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기대했던 신년사는 없었다. 신년사 자체가 사라졌다. 지난해 말 이례적으로 나흘에 걸쳐 있었던 전원회의 보도가 <노동신문> 1면을 장식하면서, 사실상 신년사를 대체하였다. 2019년 ‘하노이 교착’이후,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북미관계, 그리고 여기에 남북관계까지 더해 기어이 연말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전원회의의 내용이 예상과는 달리 그 표현이 격렬하지 않고, 공격적인 어법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보도문 곳곳에서 보이는 ‘칼날 같은 섬뜩함’에서 올해의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는 점에서 북에게 남은 이제 ‘보여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미 북의 전원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진행되었으므로 굳이 이 자리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연 초 곳곳에서 열린 신년사 분석이 말해주는 것은 공통적으로 올해 2-3월이 심각한 위기의 고비가 될 것임을 내놓고 있다. 해마다 2-3월이면 닥치는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행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2-3월이 상당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문제의 핵심이 북미관계의 교착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교착되도록 놔두고, 북미관계에 남북관계를 묶어버린 우리의 책임도 상당하다고 할 수있다. 혹자는 북이 과감하게 양보를 취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라고 주장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리비아, 이라크 등의 역사적 경험과 2018-9년의 시간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는 우리의 ‘주관적 희망’일 뿐이며, 오히려 북에게만 양보를 요구하는 ‘선 비핵화’의 또 다른 변종일 뿐이다. 문제는 북이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양보를 할 수 있는 조건과 보상책을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토록 주장했던 ‘중재자’라면 북미 양측을 오고 가며 서로가 한발씩 양보하도록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찌되었든, 북은 연말 시한을 넘기면서 전원회의를 통해 자신들의 길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당장 우려하는 ‘도발’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적들에게는 심대하고도 혹심한 불안과 공포의 타격”을 안겨주고,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미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수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게 되여있으며 더욱더 막다른 처지에 빠져들게 되어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것이 일각에서 말하는 대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이 될지, 또 다른 그 무엇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북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개발을 중단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 나갈 것”은 분명해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억제력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립장에 따라 상향 조정 될 것”이라고 하여 ‘새로운 길’을 가면서도 한쪽으로는 살짝 ‘쪽문’ 하나를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북이 요구하는 미국의 ‘새로운 셈법’이 없다면 자신들은 꿋꿋하게 자신들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우리를 향해 북미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주제넘은 일,” “바보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고 있는것이 좋을 것”이라는 모욕적인 발언까지 고려한다면, 현 시점에서 북은 우리를 하등의 협상 상대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2018년 남북 사이의 거창한 합의에 뒤이은 초라한 행동이 그 원인임에 틀림없다. 이를 보여주듯, 북의 매체인 ‘메아리’에서는 우리의 국방장관을 향해서 ‘한미군사훈련 하나 조정할 수 없는 식민지 용병’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심히 불쾌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2019년 한 해를 뼈저리게 반성으로 돌아보아야 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라도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앞세우겠다는 의지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 그리고 통일부장관 등이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앞서갈 수 있다면서 북미관계의 개선을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비록 북이 ‘주제넘은 자화자찬’이라거나 ‘푼수 없는 자랑질’이라고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하고 있지만, 과거의 경험은 남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면 나서보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지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 정부가 행동으로 이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있다. 미국에 얽혀있고, 유엔 제재를 마치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보듬어왔던 지난 경험을 돌아보면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말뿐인 의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군가 그랬듯이, 의지는 ‘주관적 고집이나 희망’이 결코 아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이 없다면 그저 그런 말 잔치에 불과할 뿐이다. 이미 미국의 해리스 대사는 우리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한미간 협의를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대목에서 묻고 싶다. 과연 우리도 ‘정면돌파’를 할 수 있을까? 북이 말하는 ‘우리 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 식의 정면돌파’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 노무현 정부가 그랬듯이, 이라크 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남북관계의 무언가를 쪼끔(?) 얻어냈던 그런 꼼수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남북관계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그런 꼼수의 미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예 말아라. 남의 불행으로 우리의 행복을 얻어내는 것은 결코 정도(正道)가 아니며, 정면돌파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정부가 ‘정면돌파’의 멋진 길을 걷기를 바랄 뿐이다. 그 무엇도 아닌,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수 많은 사람들의 지지에 기반한 멋진 정도를 걷기 바랄 뿐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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