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숲으로 된 성벽 
 - 기형도  

 저녁노을이 지면
 신들의 상점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성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

 어느 골동품 상인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경고한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19 이전의 세상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잃어버린 낙원’을 안타까이 바라본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말 에덴동산이 있었던 걸까?   

 루카치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존재하던 아름다운 시대를 슬프게 노래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에 이런 낙원을 잃어버렸다. 끝없는 탐욕에 젖어버린 영혼은 일찍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나카무라 유지로는 말한다. 
 “우리는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는데. 그건 추억이 좋아서가 아니라 추억을 생각할 때 마음이 몰입되어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없다. 아름다운 과거는 현재를 도피하는 마음이 지어낸 허상일 뿐이다. 

 기형도 시인은 ‘숲으로 된 성벽’을 기억한다. 
   
 ‘저녁노을이 지면/신들의 상점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성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누구나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성//어느 골동품 상인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 

 우리는 상인들의 후예들이다. 오랫동안 상인들의 세상에서 살아왔다. 우리 눈에는 ‘숲으로 된 성벽’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과거에는 ‘쓰러진 나무들뿐’이다. 

 우리는 오래전에 어머니 대지에서 탯줄이 끊어졌다. 

 원시인들은 ‘어머니 자궁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혹한 성인식을 했다. 자궁에서 빠져나오며 삼라만상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지상에서 낙원을 이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 19 이전의 환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숫자놀음 하는 상인에서 벗어나 가슴 속의 불꽃을 다시 피워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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