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어떻게 ‘북미관계 개선’을 얻었나?

지난 9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나는 적어도 3년 동안 이 나라에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내가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장 큰 정치적 상품으로 ‘북미관계 개선’을 여전히 내세우고 있는 대목에서 작년 중간선거 못지않게 내년 대선에서도 그것을 크게 써먹고 싶다는 의중이 읽힌다.

지난해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AP통신>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는 응답이 55%로, 지지율 41%를 크게 웃돌았다. 그의 지지율 상승을 견인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럼, 선거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이런 중대한 ‘업적’을 그는 어떻게 얻었나?

작년에 진행된 일련의 북미 협상과 합의를 통해서다. 기억을 되살려 보자. 4월 1일 품페이오 당시 CIA(미국중앙정보국)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북미 협상의 시작에서 양측은 무엇을 주고받았을까? 4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의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종전을 논의하는 것을 축복한다”는 발언에 단서가 있다. 그로부터 3일 후인 4월 20일 북은 당 전원회의를 통해 병진노선을 수정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지를 결정했다. 미국의 한반도 평화체제 약속과 북의 핵실험, 미사일 시험발사 중지는 처음부터 이렇게 맞물려 있는 것이다.

지난해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됐다. 선언은 1조에서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하기로 하고, 그 6항에서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했다. 이것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와 연결되어야 실현 가능하다.

3조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하고 그 3항에서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다. 이것도 미국의 참여가 필요하다.

판문점 선언 발표 1시간 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전쟁은 끝날 것이다”고 올렸다. 판문점 선언에 공개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미국은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판문점 선언 이행에 협력할 것을 거듭 약속했다. 공동성명 3항에서 양국은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선언 내용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이 문구의 전체적인 의미는 양국이 ‘판문점 선언 내용을 재확인’한 데 있다. 선언 이행의 주체는 남과 북인데 왜 미국이 그 내용을 ‘재확인’했을까. 판문점 선언 이행에 협력하겠다는 미국의 의사 표시를 이렇게 문서로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대북제재 해제,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은 시작되지 못했다. 작년 8월 17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방문 사실을 전하면서 “강도적인 제재, 봉쇄로 우리를 질식시키려는 적대세력과의 대결”이라는 그의 발언을 실었다. 같은 날 <노동신문>은 “미국은 종전선언에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이 목까지 차오른 불만을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넘겼을까?

9월 4일 한미 정상이 전화 통화를 하고, 다음 날 정의용 실장이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포함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전달됐다.

9월 6일 정의용 실장은 방북 결과 브리핑을 통해 첫째 “김정은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둘째 “남과 북은 9월 18~20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첫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것, 둘째는 남북이 원하던 것이다. 남의 중재로 북미가 간접 대화를 한 것이다.

그 결과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렸고 9.19 평양 공동선언이 발표됐다. 공동선언은 1조에서 적대관계 종식을 약속하고, 2조에서 민족경제 균형발전을 약속하면서 1항에서 “금년 내 동, 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하고, 2항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나가기로”하였다. 1조는 평화체제로 나가는 길목이며, 2조는 대북제재 해제로 가는 통로다.

트럼프는 어떻게 ‘북미 관계 개선’을 활용했나?

이렇게 위기를 넘기며 시간을 번 미국은 10월 들어 남북 관계 차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0월 10일 강경화 외교장관의 “금강산 관광 재개 검토” 발언에 대해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들에게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세 번이나 외쳤고, 이어 미국은 ‘한미 워킹그룹’을 설치하여 남북 관계 차단에 총력 집중했다. 경의선 철도 남북 공동조사,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등이 줄줄이 취소됐고 남북관계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중간선거를 이틀 앞둔 11월 5일 미 국무부는 “11월 8일 뉴욕에서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고 예고했다. ‘북미 관계가 여전히 좋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잘하고 있네’ 이런 분위기를 확산시키기에 딱 좋은 발표였다. 11월 6일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에서 공화당 다수를 지키고, 하원에서도 선방하는 등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1월 7일 0시 1분, 선거 끝난 1분 후 미 국무부는 북미 고위급 회담 연기를 발표했다.

연말 시한과 새로운 계산법, 그리고 미국의 선택

2월 27~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됐다.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지금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 해결의 전망은 어두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9월 9일 북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9월 하순 실무 협상”을 제안하자,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해임으로 화답하고 이어, 9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

그러나 10월 4~5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 협상은 결렬됐다. 10월 5일 오후 최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 우리가 요구하는 계산법을 미국은 하나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2)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은 미국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제도적 장치를 제거하는 조치를 실천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3) 핵실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중지가 유지될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 등을 발표했다.

11월 17일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한미 연합공중훈련 연기를 발표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글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곧 보자!”고 했다. 이에 대해 북은 11월 19일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이름의 담화를 통해 “비핵화 협상의 틀거리 내에서 조미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문제들을 함께 토의하는 것이 아니라 조미사이에 신뢰구축이 선행되고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저해하는 온갖 위협들이 깨끗이 제거된 다음에야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안전을 저해하는 위협 제거’는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된 것이며, ‘발전을 저해하는 위협 제거’는 대북제재 해제와 연관된 것이다. 미국이 이 둘을 먼저 실행해야 ‘비핵화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작년 같은 ‘다람쥐 쳇바퀴’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2월 8일 북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대응했다. 12월 11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소집,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위성을 발사하거나 ICBM 시험발사를 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이 이후에도 계속 도발할 경우 안보리는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이 제시하는 ‘새로운 계산법’ 대신 유엔 안보리를 통한 압박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12월 13일 에스퍼 미 국장장관은 북을 또다시 ‘불량국가’라고 지칭했다. 같은 날 북은 서해위상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또 진행했으며, 14일 북은 박정천 총참모장 담화를 통해 “최근에 진행한 시험의 귀중한 자료들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기술들은 미국의 핵위협을 견제·제압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연말 시한이 지나면 북미 대결이 재연될 수 있고, 그것은 ‘화염과 분노’ 그리고 ‘태평양 상 역대급 수폭실험’ 위협이 오가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작년의 약속을 지켰으면 지금 한반도는 평화협정 아래서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1년 이상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미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전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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