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휩쓸면서, 덩달아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봉 감독이 미국 지역 영화제라고 쿨하게 표현했지만, 아카데미 상이 갖는 영향력만큼은 국제적이다. 벌써 봉 감독 팬덤이 생겨나고, 외국 언론들은 꼭 봐야 할 한국 영화 리스트를 뽑아주는 등, 전반적으로 한국과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주한 미군도 한국 문화에 대한 열광적 관심의 대열에 다소 뜬금없이 동참하고 있다.  

주한 미 8군 사령부 작전부사령관 패트릭 도나호는 주한 미군들에게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의무적으로 시청해야 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이를 본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의무는 아니지만 시청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리트윗 했다. 장난스러운 트윗이지만 많은 미국 군인이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미스터 션샤인을 시청하게 될 것이고 이미 시청한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왜 미스터 션샤인을 추천한 것일까? 이 드라마를 시청한 미국인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시청한다면, 추천할 드라마는 많다. 그러나 유독 미국인이, 미군 고위 간부가 미스터 션샤인을 추천한 이유는 자명하다. 극 중 주인공이 비록 한국계이지만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내용은 미군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고, 묘하게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드라마의 배경인 구한말, 주인공 유진 초이는 부모를 잃고 어릴 때 미국으로 가게 되고, 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미군 장교가 되어 조선에 부임해 오게 된다. 그리고 조선 의병을 도와주고 일본군과 대립각을 세운다. 극 중에서 미군은 일본에게 당하고 있는 조선을 도와주는 흑기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주한미군 사령관이 휘하 장병들에게 반드시 시청하라고 강권할 만한 내용이다.

지금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군인들은 자신들이 우방인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서 먼 낯선 타지에 나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은 어쩌면 주한 미군들이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드라마이겠다. 약자를 지켜주러 온 정의의 사도가 자신들이라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의 미군이나 현실의 미군이나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먼 타지에 나와 있는 것이지만, 언제나 명분은 우방을 지켜주는 친구임을 내세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러니 미스터 션사인은 미군에게 인기를 얻을 요인이 충분한 드라마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반드시 그런 이유에서 미스터 션사인을 시청하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도라면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에 대한 이해도는 어느 정도 높이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안하무인 격으로 조선 왕실을 능멸하는 일본과 일본군의 만행이 잘 묘사되어 있고, 목숨을 걸고 일본에 저항하는 의병의 활약상이 펼쳐지는 드라마이니, 최소한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뿌리 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다. 

어떤 경우이건,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외국 군대의 존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기에 주한미군 사령관의 트윗은 씁쓸하다.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되는 시점에서부터 백 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한국은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고, 국가 안보를 맡기고 있고, 주한미군이 없으면 당장 북한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지 못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정치인들이 있고, 심지어 국가 안보를 외국 군대에 의존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 군인들이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경제력으로 세계 10위권에 있고, 그동안 천문학적 규모의 군사비를 지출했고,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인데, 주둔 비용까지 부담해가면서까지 외국 군대를 자국 내에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물론 주한미군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복잡한 정치 경제적 상황이 얽혀있지만, 이제 국가 차원의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마침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유지에 미국 국민의 세금이 너무 많이 지출되고 있다며 공공연하게 미군 철군을 말하고 있으니, 우리도 주한미군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일갈했는데, 그렇게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도 미군에 의존해야 한다면 틀림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지지부진한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도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 대한 공론화는 당장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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