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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품격<연재> 전영우의 미디어와 사회 (7)
전영우  |  youngwoo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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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2  10: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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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한국에서 "보수"라는 가치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어서, 종종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수구'나 '극우' 혹은 '태극기 부대'가 마치 보수를 대변하는 것 같은 착시현상으로 인해 정작 존중받아야 할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한없이 평가절하되고 때로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만큼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드물기 때문인데,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보수의 가치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그랜 토리노Gran Torino'이다.
 
젊은 시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소위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스타였다. 19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서 무명의 건맨을 연기하여 스타로 부상하였고, 마초적 이미지의 배우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는 형사 해리 캘러한 역으로 그 이미지를 이어갔다.
 
연기자로서도 마초적인 보수 이미지를 풍기기는 했지만,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진정으로 평가하려면 그가 감독으로 연출한 작품을 봐야한다. 진보주의자가 대세인 헐리우드에서 드물게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독 작품들은 그의 성향과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게, 그러나 탄탄하게 전개되는 그의 영화들에서 진정한 보수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이스트우드 영화적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걸작이 그랜 토리노Gran Torino이다. 보수의 가치와 품위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이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을 살짝 엿볼 수 있다고 한다면 과장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의 뿌리가 이 보수주의 노장이 만든 영화에 묻어 나온다.
 
그랜 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분한 월터 코왈스키는 은퇴한 자동차 공장 노동자이다. 완고하고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코왈스키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미국 러스트 벨트 유권자를 상징하는 듯한 인물이다. 한때 백인 중산층이 살았던 동네가, 산업이 침체되고 경제가 붕괴되며 백인들은 하나 둘 떠나고 아시아 이민자들이 득시글대는 곳으로 변한 현실에 대한 불만은, 코왈스키가 이웃에게 내뱉는 독설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런데 이 무식한 백인 보수 노인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야 할 신념과 가치를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평범한 사람들을 코왈스키는 대변하고 있다.
 
코왈스키가 지키는 미국적 가치 중의 하나는 “정의”이다. 비록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지만, 옆집의 몽족 가족이 갱단의 폭력에 희생당할때 코왈스키의 완고한 보수 기질은 부당한 폭력을 묵인하지 않는다. 정의는 인종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는 정의인 것이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보수주의자의 신념을 코왈스키가 보여준다. 물론 코왈스키가 대단한 이념이나 생각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완고한 보수적 기질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평범한 미국 서민이 갖고 있는 보수적 기질을 잘 상징하고 있다.
 
코왈스키는 이웃 몽족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 용감하고 정의로운 선택을 하고 영웅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를 통해 영화는 코왈스키와 같은 평범한 백인 노동자들이 미국 사회를 건설하고 유지해온 근간임을 부각시킨다. 침묵하는 보수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성실하게 실천하는 삶을 사는 평범한 시민이 미국이라는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임을 잔잔하게 풀어놓는다.
 
그랜 토리노뿐 아니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는 전반적으로 보수의 가치관이 조용하게 녹아들어서 담담하게 그려지는 그러한 흐름이 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원칙을 지키며, 비록 느리게나마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따라가는 보수적 가치관을 잘 나타낸다. 코왈스키로 대변되는 평범한 미국 보수의 모습이다.

그랜 토리노에는 미국적 보수를 상징하는 상징이 여럿 등장한다. 자동차 그랜 토리노는 과거 미국이 번영을 구가하던, 젊었고 풍요로웠던 시절 평범한 백인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자동차로, 과거의 영광을 상징한다. 코왈스키가 항상 지니고 있는 엽총 또한 전형적 미국 백인 보수주의자의 상징이다. 자신과 가족을 내손으로 보호한다는 개척시대로부터의 유산으로 인해 굳어진 총에 대한 집착은, 총기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결코 총기 소지를 금지시키지 못하는 이유이다. 코왈스키와 같은 미국인들에게 총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보수의 신념과 같은 것이다.
 
영화에서 코왈스키의 이웃인 몽족은 미국 보수가 갖고 있는 책임감을 상징한다. 몽족은 베트남 북부와 라오스, 태국 등지에 분포해 있는 고산족이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 때 미국에 협력하였는데, 미국이 전쟁에 패하고 물러나자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그러니 보수주의자 코왈스키가 결국 마음을 열고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 몽족보다 더 적절한 대상은 없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보수의 가치관을 영화에서 훌륭하게 풀어내고 있다. 결코 경박하지 않고 잔잔하면서도 힘 있게 다가오며 깊은 울림이 있는 그의 영화는 지극히 보수적이지만 오래 잊히지 않는 감흥을 준다. 그리고 아울러 한국 사회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이나 집단과 비교되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변하지 않는 신념은 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 따라 갈대처럼 변하는 사람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한국 현실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보수가 자리잡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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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12-14 10:03:10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원칙을 지키며, 비록 느리게나마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따라가는 보수적 가치관""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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