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이 신년 초부터 북측으로부터 두 차례나 면박을 당했다. 하나는 북측이 올해 신년사를 대체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정문에서 남측을 향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아예 배제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불거진 ‘김정은 생일 축하 메시지’와 관련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지난 11일 담화를 발표해 “새해벽두부터 남조선당국이 우리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미국대통령의 생일축하 인사를 대긴급 전달한다고 하면서 설레발을 치고 있다”면서 남측이 ‘김정은-트럼프’ 사이의 친분관계에 “중뿔나게 끼어드는 것은 좀 주제넘은 일”이라고 남측에 면박을 준 것이다.

지난해에도 북측으로부터 수차례 배제와 면박을 당한 터에 올해도 신년 초부터 의도적인 배제를 당하니 남측도 억하심정이 일어날 만도 하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북측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표시하기에 앞서 ‘북측이 왜 이럴까’ 하는 물음을 갖고 잠시 성찰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지난해 언젠가부터 인가, 북측이 남측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잠깐 복기해 보자.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15만 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을 했으며, 또한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북측으로부터 최대의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사실 이 정도라면 남측은 귀환해서 보답 차원에서라도 곧바로 북측이 오매불망 바라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안했다. 세속적으로 말한다면 북측이 ‘먹튀’를 당한 모양새이다. 게다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도 ‘노딜’로 끝났다. 북측은 이 결렬에도 남측에 일정 책임이 있다고 본다. 남측이 당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북측이 남측더러 북미 사이에서 중재자, 촉진자가 아닌 ‘당사자’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일종의 ‘통첩’이었다.

아마도 남측은 이때까지만 해도 ‘북미관계가 잘되어야 남북관계가 풀린다’는 ‘아주 오래된 주술’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새해 들어서까지 이 주술에 취해 있을 수만 없었다. 한반도 판이 심하게 어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초부터 나서지 않을 수 없던 이유다. 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북미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협력을 더욱 증진시켜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밝힌데 이어,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남북 간에도 이제는 북미대화만을 바라보지 않고 남북협력을 증진시키면서 북미대화를 촉진해나갈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남북협력 우선론’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자 유관부처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4일(현지시각)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만나 남북교류에서 대북제재 예외사업 등을 논의했으며, 또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14일 종교·사회단체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해를 맞아 정부는 북미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북측은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전원회의의 기본정신이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을 벌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이 ‘연말 시한’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새로운 길’을 밝힌 셈이다. 그렇다면 남측은 무엇을 할 것인가? 마침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1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남북 협력사업과 관련해 “금강산 관광이나 대북 개별방문의 경우 유엔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언제든 이행할 수 있으며, 이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외교장관-통일장관-비서실장 모두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북미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뭔가 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유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금강산 등 북한 개별방문’부터 시도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독자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물론 남측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독자행동에 나설 경우 처음에 미국은 우려를 표시하거나 제동을 걸 수도 있을 것이고 북측은 외면할 것이다. 그러나 굽힘없이 지속하면 미국은 어쩔 수 없어 할 것이고 북측은 대화의 문을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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