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결국 빈손으로 귀국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을 차례로 방문한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오직 북한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비건 대표가 북한을 향해 ‘야호’를 외쳤으나 카운터 파트너에게서 나온 메아리는 없었습니다. 15일부터 20일까지 세 나라를 방문했던 5박 6일 간의 일정이 그에게는 5-6달이 걸린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건 대표의 이번 일정에서는 두 가지 면에서 북한을 향한 진정성이 얼핏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는 방한 중인 16일 비건 대표가 “나는 북한과의 협상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여기에 있다”며 “북한 상대방에게 직접 이야기하겠다”면서 북한을 향해 회동을 공개 제안한 것입니다.

아울러 그는 “이제 우리가 일할 시간이다. 일을 끝내자. 우리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에게 연락할 방법을 알고 있다”며 다소 눈물겨운(?) 호소를 한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북한을 향한 짙은 구애 행각이라고 할만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한국에서 일정을 마치고 17일 예정대로 일본에 갔는데, 방일 중에 일정에 없던 중국 방문을 결정한 점입니다. 미국 국무부가 17일 “15~19일 서울과 도쿄 방문에 이어 비건 특별대표가 19~20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미 국무부는 그 목적으로 “중국 당국자들과 만나 북한 관련 국제사회의 단합 유지 필요성을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이는 핑계일 공산이 큽니다. 그보다는 한국에서 절절한 대북 구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먹자 어떡하든 북한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중국으로 들어가 도움을 요청해 북한 측의 답변을 듣기 위한 시간 연장책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어쨌든 5박 6일 간의 행각에서 비건 대표가 북한 당국자들과 물밑 접촉을 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북한이 응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불발된 이유, 정확하게는 북한 측이 비건 대표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북한은 ‘연말 시한’을 제시하며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오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고 경고해왔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계산법’이란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와 대북제재 해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연말 시한을 보름정도 앞두고 바빠진 비건 대표가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일·중을 돌면서 만나자고 대북 구애작전을 폈으나 이는 립 서비스일 뿐 북한이 원하는 ‘선물’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은 지난 2월 말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극도로 민감해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하고 결렬이 되었으니까요. 이후 어렵사리 열린 10월 초 북미 스톡홀름 실무협상도 맥없이 결렬됐습니다. 북한은 미국 측이 실무협상에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며, 마치 하노이 결렬에 책임이라도 묻듯이 매몰차게 내쳤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입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사실 비건 대표가 이번에는 무언가 갖고 왔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비건 대표는 마침 중국에 있던 19일, 미국 상원 본회의에서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이 승인됨으로써 부장관으로 지위가 격상된 기쁨도 잠깐, 쓸쓸한 귀국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건 대표는 왜 ‘빈손’으로 왔을까요? 분명히 북한 측에 뭔가를 줘야 함에도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면,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측에 선물을 주지 못할 정도로 입지가 협소하든지 아니면 북한 측의 ‘새로운 계산법’ 요구를 무시하며 쇼를 하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정녕 이렇게 앉아서 ‘연말 시한’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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