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여 반가움을 나눌 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명절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필수다. 정치이야기, 남북문제를 대화 주제로 삼지 않는 것.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필시 명절은 극심한 우울과 스트레스, 허망한 분노로 점철될 것이 빤하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미국 역시 ‘트럼프 시대’, 오랜만에 만난 일가친척들과 슬기롭게 대화하는 법을 언론이 소개해 줄 정도니 말이다. 하긴, 충분히 이해된다. 트럼프라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대통령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아니 세계인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나. 당장 우리만 해도 트럼프 덕분에 사회적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지 않나. 정신적 고통과 더불어 금전적, 인적 손해도 막심하다. 호르무즈에 우리 군이 가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악수(!)를 강요하고 있는 것도 바로 트럼프 아닌가.

그렇다면 왜 정치이야기, 북한이야기를 하면 거의 100% 감정이 상하는 말싸움으로 이어질까. 당연하다. 이는 그것이 100% 합의나 공감이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정치 문제로 가족 간, 친척 간 아름다운 합의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말싸움이라면 월드 클래스를 자랑하는 우리 국민들이라면 더. 그 말이, 정작 말이 되는 것인지 소가 되는 것인지는 차치하고.

나의 짧은 경험으로 인해 얻어진 원인 분석은,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다소 비관적인 배경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애초 우리가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논쟁을 이어가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기초한다. 이는 틀린 것과 다른 것을 혼동함으로써 빚어지는 비극이다.

처음부터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단정하고 대화를 시작하면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해 스타트랙도 아닌 패스트트랙 때문에 우주전쟁도 아닌 ‘빠루’ 전쟁을 목격한 바 있다. 그 지긋지긋함과는 별개로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전제 하에 대화를 하려 했고 협상을 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러다 수가 틀리면? 주지하다시피 전쟁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무려 대담에 나와서도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고 단정부터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신의 생각은 나와 다르다”가 아니다. 애초 틀려먹은 상대와 무슨 대화를 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작전이다.

그런 정치인들을 평생 보고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무의식 중 상대방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기만 옳다는 식의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같은 피를 나눈 친척이라도 말이다. 정답이 아닌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치일 것이고, 반목과 갈등이 아닌 화해와 평화 나아가 공존을 찾아가는 것이 남북관계일 텐데 말이다. 때문에 더 정치인들이, 그리고 누런 언론들이 미워지는 지금이다.

한반도 문제, 남북 간 협력과 공존의 문제 그리고 우리의 생존 문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북핵 문제다. 30년 넘게 우리를 옥죄고 있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커다란 숙제다. 북핵 문제가 터진 후 역대 우리 정부는 방법의 차이는 있었지만,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북핵 앞에 무력하다.

퍼포먼스를 통한 생계유지 차원이 아니라, 권력을 얻기 위한 무차별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정말 제정신이라면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핵은 우리의 삶을 한 순간에 소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내야 하고,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 그리고 협력을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나의 의견이자 신념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 이창위,『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 궁리, 2019.8.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나와는 조금 다르다. 아니, 어쩌면 매우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다. 그 역시 한반도 평화를 원하고, 남북의 통일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 과정과 방법에 있어서는 나와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핵무장이다.

어쩌면 기겁을 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무려 핵무장이라니. 어느 분들은 보수 정치인들의 대책 없는 허풍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또 어떤 분들은 저자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 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나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전개하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 수사가 아닌, 구체적인 단계와 미래까지 고민한 결과로 내놓은 생각이다.

저자는 지구상에 핵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핵 개발부터 북한 그리고 리비아, 이라크 등 핵 개발에 성공했거나 그렇지 못한 국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핵의 연대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핵을 개발했거나 다시 포기한 국가들의 사례도 친절히 소개한다. 또한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지금까지 우리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취해온 대응과정을 소개하며, 자신의 시각에서 그 약점과 허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과연 북한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그 어떤 것이든 미래에 대비한 우리의 과제를 제시한다. 그중 유력한 것이 바로 앞서 말한 한국의 핵개발 혹은 핵무장이다.

모르겠다. 과거에 나였다면(그 과거가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 것이냐 물으신다면 나도 정말 모르겠다. 서서히 변해왔다고 밖에 설명이 어렵다.)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냅다 집어 던졌을지 모르겠다. 핵개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문장을 보자마자 한바탕 욕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책을 끝까지 매우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물론 난 여전히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주장을 존중하게 되었다. 그의 문제제기는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에, 철저히 역사적 사례를 통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나의 존중을 받을 가치가 충분했다.

