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경남대 초빙석좌교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12일 시정연설에서 연말까지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요청하였다. 김 위원장의 데드라인을 무시하면 북한은 “새로운 길”(a new path)을 가겠다고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많은 논객들이 북한이 새로운 길은 군사적 도발 행위를 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현재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평화로운 길을 택했다.

지금도 트럼프 미 행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강경파 리선권 외무상을 임명하였다. 많은 논객들이 주장하듯이 과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평화적 목적을 위해 인공위성을 발사할까? ICBM을 발사하든, 인공위성을 발사하든 유엔 결의를 위반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유엔결의안을 위반하는 이런 군사적 도발행동은 하지 않길 희망한다. 이런 유엔결의안 위반은 북한의 생존권과 발전권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멸 행위이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은 평화/비핵화 조치를 위한 전제조건을 미국이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비핵화보다 평화프로세스를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그러면 교착상태에 빠진 현재 북핵 협상의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북미 양측이 한 발짝씩 물러서서 양보와 타협을 하려는 의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지금 양측이 그렇게 할 의지가 없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제3자가 중재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 북미 양측이 딜레마에 처해 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상원에서 탄핵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어 북핵 해법에 신경도 쓸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현 상황을 타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남북관계 개선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금년에 들어와서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여러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북한은 무응답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무 진전이 보이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

그 동안 미국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자발적 선제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보상)를 미국에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先(선) 비핵화 조치를 주장하고 북한은 선 상응조치를 주장하여 양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평행선을 달려 접점을 도출하는데 실패했다. 이런 상황을 뚫기 위해 중국은 러시아와 공동으로 지난해 12월 16일 유엔안보리 결의안 초안을 제출하게 되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직접 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처음으로 제출하였다. 중-러의 결의안 초안을 요약하면 (1) 북한의 수산물. 섬유 조형물 수출 금지 해제, (2) 해외 북한 노동자 송환시한 해제, (3) 남북 간 철도.도로 협력사업 제재 면제를 포함하고 있다.

수산물 수출은 지난 2017년 8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2371호에 의해 금지됐고, 섬유제품 금수 조치는 9월 채택된 유엔의 제재결의 2375호에 담겼다. 2017년 12월 22일 채택된 유엔 제재결의 2397호에 따라 유엔 회원국들은 자국에 주재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2년 내 북한에 송환해야 한다. 남북 철도.도로 협력사업과 관련하여 남북 경협사업으로 남북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의 연결 및 현대화는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제시한 목표이다. 남북은 2018년 12월 판문역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현재 안보리 제재 결의로 대북 투자 및 합작 사업은 중단상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개별관광과 남북 철도도로 협력사업을 다시 북한에 제안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금은 유엔 안보리가 시기상조인 제재 완화를 제안하는 것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선 비핵화 조치를 주장하는 한 중국과 러시아의 결의안이 채택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도 현시점에서 미국의 반대와 북한의 무응답으로 실현될 개연성이 낮아 보인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를 원하지만 미국이 선 비핵화 조치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 하에서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의 창의적인 방안으로 북한이 요구하는 북미간 적대시 정책을 청산하기 위한 종전(평화)선언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이 선언은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 로드맵(roadmap)의 첫 단계이기 때문에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 조치와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구상이다.

최근 미 하원 군사위원회 한반도 안보청문회(1.28)에서 로 칸나(Ro Khanna) 연방 하원의원이 문재인 대통령과 문정인 특보가 첫 단계로 북미 간 평화선언을 강하게 고무한다고 밝혔다. (“President Moon and Chung In Moon would strongly encourage a peace decla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as a first step”). 이 구상은 현 미국의 선 비핵화 조치와는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우호적인 시그널이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앞서 정책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금년 봄에 실시예정인 한미군사연습은 대화분위기 조성차원에서 일시 중단 혹은 유예가 바람직하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기자회견(2018. 8.2)을 통해 처음으로 종전선언에 대해 “시대 발전의 흐름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밝힘으로써 종전선언에 공식 참여를 발표한바 있다.  그는 한중외교장관회담(8.3)에서 종전 선언과 관련,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어서 비핵화를 견인하는 데 있어 긍정적이고 유용한 역할을 평가 한다"고 강조 했다.

북한은 오랫동안 북미간 종전선언을 주장했으나 중국의 권유로 4자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에게도 중국의 참여 없는 종전선언은 지지할 수 없음을 알렸고 문재인 정부도 3자 종전선언에서 후퇴하고 4자 종전선언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과거 오랜 전부터 4자 평화협정(조약) 체결을 원했고 1990년대 말 남북미중 4자 회담에 참여하여 이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종전선언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종전선언이란 표현보다 평화선언(a peace declaration)이란 표현을 선호한다. 북한이 미국에 자발적인 비핵화 조치의 대가로 종전선언을 요구하였다, 미국은 아직 종전선언 혹은 평화선언을 서두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 된다. 첫째, 미국이 종전(평화)선언 서명 이전에 가시적인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진전을 요구하고 있는 강경한 입장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둘째, 종전(평화)선언 이후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 요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일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약화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종전(평화)선언을 서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장기적인 국익차원에서 종전(평화)선언이 창출하게 될 이익을 계산하면 종전(평화)선언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필자는 북미 평화협정보다 구속력이 강력한 다자 종전(평화)선언과 4자간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을 제안하여 왔다. 지금도 남북미중이 종전(평화)선언과 함께 4자 평화조약(a peace treaty)[평화 협정(a peace agreement)이 아닌] 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틀 속에서 한반도 4자 평화회담을 주창하여 왔다. 가칭 ‘한반도 평화조약’ (a Korean peninsula peace treaty) 속에 남북 평화합의문(agreement), 한중 평화합의문, 북미 평화합의문, 중미 평화합의문 등 4개 부속 합의문을 포함하여 4자간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맞교환하면 한반도에는 핵무기 없는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동시에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북한체제 보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만이 보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의 칼럼,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5단계 로드맵 구상,”통일뉴스(2019.5.13) 참조]

결론적으로 한국정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비핵-평화체제 이행 로드맵을 작성하여 미.중.북한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4자 정상이 종전(평화)선언 합의문에 서명할 것을 제언한다. 이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상호 양보와 타협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통 큰 결단을 해야 한다.

 

 
한국외국어대 학사, 미국 Clark 대학원 석사, 미국 Claremont 대학원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 전 미국 Eastern Kentucky 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교수; 전 통일연구원 원장. 현재 미국 이스턴켄터키대 명예교수, 경남대 초빙 석좌교수, 한반도미래 전략 연구원 이사장,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통일전략연구협의회(LA) 회장, 미주 민주참여포럼(KAPAC)상임고문 등, 경남대 명예정치학 박사 수여(2019),글로벌평화재단이 수여하는 혁신학술연구분야 평화상 수상(2012). 32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칼럼, 시론, 학술논문 등 300편 이상 출판; 주요저서: 『한반도평화,비핵화 그리고 통일: 어떻게 이룰것인가?』 (통일뉴스, 2019), 『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공저: 『한반도 평화체제 의 모색』 등; 영문책 Editor/Co-editor: One Korea: Visions of Korean Unification (Routledge, 2017);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Email: thkwak3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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