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과학 소설을 의미하는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SF)은 우리나라에서 "공상과학소설"로 번역되는데, 한국에서 매우 푸대접받는 장르이다. 원래 의미에는 없는 "공상"이라는 단어까지 붙어서 마치 허무맹랑한 소설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 세간의 인식과 달리 SF는 출발부터 의미가 심오한 문학 장르이다. 강창래는 SF와 포르노 소설이 프랑스혁명의 지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서구 근대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며 수없이 많은 문학 작품의 무대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의 동력이 나온 곳이, 포르노와 SF라는 주장이다. 

섹스는 신분과 관계없이 왕이건 평민이건 누구나 하는 것이기에 평등의 개념을 전달한 포르노 소설이 혁명의 기반을 제공했다는 것이고, SF는 현재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간절한 바람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면서 표현하는 장르이기에,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지를 담았으므로 역시 혁명의 지적 기반을 제공한 장르라는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공상"으로 치부되지만 SF는 이렇듯 훨씬 더 의미 있는 중요한 장르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변화시킨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한 것이 SF이니 이제 이 장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강창래가 SF를 프랑스혁명과 연관시킨 것은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고 포르노에 더 방점을 찍고 있지만, 오랫동안 폄훼되던 SF 장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 

프랑스혁명 당시인 18세기에 이미 SF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SF의 기원을 따지자면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언제 장르가 시작되었는지와 무관하게 SF는 항상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과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었다. 예컨대 SF의 효시쯤으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만 봐도 SF가 얼마나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또 어떤가. 인류 발달사에 대한 매우 지적인 고찰이고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우화이다. 역사서에서 지루하게 읽고 깨달아야 할 것을 재밌게 풀어내어 깨달음을 얻게 만드는 걸작이다. 그러니 SF가 프랑스혁명의 주요 지적 기반이라는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닌 깊은 통찰이라 하겠다. 

한국에서 SF가 푸대접받은 것은, 한국 문학계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성 강한 심각한 문학작품만이 제대로 된 문학으로 인정받았던 한국 문학계 풍토에서 SF가 문학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기껏 공상과학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아이들 대상 흥미위주 소설 정도로 취급받았으니, 역량 있는 작가가 SF 소설을 쓰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이었기에, 최근 김초엽의 단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없다면>은 감동적이다. 과학도로서의 탄탄한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하고 탁월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빼어나다. 드디어 한국에도 역량 있는 SF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갑다. 

타이틀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과학 기술이 발달한 미래, 우주여행이 자유로워졌지만, 기술과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의도치 않게 사랑하는 사람과 우주 반대편으로 헤어져야 했고 다시 만날 기약이 없어진 사람이 이 암담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계층이 분화된 세상을 그리고 있다. 가벼운 터치의 이야기 전개인데,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심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정적인 단편이다. "스펙트럼"이나 "공생 가설"은 한 번쯤 품어봤을 의문을 작가 나름의 발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공생 가설"은 특히 흥미로운데, 우리가 7살 이전의 기억을 거의 갖지 못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기발한 발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수만 년 전 멸망한 행성의 외계인이 7살까지 지구 아이들의 머리에 기생하여 인류가 인간성을 갖게 만들고 있다는 발상은 정말 기발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성이란 과연 언제 어떻게 형성되는지 한 번쯤 곱씹어 보게 만든다.

그동안 무겁고 젠체하지 않으면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한국 문학의 풍토가, 이제 새로운 세대들의 참신한 시도에 의해 바뀌고 있는 듯하다. 특히 SF 장르의 팬으로서 이런 작가들의 출현은 반갑기 그지없다. <마션>이나 <시간여행자의 아내>와 같은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SF작품들이 수없이 출간되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외국에 비해, 우리네 문학은 그동안 너무나 강박적이고 무거웠고 SF는 문학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테드 창과 같은 외국 작가들이 자신이 가진 과학적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빼어난 작품을 발표하고 인정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데 비해 그동안 너무나 초라하다 못해 빈한했던 한국의 SF가 드디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모습이다.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한류가 국제적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동안 유독 문학에서 만큼은 뒤처지는 듯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치게 무겁고 엄숙한 한국 문학계의 분위기가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김초엽과 같은 재기 발랄한 젊은 작가들이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앞으로 문학에서도 국제적인 한류 붐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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