저자는 북한이 핵을 개발해야 했던 이유를 북의 입장에서 유추한다. 그리고 핵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개발할 수 있는 유엔상임이사국 5개국 외에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왜 기존 강대국들의 압박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을 개발했는지,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북한을 비롯해 불법적으로(!) 핵을 개발한 국가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물론 핵개발은 인류를 위협하는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온전히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벌어진 수많은 대규모 전쟁을 겪으며 기존 강대국들은 위선이라 하더라도,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적 규칙을 만들어 이를 준수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솔선수범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며, 이를 나머지 국가들에게도 강요했다. 이를 벗어나면? 그 즉시 그 국가는 불량국가가 되고, 소멸해야만 대상이 되었다.

때문에 감히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혹은 충분한 보상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핵을 개발한 나라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들은 충분히 불량국가가 될 자질을 갖춘 셈이다.

북한이 핵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하기에, 우리도 그에 맞는 억지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핵을 가졌을 때 감당해야 할 수많은 부담과 어려움에 대해 다소 무책임하게 설명한다. 결국 미국이 용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 개발을 용인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틀렸다고는 바로 말하지 않겠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다. 매우 위험하고, 굴욕적인 생각이다.

또한 우리가 핵을 갖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타당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일단 우리 국민들의 정서상 가능할지 모르겠다. 국익과 생존을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겠지만, 동북아 핵 확산이 결국은 공포의 균형을 잡아줄 것이라는, 그리고 거기에 우리와 일본의 역할이 크다는 주장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핵개발의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진단도 위험하다. 일본이 바로 그러한 현실을 명분으로 헌법을 바꾸려 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려고 하지 않나. 우리가 결심만 한다면 빠른 시일 내 핵을 개발할 수 있고, 일본 역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는 때문에 더욱 무섭다.

이렇게 나와 여러 가지 면으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지만, 결론적으로 책은 유익했다. 일독을 권하는 이유이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가, 억지나 막무가내가 아닌 나름의 논리와 명분을 통해 그것을 주장한다면 동의하진 않더라도 존중할 필요는 있음을 책은 보여준다. 게다가 이해하기 쉽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니 더 좋다.

우한 폐렴으로 또 다시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부디 우리를 비롯해 다른 모든 국가들에서도 피해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중국도 빨리 정상을 찾기를 바란다. 더불어 모든 질병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할수록 점점 더 많은 질병이 창궐한다고 믿는 내 입장에서는, 이번 폐렴 역시 우리의 자성이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우한 폐렴은 특히 나에게 큰 아쉬움을 남긴다.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부터 추진해 왔던 북측과의 협력사업에도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실무자의 입장에서 그동안 노력해 온 것들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 같아 아프다. 물론 끝은 아니다.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일이다.

다시 새해를 맞으며 새삼 이 세상에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있다면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 하늘로 진다는 것 뿐. 진리는 매혹적이고 아름답지만, 그렇기에 더욱 치명적이다. 숨 쉬고 살아온 시간이 많을수록 더더욱 의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30년 넘게 이어져온 핵 문제가 지겨울 수 있다. 아니, 이미 일상의 평화가 아닌 일상의 공포를 내면화하며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지겨움을 떠나 무관심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하지만 실존하는 공포는 변함이 없다. 완벽한 평화는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소소한 평화조차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다.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한 언뜻 불가능해보이기조차 한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국제정치학을 떠나 대부분 사회과학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특정 학설이나 법칙에 대해 매우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 절대 진리로 바라보기까지 한다. 특히 해외에서 학위를 받아 온 이들은 해외의 학설이나 법칙을 숭배하기까지 한다. 그 중 하나가 이른 바 공포의 균형이다. 양쪽 모두 핵을 가지고 있으면 그 파멸적 결과를 알기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주장은, 역사의 사례를 통해 증명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수십 차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순간의 판단착오로 재앙이 올 수 있다는 것 역시 증명된 사실이다.

여전히 모르겠다. 무엇이 가장 최선의 길인지.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다양한 가능성과 생각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최선보다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더구나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이면 말이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던 그렇지 않던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희망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저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옮긴다. 물론 동의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하나의 질문은 던져보자.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평화도 공짜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스스로 독립하지도 못했고, 스스로 침략을 물리치지도 못했다. 미국이 일본의 지배를 종식시켰고, 미국이 북한의 침략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미국의 힘을 빌려 경제 강국이 되었다. 이제 한국은 독자적으로 자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말했듯이, ‘힘이 뒷받침된 평화’를 가졌을 때 비로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강력한 억지력으로 보장된다는 기본을 잊으면 안 된다. 마지막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우리는 핵무장한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가?’ 평화 공존에 대한 자신이 있으면, 지금처럼 힘든 협상을 계속해도 상관없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제는 실천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본문 298~299쪽)

 

(수정, 29일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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