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동안 잠잠했던 이탈리아 등을 비롯한 유럽, 비교적 청정한 지역이었던 남미까지 코로나19로 위기감이 증대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지금처럼 전 세계로 확산되기 전, 유럽 등에서는 이를 중국 및 한국 등의 동양의 전염병이라며 차별과 배제의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긴, 일본처럼 코로나 19를 은폐하면서, 동시에 조선학교 유치원에 대한 차별적인 마스크 분배를 하는 철면피한 행위도 있으니, 이를 단순히 ‘서양의 동양 멸시’라고만 할 수도 없을 듯 하다. 일본의 행위는 마치 과거 서양이 동양에 대해 차별과 배제를 했던 것처럼, 북과 연관된 ‘조선’인 및 ‘조선’학교에 대해 차별과 배제를 하고 있으니,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이라 불러도 마땅하겠다.

이런 가운데서도 유독 북에서만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하니, 이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철저한 봉쇄가 가져온 웃지못할 결과로 보아야 할지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북은 과거 사스나 메르스 때에도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창궐하면, 아예 국경을 봉쇄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였다. 그 만큼 의료 역량이 취약함을 반영하는 것이자, 자신들의 취약함을 반영하여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도 북은 아예 국경의 봉쇄를 넘어, 입국하는 외교 사절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30-40일간의 격리 조치를 취하고 있고, 의심자가 발생하면 철저한 방역과 격리를 통해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북의 처지에서는 일견 어찌할 수 없는 대응이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현재의 제재를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북한은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의 전 세계적인 제재에 놓여 있다. 핵과 미사일 시험 발사에 따른 제재는 그 명분이야 어찌되었든, 북을 외부로부터 봉쇄하여 스스로 손을 들고 나오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제재로 인하여 남북의 관계 개선이 방해를 받고 있고, 남북 민간단체들의 인도주의적 교류와 협력마저 차단당한 채로 있다. 이 뿐인가? 이 결과로 현재의 남북관계 또한 ‘2018년의 추억’에서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제재의 국제정치를 주동적으로 헤쳐 나가는 데서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도 제재로 인해 자신들이 설계했던 경제 발전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내부의 자원을 총동원하는 ‘자력갱생’을 강요받고 있는 처지에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이번에는 북이 스스로를 봉쇄해버렸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당면해서는 전염병의 유입과 확산을 차단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이미 제재를 통해 외부와의 연계가 최소화되어 있는 북이 스스로의 빗장을 걸어 잠갔으니, 제재에 따른 고통을 스스로 더욱 확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제재를 외치면서 북의 붕괴 혹은 항복을 예견했던 사람들에게는 북이 스스로 빗장을 잠갔으니, 오히려 붕괴와 항복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북이 내부에서 무언가 큰 변이 발생했다거나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물론, 빗장을 잠갔으니 이전에 비해 북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어려워서, 그 내막을 상세히 알지 못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현재까지는 북의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김여정의 담화를 통해 우리를 강력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김정은의 편지를 통해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으로는 강경한 자세를, 다른 한편으로는 동포애적 자세를 보여주는 여유와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제재와 셀프 봉쇄를 동시에 단행하면서도 동시에 외부를 향해 자신감을 내비치고, 내부적으로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더 지속된다면, 점차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고 북 또한 지금과 같은 셀프 봉쇄를 오랫동안 지속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지점은 제재를 당하고 있는 북한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안에서의 빗장’도 잠글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상식으로서는 제재를 해제하고 혹은 해제시키기 위해 혹은 그것도 안 된다면 더욱 비합법적인 방식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자원을 끌어오는 것이 되어야 할 터임에도, 오히려 빗장을 잠그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론은 간단하다. 무수히 반복했듯이, 제재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을 세계에 끌어들여 어울리게 할 때,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사태에도 협력할 수 있는 길이 더 크게 열릴 것이고, ‘개성공단에서의 마스크 생산’이라는 마치 우리가 아쉬워서 볼멘소리를 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전염병의 세계화’와 같은 지금의 상황에서 북도 세계와 함께 발맞춰 움직이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첨언하자면, 코로나19 초기 현 정부의 대응을 두고 ‘중국에서의 입국 금지’를 주장하면서, 마치 지금의 사태가 현 정부의 ‘친중 자세’에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북의 ‘셀프 봉쇄’ 조치는 잘 한 것일까? 아니면 못 한 것일까?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중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봉쇄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삶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막대한 손실’로 보도하면서, 이탈리아의 봉쇄에 대해서는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유럽으로의 심각한 전염병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도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을까?

 

 

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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