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명태를 좋아하셨다.

명태는 찬물에 사는 냉수성 어류로, 함경도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이름 없는 물고기였단다. 그런데 옛날 함경도에 부임한 관찰사가 식탁에 오른 생선이 맛있어 이름을 묻자 이름이 없다고 하니 명천군의 ‘명’자와 고기 잡은 어부의 성씨 ‘태’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명천 사람 태씨가 잡은 물고기’란 뜻의 ‘명태’라는 이름이 생겼단다.

명태는 영양 많고 살은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머리, 알, 내장, 껍질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생선인데, 심지어는 명태 간에서 짠 기름으로 등불까지 밝혔다. 그래서인지 이름이 많아, 얼리면 동태, 겨울바람에 부드럽게 말리면 황태, 날이 따뜻해 황태만큼 바싹 마르지 못하면 먹태, 소금을 살짝 뿌려 꾸덕꾸덕하게 말리면 짝태, 반만 말리면 코다리, 바짝 말리면 북어, 어린 새끼는 노가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종류를 제치고 우리집 밥상에 오르는 것은 언제나 신선한 생물 상태인 생태였다. 아버지는 꼭 생태만 사들고 오셨다.

▲ 김양희, 『평양랭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308쪽, 2019.12.20. [사진제공-폭스코너]

열여섯에 떠난 고향, 그 바닷가에서 갓 잡아 상에 오른 생태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러시아 산 명태가 밥상을 점령하기 전까지 명태 귀한 줄을 몰랐던 나는 아버지 생전에 명태가 아버지에게 무엇이었는지 여쭤 보지 못했다. 그런데 ‘통일을 기대하게 하는 북한 음식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평양랭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에서 ‘함경도의 겨울 별미, 명태 순대’ 부분을 읽으니 아버지가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종종 순대국을 드셨는데, 그것 역시 명태 순대 생각이 간절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가슴을 쳤다.

아버지는 한 번씩 나를 일부러 데려가서 쇠고기 육수에 말은 물냉면을 사주시곤 했다. 물냉면은 평양냉면인데 아버지는 왜 함흥냉면이라 불리는 비빔냉면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생각했더니, 이 책 ‘평양의 3대 풍물, 평양냉면’을 읽고 그 의문이 풀렸다. 우리가 아는 함흥냉면은 함흥에 없으며, 땅이 척박하여 메밀조차 재배하기 힘들었던 함경도에서는 감자로 뽑은 국수에 쇠고기 국물이나 매콤한 육수를 부어 물냉면처럼 생긴 감자농마국수를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음식은 이렇게 떠나온 고향을 담고 있다. 음식은 그 고장의 지리적 환경과 특색과 문화와 정서가 집적된 산물이다. 책을 쓴 저자의 서문에도 나오듯이 ‘음식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이 담겨 있기 마련’이므로 그 고장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 고장 사람들의 삶에 다가가는 길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 현지 음식을 먹어 보는 것은 눈으로 스쳐지나가서는 알 수 없는 그 고장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맛보는 일이다. 나그네의 향수를 달래는 것이 고향의 음식이듯이, 나그네가 객지에 정서적으로 동화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토박이들이 즐기는 음식을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의 민족적 전통 아래 하나의 음식 문화를 이어 오던 남과 북은 분단 70년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음식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입맛이 달라지는 것은 곧 삶의 방식과 정서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 ‘의식주’를 북에서는 ‘식의주’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남북 간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난다. 또한 개인을 중시하는 남에서는 며느리도 모르는 나만의 비법을 개발하기 위해 여념이 없지만, 집단이 우선인 북에서는 개발된 비법을 널리 확산시켜 요리 가공의 표준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음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북을 이해하고자 한다. 1부에서는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아왔나’라는 제목 아래 우리와 다른 북의 음식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2부에서는 ‘북한의 향토 음식’이라는 제목으로 북의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지역별 특산 음식을 소개한다. 이 2부에 남쪽에도 잘 알려진 평양냉면, 개성의 조랭이떡국, 대동강맥주를 비롯하여 해주교반, 개성편수, 강령녹차, 그리고 황석영의 산문집 제목에 ‘노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노치 등 잘 알려지지 않은 향토 음식까지 모두 21가지 북한 음식이 소개되어 있다.

마지막 3부는 ‘화해와 평화의 음식’이란 제목으로 남북 교류 과정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한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에는 늘 음식이 따라오게 마련이므로 만남의 의미를 담은 음식은 서로의 서먹함을 지우고 자리를 더 풍성하고 화목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 나눈 음식은 마음을 전하는 사자(使者)가 되기도 하고 비극적 역사를 증언하는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이다. 음식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저자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통일뉴스>에서 <민족음식 이야기>라는 칼럼을 쓰면서 북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북의 식량 문제 등을 연구했다는 이력을 듣게 되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저자는 현재 기획재정부 남북경제과 사무관이다.

그는 ‘통일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공직에 나아갔다고 한다. 여러 차례 북을 방문한 경험이 있고, “작은 노력이 통일의 마중물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며 통일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그날을 꿈꾼다”고 말한다. 책의 1부가 그의 전공 전문성을 바탕으로 신뢰감을 준다면, 책의 3부는 그의 방북 경험도 곁들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저자의 진심이 현장감 있게 전해진다. 북한 음식 이야기를 쓰기에 이만큼 적합한 저자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동치미와 냉면을 좋아하시고, 김장김치를 담글 때면 꼭 생태를 토막 내어 고춧가루에 빨갛게 버무려 배추 사이에 넣었으며, 만두는 꿩만두가 최고라셨던 아버지. 이 책에 따르면, 2019년 7월 말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3만 3,320명이며 그 중 절반 이상인 7만 9,19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셨다면 아버지는 끝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이 7만 9,194명 중의 한 사람에 해당될 것이다.

어디 아버지뿐이랴. 전국적으로 약 850만으로 추정되는 이북도민과 32,000여명의 탈북민이 있다. 저자는 말한다. “시간이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 인도적 지원 사업 가운데 대북 제재와 무관하게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는 하루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황석영 작가처럼 남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들이 서로 만나 고향의 맛 노치를 나눠 먹으면서 행복한 마지막을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의 글솜씨는 맛깔스럽다. 읽는 내내 입맛을 다시게 하니 글로 보는 북한 음식 먹방이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북의 향토 음식이 북한과 평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길 바란다. 그리고 북에 대한 이해와 민족적 정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도움으로써 저자의 말처럼 ‘통일의 마중물’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남쪽 사람들이 옥류관 냉면과 대동강맥주를 즐기고 북쪽 사람들이 초코파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때 통일은 한 걸음 더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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