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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9일 밤, 30여 명의 기도인들이 성주 소성리 진밭교에서 사드철회 평화 1,000배를 올린다.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그만할까?”
“아니 열배만 더 해보자.”

내 앞자리 성주 주민 조은학 선생님과 그 곁의 여성 참가자가 한 배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몸을 낮춰 평화의 절을 올린다. 앞사람의 절이 마치 응원이라도 되는 듯 멈출 수 없다.

1,000일의 적공 piece & peace가 ‘천일의 평화조각이 모여 사드철회’라는 부제를 달고 지난 12월 4~5일 성주 소성리 진밭교 앞에서 열렸다.

999일 밤, 30여 명의 기도인들이 성주 소성리 진밭교에서 사드철회 평화 1,000배를 올린다.

2017년 2월말 롯데 골프장 땅을 바꿔치기 하자마자 국방부는 철조망 울타리를 치고 천여 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해 진밭교 너머 통행을 막았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인용을 텔레비전으로 보던 소성리 주민들은 한쪽 팔만 올린 반쪽짜리 만세를 불렀다. 정권이 바뀌어도 사드배치 결정을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 이란 소성리 주민들의 판단은 정확했다.

다음날 3월 11일, 주민들과 평화연대자들은 진밭교에 올라 경찰에게 철조망을 걷고 길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주민들이 농사 짓고, 산소 돌보러 드나들던 길이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17세 원불교 2대 종법사 정산종사가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났던 구도길이었다. 모두의 길이 하루아침에 막혀버린 것이다.

경찰이 길을 터주지 않자 대열 앞줄에 섰던 원불교 시민사회네트워크교당 김선명 교무와 제주도에서 올라온 강은도 교무가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진밭교의 기온은 저녁이 되자 뚝뚝 떨어졌다. 3월초 진밭은 겨울날보다 추웠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 안았다. 추위에 떨며 염불과 좌선에 매진할 때 “아이고, 교무님들 얼어 죽것네”라며 소성리 어르신들이 급히 비닐을 둘러쳐준다. 비닐 안이 그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그렇게 밤이 왔고, 날이 밝았다.

“주민들의 통행길을 열어라, 스승님의 구도길을 열어라”는 요구와 함께 두 교무가 주저앉은 그 길은 그렇게 1,000일 동안 평화의 진입로가 되었다.

12월 초 한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은 ‘중국안보를 위협하는 사드철회’에 한국정부가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북핵을 막는다며 주민들과 종교인들을 짓밟고 들어간 사드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이용하려는 패권경쟁의 산물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전략에 소성리는 희생양이었다.

서너 사람이 빠지고 새로운 사람이 자리를 채웠을 뿐 여전히 몸을 낮춘 간절한 절이 이어진다. 백배를 넘기며 숫자세기는 포기했다. 그저 ‘천지하감지위, 부모하감지위, 동포응감지위, 법률응감지위’ 원불교 사은헌배송에 맞춰 몸을 일으키고 엎드리기를 반복할 뿐이다.

▲ 전 세계 800여개 미군기지중 유일하게 미군이 육로로 다닐 수 없는 곳이 이곳 소성리다.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아침부터 컨테이너를 매달은 헬기가 임시 사드기지를 들락거린다. 전 세계 800여개 미군기지중 유일하게 미군이 육로로 다닐 수 없는 곳이 이곳 소성리다.

매일 새벽 5시 원불교기도와 7시 평화기도회, 8시 임시기지앞 평화행동, 11시 마을회관앞 평화 100배, 오후 3시 임시기지앞 평화행동, 오후4시와 8시 원불교기도가 쉼 없이 이어진다. 오전·오후 임시기지앞 피켓시위가 2시간씩 이어지고, 저녁식사를 마친 소성리 어르신들은 마을회관 앞 난롯불에 의지해 밤10시까지 소성리 길목을 지킨다.

매주 수·토요일 소성리집회, 수·일요일 김천집회 또한 진행된다. 매주 1~3회 달마산을 넘어 미군숙소와 가장 가까운곳에 올라 ‘미군은 사드 갖고 이땅을 떠나라”고 외쳐댄다.

소성리에서는 물샐틈없이 평화행동이 이어진다.

중간에 빠져나간 서너 명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절을 멈추지 않는다. 이 절의 공덕으로 사드가 꼭 빠져 나갈 것 이라 믿는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오후 2시 진밭교에서 열린 ‘평화기도회’ 노래공연에 나선 소성리 할매들의 눈물이 아른거린다. 사회자도 연설자도 ‘평화기도 1000일’이라는 단어에 목이 메인다.

1000배에 맞춰 제작된 2시간 30분짜리 사은헌배송이 뒤로 갈수록 느려지는 듯하다. 느려질 리 없는데 말이다. 절이 절로 되는 것을 보니 몸이 적응했나보다.

김천 수요집회를 마친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로 주위가 수선스럽다. 밤 9시가 넘었나보다. 1000배가 끝나간다는 신호다.

한호흡 한호흡 간절해 진다. 이토록 간절한 평화가 있을까?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전략영향평가는 지난 1년 동안 시작도 못했다. 필요성검토, 성능검토, 입지검토, 최종배치결정 순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시작부터 불법으로 임시로 사드를 전개해 버린 탓에 꿰어맞추기식 전략영향평가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시절, 미국이 백령도에 사드레이더 배치를 요청했으나 중국과의 마찰을 고려해 거부한 바 있다. 2013년 미의회조사국과 국방부도 한국은 북한과 너무 가까워 사드미사일 효용성이 낮아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드는 ‘북핵방어’의 자리에 ‘미국방어’라는 단어를 들이대면 문제가 풀린다. 북핵방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2017년 4월 26일, 9월 7~8일 각각 8,000여 명의 경찰병력을 앞세워 주민과 종교인들을 짓밟고 ‘불법적’으로 사드가 ‘임시배치’되었다. 절차는 전무했다.

