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건국 연대, 첫 도읍과 평양의 위치를 올바로 밝혀서 우리 고구려사를 체계화시키는 기초자료를 한국 역사학계에 내놓으려 시도했다.”

얼핏 위 글만 보아서는 20세기 초중반 즈음 책 서문처럼 느껴지지만 현실은 2019년 최신간 『고구려와 위만조선의 경계』(한국학술정보) 서문에 등장하는 문구다.

아니, 아직도 우리 역사학계에서 고구려의 건국 연대와 첫 도읍, 평양의 위치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이 책의 저자는 “그렇다”고 답한다.

기존 강단사학의 “고구려 첫 도읍이 압록강 중류 일대의 환인(桓仁) 지역에 있었다거나 혹은 427년에 천도한 평양이 지금의 대동강 일대에 있었다는 그러한 관점들은 사대주의와 식민사학의 산물 그 자체에 의해 형성되어 유포된 허구일 뿐”이라는 것.

▲ 임찬경, 『고구려와 위만조선의 경계』, 한국학술정보, 2019.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고구려사 전문연구가’로 불러달라는 임찬경 박사는 책 1부에서 고구려 첫 도읍 졸본의 위치를 비정하고, 2부에서 고구려 평양의 위치를 새롭게 고증하고 있다. 3부는 위만조선과 창해군의 위치를 비정하고 있다. 어찌 보면 너무나 기초적인 연구 주제이지만 강단사학계와는 첨예한 대치선을 긋는 엄청난 시도다.

북송(北宋)의 사신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 북위(北魏) 시기 역도원의 『수경주』 등 중국의 고문헌은 물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우리 고문헌들까지 풍부하고 엄밀한 사료 검토들과 기존 사학자들과 달리 발품을 판 중국 현장 답사까지, 결코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진 성과물이 아니다.

결론만 인용하면, 고구려 첫 도읍지 흘승골성, 즉 졸본은 환인(桓仁) 보다 한참 서쪽에 위치한 요하 서쪽 의무려산(醫巫閭山일) 일대, 요(遼)에서 설치한 의주(醫州) 인근이라고 비정하고,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고구려 건국 연대도 『삼국사기』의 서기 37년 보다 훨씬 이전인 위만조선(서기전 194-108년) 성립 이전(서기전 2세기)으로 소급한다.

또한 427년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은 평원왕이 586년에 천도한 장안성과 완전히 다르고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현재의 요양(遼陽) 일대로 추정했다. 물론 위만조선도 한반도 평양 일대가 아니고 창해군 역시 한반도 인근이 아니다.

물론, 책에는 이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세세한 고문헌 검토 과정과 역사적 맥락 해석들이 촘촘이 짜여져 있고, 특히 역사 왜곡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논리적 근거와 이해관계들로 얽혀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 상세히 고찰돼 있다.

저자는 이같은 역사 왜곡이 지금까지 바로잡혀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이유를 “그 시대 지배계급의 사관(史觀)으로 역사는 서술되었고, 그 사관에 의해 역사왜곡이 이루어졌었다”는 점에서 찾았다.

즉 “조선시대는 조선시대 지배계급인 사대(事大) 및 봉건적 유학의 입장에서”,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와 그에 기생하는 친일 과 반민족 세력에 의한 한반도의 영구적 식민지화를 위해”,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사대와 식민의 잔재들이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재편되면서” 한국고대사의 왜곡이 지속돼 ‘역사적 산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분명히 필자가 서문을 작성하는 이 시점에도, 한국의 역사학계는 사대사학자와 식민사학자 및 그 동류집단과 아류집단들에 의해 지배 및 장악되어 있다”며 “이 책의 출판이 그런 역사왜곡을 깨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운좋게도 중국의 동북공정이 본격화되기 전인 1990년대에 중국 연변대학에서 고구려 연구로 역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문헌 열람과 현장 답사에 제한을 거의 받지 않고 연구가 가능했던 것.

그간 「『고려도경』‧『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대와 첫 도읍 졸본」(2015), 「『수경주』를 통한 고구려 평양의 위치 검토」(2017), 「조선 즉 위만조선과 창해군의 위치에 관한 연구」(2018) 등 많은 논문을 발표한 그는 「고구려 평양 위치 왜곡과 그 극복 방안」(2019)에 이르러 ‘역사적폐’(역적) 청산에 발벗고 나서게 됐다.

아마도 그 첫 시도가 바로 ‘위만조선, 졸본, 평양의 위치 연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일 것이다. 논문 발표에 치중해온 그가 첫 단행본을 엮어내며 헌사를 바친 이는 지금은 고인이 된 연변대학 지도교수 강맹산 선생이다.

어쩌면 저자는 이 책을 신호탄으로 기존 역사학계와 ‘역사적폐 청산 전쟁’을 개시했는지 모른다. 다만, 그 방법론은 철저히 문헌 검토와 현장 답사를 통한 학술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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