동세대라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김정은의 후계자가 김여정이 될 수 없음은 금방 알 수 있다. 세대교체의 원칙에 분명 어긋난다는 것이다.(위, ‘둘째’ 참조) 과거 김영주와 김정일의 비교를 통해서도 쉽게 이해된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급사(병사)라도 한다면 ...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라고. 하지만, 상상력은 상상력일 뿐 현실과는 영 다르다.(이는 마치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듯이 후계문제 또한 가정법이 성립하지 않는다.) 
우선은, 후계자는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수령에 의해 내정되어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되어 있다. 실제 발현양태도 아래 ‘3. 포스트 김정은 이후, 그 이행방식은?’에서 확인받듯이 조선로동당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유일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군·정’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방식이다. 했을 때 이 과정은 지금의 시점에서 시간의 호흡문제가 아니다. 

다음으로는, 예외변수(급사, 병사 등)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나이로 볼 때 북의 후계문제는 2-30년 뒤의 문제임이 확인된다. (당장 급박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설명은 아래 ‘3. 포스트 김정은 이후, 그 이행방식은?’에서 충분히 밝힌다. 

뿐만 아니라, 김여정이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수 없는 결정적 요인은 세대교체의 원칙에 절대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백번양보 해 위 반론 문제의식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 인물이 김여정이어야 한다면 그 증명은 반드시 사상·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름 하여 왜 김여정인가 하는 문제가 자질과 능력문제로 검증되어져 ‘주체의 후계자론’에 부합해야 한다는 말이다. 

해서 결론은 분명해진다. 김평일이든, 김여정이든 이들은 절대 포스트 김정은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이들을 그렇게 인식한다는 것은 여전히 북의 후계문제를 핏줄 세습이라는 후진적 인식에서 한 발짝도 못 나아가고,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과 똑같다. 

3. 포스트 김정은 이후, 그 이행 방식은? 

이제 그 결론 부분이다. 북의 체제특성상 김정은 위원장이 자연수명에 이상이 없는 한 향후 50년 이상 집권은 가능하다. 2020년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50년 뒤면 2070년이고, 그 때 그의 나이 88세이다.(84년생으로 기준하면 86세이다.)

그러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나이는 아니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앞당기더라도 2060년까지, 즉 앞으로 40년 정도는 가능하다.(그의 나이 78세, 혹은 76세이다.)

그래놓고 봤을 때 김정은이 설계한 향후 40-50년은 2016년 개최된 제7차 당 대회를 기준으로 1기와 2기의 모습으로 구분된다. 

먼저, 1기 때의 북의 모습은 사회주의 문명국가로 진입시키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북은 핵보유를 통해 전략국가의 위상을 확보하고, 이 힘으로 미국의 적대정책을 완전 종식시켜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안으로는 경제총력 집중노선으로 서구 선진국 수준의 인민생활향상을 내올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유훈으로 남겨져 있는 연방통일국가 추진의 1단계에 해당되는 민족공조 완전회복을 꼭 이뤄내려 할 것이다.  

다음으로, 2기에 해당되는 김정은 체제는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을 선포하는 것일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핵이 있는 상태에서의 평화체제를 넘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과 함께, 실질적 의미에서의 연방제통일국가 달성을 이뤄내려 할 것이고, 안으로는 사회주의 강성국가로 표징되는 사회주의문명국가를 달성해 최종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선포하려 할 것이다. 또한 수령의 가장 큰 책무인 후계체제 완성을 통해 제3기 수령체계를 완전 구축하려 할 것이다. 

했을 때 김정은 이후 제3기 후계체제 구축문제는 김정은 시대의 1기 과정이 끝나고, 제2기 체제가 시작되는 그 시점에서 출발하여 논의될 수 있는 그런 사안이다. 그러니 지금 한참 1기가 시작되고 있는 지금의 이 상황 하에서는 아주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정치적 상상력일 뿐이다. 

또한 필자가 점술가가 아니니 그 정확한 시기 연도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예측해 볼 수는 있다. 여러 정치적 맥락으로 볼 때 적어도 1기 때의 혁명적 과업정도가 일정정도 해결되고, 2기가 시작되려 하려는 시점에서 후계문제는 사상·이론적 접근과 정치적 해결과정을 거쳐 후계자 중심의 유일지도체제가 수립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래 표는 그 바로미터이다. 

김정일은 1973년 9월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 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조직지도부장 겸 조직비서, 선전선동부장 겸 선전비서의 자리에 않게 됨으로써 후계자로 추대 내정되고, 1974년 2월 노동당 정치국 위원이 되면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확정되는 유일지도체제가 확립되게 된다.  

이후부터 김정일은 그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유일’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갖고 북한 사회를 수령제 사회주의로 만들기 위한 사상, 조직, 제도적 측면에서의 후계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 대미 장식이 1980년 10월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6차 당 대회였다. 이른바 김정일을 위한 당 대회였고, 이 과정에서 김정일은 제6차 당 대회의 준비, 진행을 전적으로 주도한다. 또한 자신도 이 제6차 당 대회를 통해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 당 중앙위 군사위원회 군사위원에 선출된다.

