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중국에게는 칼이고 일본에게는 망치이다. 해양세력인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차지하면 중국에게는 치명적인 비수가 되고 대륙세력인 중국과 러시아가 그것을 차지하면 미국과 일본에게는 무서운 해머(hammer)가 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사활적 쟁패를 벌였다. 거란의 소손녕이나 왜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양대 세력은 만일 어느 국가도 한반도를 독식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것을 분할하려 하였다.

한반도를 대륙세력이 차지했을 때 일본은 몽골침략을 당했고 한반도를 일본이 장악했을 때 중국은 만주는 물론 본토까지 공격당했다. 중국은 중일전쟁을 통해 3,000만 명의 희생을 당했다. 한반도는 일본에게는 ‘망치’가, 중국에게는 ‘비수’가 된 것이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미국은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태평양전쟁이 끝날 무렵 대륙세력인 소련의 전 한반도 지배를 두려워하여 한반도를 분할했다. 한반도는 더 이상 비수도 망치도 아닌 것이 되었다. 반토막난 한반도는 일본에게도 중국에게도 위협이 되지 못한다.

대륙 및 해양세력들은 자신이 한반도를 완전 소유를 못할 바에는 반쪽만이라도 영향력을 구사하는 것이 자신의 안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1945년 분단 이후 단 한 번도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다. 한반도가 만일 적대 세력에 의해 통일이 된다면 자신들의 안보에 치명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분할통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 분할통치는 강대국들이 자신의 국익을 위해 남북한을 마음대로 ‘갖고 놀아도 되는’ 존재로 전락시켰다. 1972년 미국과 중국이 관계정상화를 하면서 미국은 남한을, 중국은 북한을 자신의 영향권 하에 두는 것으로 밀약하였다. 그 결과 남한은 미국의 그늘에서, 북한은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비록 북한은 1950년대부터 주체를 내세우면서 어느 강대국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주’를 생명처럼 귀중하게 여겨 왔으나 대중 의존은 자주권의 상실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강력한 미국 및 UN의 제재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정책을 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한은 군사,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미국의 ‘속국’처럼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에서는 간헐적으로 ‘반미시위’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필리핀, 그리스 등에서처럼 미군을 몰아내는 상황을 만들지는 못했다. 남한의 지나친 친미화는 미국이 남한을 ‘호갱’으로 보도록하고 있다.

트럼프는 ‘날강도’처럼 2020년 주한미군 주둔비 전액인 6조원을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만일 남한이 북핵문제 해결 없이 남북 철도‧도로 연결,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등을 강행할 경우 남한에게 ‘제2의 IMF’를 안겨주겠다는 ‘협박’을 해서 남북관계를 파탄시켰다.

중국은 남한 내 THAAD 배치를 트집잡아 ‘한한령’을 내렸고 일본은 전략물자의 북한 유입을 핑계로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을 중지하였다. 중국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북한은 과거 자기 땅”이었다고 하였고 일본은 남한의 오늘은 자기들의 지배 덕분이라고 적반하장의 주장을 하고 있다. 작금의 주변국들의 행태는 반토막난 한반도를 ‘장난감’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국제정치가 힘과 국가이익에 의해서 움직여진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횡포가 너무 심하다.

강대국 논리를 방성대곡하고 규탄해도 시원치 않을 터에 우리 국론은 분열돼 있고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없으며 오히려 친미파, 친일파, 친중파 등이 애국자인양 각축을 벌이고 있다. 가히 19세기 말 20세기 초 구한말을 방불케하는 전경이다.

역사적으로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귀족의 분열로, 백제는 의자왕과 귀족세력 간 갈등으로, 통일신라는 중앙과 지방 간 갈등으로, 고려는 사대부들의 친원파와 친명파 간 내분으로, 조선은 4색 당쟁 및 친일‧친청‧친러파 간 갈등으로 멸망하였다.