맨앞줄 김선명, 강현욱 교무님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다. 문규현 신부님의 절도 멈출 줄 모른다. 소성리 신입 청년주민 짱똘과 정진석 가수도 마지막 1000배를 향해 쉼 없다. 마지막 1,000배는 ‘다 놓아버리니’ 시나브로 온다. 사드도 1000배처럼 끝이 있겠지.

화장실을 가려니 그제사 다리가 꺽이고 몸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인다.

1000배를 한 이, 김천집회를 다녀온 이, 평화점등식을 보러 온 이들이 모여 밤10시 "사드가고 평화오라"는 함성을 지른다. 스위치를 누르니 ‘평화는 얼지 않는다’가 활짝 켜진다.

1000일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날이 밝았다. 새벽 5시 1000일을 여는 기도와 목탁소리가 진밭교와 달마산에 퍼진다. 999일밤 불을 당긴 ‘평화는 얼지 않는다’ 네온사인이 진밭교 겨울바람을 따스이 감싼다.

오전 7시 평화기도회에서 백창욱 목사님의 격정적 설교가 이어진다. 진밭교에는 목사님이 일원상 앞에서 손을 모으고, 교무님이 십자가를 품에 안는다. 1000일째 임시 사드기지앞 평화행동은 더욱 힘차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골짜기까지 찾아오셔서 기도해주시니 고맙습니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시는 87세의 장경순 어르신 덕에 또다시 진밭은 울음바다가 됐다.

매일 하던 평화 100배를 진밭교에서 올렸다. 오전 11시가 되면 마을회관앞 마당을 쓸고 100배 준비를 하고, 의자에 앉아 땅끝까지 100배를 하시는 86세 이호기, 87세 장경순 어르신이 진밭교로 올라오셨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와 절을 본 적이 없다.

“사드 나가기 전에는 못 죽는다”던 어르신들이 4년의 세월동안 네 분이나 돌아가셨다. 소성리 어르신들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사드빼고 평화심는 것이다.

‘사무여한’ ‘원불교평화행동’ 깃발이 힘차게 펄럭인다. 마치 지난 1000일 동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평화했는가?’고 묻는 듯하다. 너댓 번 바꿔달은 깃발 가장자리는 헤지고 닿아졌다.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삼시세끼를 고통 받는 현장에 달려가는 ‘십시일반 밥묵차’가 감당해주었다. 사드임시기지 공사한다고 한바탕씩 밀고 당기는 난리가 날 때마다 밥으로 연대해주고, 밥 푸던 주걱 집어던지고 어느새 옆에서 경찰과 밀고 당기던 분들이다. 이분들 덕에 평화는 더욱 당겨지리라.

점심을 먹고 전국으로 흩어지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달마산행팀을 따라나선다.
999일 100배와 1000배, 1000일 100배를 꼬박하고 달마산행까지 내달려본다.

주민과 연대자들은 매주 1~3회 미군숙소와 가장 가까운 달마산 정상부근까지 오른다. 겨울산에 낙엽이 잔뜩 내려앉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울린다.

헉헉대며 오르다 보니, 바스락 낙엽들과 이질적인 철조망을 마주한다. 철조망 위에는 미군의 눈이 된 CCTV가 우리들을 훑어 내린다. CCTV에는 나부끼는 ‘US TROOPS Out Now, NO THAAD’ 현수막도 함께 잡힌다.

내전이 빈발하는 화약고 같은 중앙아메리카 인구 5백만의 코스타리카는 1948년 12월 1일 군사령부 요새의 벽을 가격하는 망치소리와 함께 군대를 버렸다. 커다란 망치를 휘두른 사람은 호세 피게레스라는 혁명가였다. 군사령부 요새는 국방부에서 교육부로 넘겨지고 박물관으로 재탄생되었다.

당시 행사에 참가했던 피게레스의 부인 헨리에타 보그스의 기록에 의하면 각료, 외교단, 기업계대표단 등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헨리에타는 ‘군대가 없는 나라라니’ 다들 휘둥그레한 상황에서 가장 따뜻한 박수가 터져 나온 곳은 성직자들이었다고 기억한다.

내전에 지친 코스타리카 국민들은 뒤늦게 열렬히 환호했다. 그러나 국경을 맞댄 니카라과의 내전과 미국의 개입 등으로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무장해제한 중립국’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워 더욱 적극적인 평화를 지켜낼 수 있었다.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함께 달마산을 올랐던 8명이 돌아가면서 알고 있는 영어를 총동원해 미군들에게 소리쳤다. “NO THAAD, JUST PEACE!”

발밑의 바스락 소리를 들으며 올랐던 길을 지팡이에 의지해 내려온다. 낙엽으로 뒤덮인 달마산의 평화를 가슴에 주워 담는다.

코스타리카가 군대를 버린 날 군사령부 요새를 넘겨받은 교육부장관의 연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우리는 지구촌이 다른 나라들이 하나 둘씩 우리 코스타리타의 예를 따라 군대를 없애고 평화와 번영의 길을 걷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직 그의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미국은 동맹국에 자국의 안보를 위해 엄청난 돈을 내라고 위협중이다.

다시 1001일, 진밭교에서 ‘군대를 버린 한반도 중립국’ 꿈을 품어본다.

▲ [사진제공 -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자연도 인간도, 우주도...

한낱 인간의 욕망이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꾼다.

에코아나키스트가 꿈이다.

 

(수정, 18일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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