이른바 ‘혁명의 수뇌부’ 또는 ‘최고수뇌부’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1970년대에 유일지도체제를 완결지은 김정일이 제6차 당 대회를 통해 후계자로 대내외에 공식화되고, 이로써 북한은 안정적으로 후계체제 구축을 끝내게 되어 이때부터, 즉 1980년 이후부터 김정일은 당, 군, 정권 전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고, 모든 사업도 후계자 김정일 위원장의 정치적 방침(지도)에 따라서 이뤄지게 된다.(이 내용을 보다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본인의 졸저, <수령국가> 참조)

이렇게 김정일 위원장의 사례가 밝혀주고 있는 바와 똑같이 포스트 김정은 이후도 똑같은 이행경로와 이행과정을 거쳐 가려 할 것이다. 연도도 대략 2040-50년 이후이다.(김정은 위원장의 급사, 병사에 의한 수령승계문제도 본질적으로는 시간문제가 될 수는 없다. 누가 더 수령이 될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가 더 본질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김일성 주석은 1984년 4월 11일 당시 정치국 위원이었던 허담과 대화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나라 대표단들을 만나 담화를 하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 동지가 나에게 준 분공입니다. 그는 나에게 힘든 일은 자기가 다 맡아서 하겠으니 쉬엄쉬엄 다른 나라 대표단과의 사업을 하여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당적 분공으로 생각하고 다른 나라 대표단들과의 사업을 맡아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72세였다. 그리고 1974년에서 시작된 김정일로 후계체제 구축이 1980년 제6차 당 대회를 거쳐 완성되었다고 했을 때 1984년의 위 대화는 수령에 의한 후계자의 후계수업이 대략 16년에 걸쳐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또 추론해줘야 할 것은 포스트 김정은 이후의 후계자 문제가 어쩔 수 없이‘후계’속도전으로 이뤄졌던 김정은 방식보다는 김정일로의 후계승계방식이라는 매우 정상적인 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후계자 중심의 유일후계체제가 구축되고, 후계자의 정상적인 지도권 발동시점이 위 김일성의 발언에서 확인해볼 수 있듯이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들의 삶의 문제, 경제문제에서 완전 손을 떼고 일상적 외교문제에 집중할 시점정도가 그 타이밍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경험적으로도 이는 1980년대가 그러하였듯이 이미 모든 일이 김정일의 결심에 따라 진행됐고, 국가의 중대사조차 김정일의 발기로 진행되는 일이 매우 잦았음에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김일성은 김정일이 제출한 안건과 의제를 추인해 거기에 무게를 실어주는 일을 담당했다. 그렇다하여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김일성 주석이 아무런 권위나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논리화하는 것이다. 

그 힌트가 체제이탈자(탈북자) 신경완의 증언에 있다. “실무적인 일들은 김정일 위원장 대부분 처리했다. 김정일이 이미 모든 일을 아무런 문제없이 완벽하게 처리하고 있었던 까닭에 김일성 주석이 굳이 나서서 참견할 일이 없었다. 국가의 중대사까지도 차세대 수령인 김정일이 매끄럽게 잘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해도 김일성 주석의 권위를 손상시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후계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해 혁명과 건설을 더욱 다그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치적으로 삼을 만한 일이었다.(강조, 필자)”

이는 또한 앞서 얘기했듯이 수령의 가장 큰 책무가 혁명의 대를 이어주는 것이라 했을 때 그 핵심은 후계자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다. 그 걸 신경완의 증언‘후계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해’가 증명해준다. 

즉,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전반적인 국가·당 사업은 김정일이 관여하고, 외교와 ‘잘 안 되는 분야’는 김일성 주석이 직접 챙기는 그런 형태로 영도와 지도권의 권력분점이 수반되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수령과 ‘미래’의 수령(후계자)이 권력분점(영도와 지도의 문제)을 그렇게 정리했다는 말이다. 

김일성 주석이 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도 이 부분을 이렇게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정일 조직비서가 나의 사업을 많이 대신해주어 어느 정도 짬을 얻게 되었다”고 쓰고 있고, 또 김일성 주석이 마지막 순간까지 완전히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으로는 김일성 주석이 계속하여 외교사절을 만나거나, 경제 분야의 현지지도도 계속했다. 서거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에도 경제 지도협의회를 열고 당면한 식량난과 경제 위기 타개책을 토의할 정도가 아니었던가? 

이상으로부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김정은 이후도 이 시간표를 따라 후계문제가 잘 해결되어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연동해 설령 급사, 병사 등에 의한 비상한 시기도 기본적으로는 ‘후계’속도전으로 이뤄졌던 김정은 방식으로 후계문제가 해결되어 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분명 그렇게 ‘후계’시간표는 짜여 질 것이다.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평화교육)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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