힘이 없는 나라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노련한 외교밖에 없다.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정치적 독재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약소국 싱가포르를 생존하도록 만든 공로자이다. 그는 경제카드를 교묘히 활용하여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을 솜씨 좋게 요리하여 어느 나라도 싱가포르를 적대시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북유럽의 핀란드도 약소국이지만 지혜로운 외교를 통해 안보를 유지한 나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월 24일 한‧중‧일 3국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전략과의 협력을 약속하고 자유무역주의를 옹호했으며 북핵문제 동시 병행적 해결방안을 지지했다.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다. ‘문재인 식’ 등거리 외교, 2중 외교, 시계추 외교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가 좋아하는 ‘칭찬과 돈’을 아낌없이 주었지만 트럼프는 ‘혈맹’의 지도자인 문 대통령의 요구를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중재자’를 자처한 문 대통령에게 미국은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를 하나도 주지 않았다. 북한은 힘없는 문 대통령을 상대하려 하지 않고 있고 심지어 ‘배신자’라는 인식까지 하게 되었다.

세계 최강 미국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절대로 자신의 정책을 양보하지 않는다. 남한 내에서 ‘반미주의’가 심하게 일어나든지 북한이 ‘재앙적 사건’을 일으키든지 해야 미국은 움직일 것이다. 최소한 남한이 전략적으로 ‘중국 경도’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을 때 미국은 양보할 것이다.

지난 11월말 경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와 관련하여 남한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미국의 실세들이 대거 남한으로 몰려온 것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이승만 식’ 외교도 필요한 이유이다.

2020년의 전도는 밝지 않다. 북한은 ‘새로운 길’을 갈 것이고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벼랑끝 전술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모두가 예상하는 시간, 장소, 방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베트남의 전쟁영웅 보응우옌잡 장군은 전쟁 승리의 비결로 “적들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고, 그들이 싸우고 싶어 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았으며, 적이 예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북한은 대체로 잡 장군의 전술을 원용해 왔다.

트럼프는 북한과의 긴장을 지속하여 대통령 재선 운동 때 골수 보수표를 결집시키려 할 것이다. 그는 12월 4일 이미 ‘필요하다면’ 북한에 대한 군사력 사용까지 천명하였다. 만일 미국이 북한의 ‘새로운 길’을 문제 삼아 ‘코피(bloody nose) 작전’을 구사한다면 트럼프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언급한대로 우리 민족 4,000만 명까지 피해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 모두가 ‘폭망’하는 지름길이다.

상황이 엄혹함에도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한 내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남한 내 갈등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할 것이고 이로 인한 한반도의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고조될수록 각 주체들이 냉정을 잃지 않아야 하고 국내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국가 간 분쟁을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과연 관련 지도자들이 얼마나 냉철할지 의문이다.

프로이센의 전쟁전문가 클라우제비츠가 갈파한 바와 같이 과거 전쟁사를 보면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의 국내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었다.

민족이 위기에 처하면 민족이 단합해야 하고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국민이 단합해야 한다. 남북한은 현재 상태로는 강대국이 되지 못한다. 하루아침에 영토와 인구를 두 배로 늘릴 수도 없다. 그 방법은 오로지 남북한이 통일을 하거나 최소한 남북연합을 이루는 길밖에 없다.

우리 민족의 터전이 분단되어 ‘부러진 칼과 망치’가 되어 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온전한 칼과 망치’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온전할 때만 주변국들도 우리를 정상적으로 대우해 줄 것이다.

소설 『삼국지』 초입에 “천하는 갈라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다시 합쳐진다(分久必合)”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으로서 지혜의 상징인 쥐띠 해인데 그것도 최고 지혜를 가진 흰쥐의 해이다. 유태인이나 게르만 민족보다 더 강하고 지혜로운 한민족이 과거의 소소한 서운함을 잊고 대범하게 하나로 합쳐지기 위한 노력을 하여 민족의 종말을 가져오는 전쟁도 막고 주변국의 ‘노리개’로 부터도 벗어나는 2020년이 되었으면 한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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