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계산법에 따르면 한반도의 ‘비핵화 대 평화체제’를 둘러싼 북미 타협의 시한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북한과 미국 간의 분위기는 아주 조용합니다. 지난달에 있었던 양측의 공방, 특히 북한의 대미 압박을 상기한다면 지금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잠잠합니다.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습니다.

11월만 해도 북한의 미국에 대한 압박은 가히 융단폭격 수준이었습니다. 북미 실무협상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를 필두로 김계관 외무성 고문,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국무위원회 대변인, 권정근 외무성 순회대사 등 대미 협상가와 전문가들이 돌아가며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어느 날엔 하루에 두 사람의 담화가 나온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연말 시한’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이 대화의 기선을 잡기 위해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명확하게 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한미가 연합공중훈련계획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는데 북한이 이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다는 것입니다.

2년 전인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미국 측에 제안했음을 밝혔고, 이를 계기로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게 됐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영철 위원장은 11월 18일 담화에서 “합동군사연습이 연기된다고 하여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아예 ‘완전 중지’를 요구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한 점입니다. 지난 11월 20일 러시아와의 전략 대화를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 쪽에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는 중대한 전략적 결정을 내린 이후라면 모르겠지만, 그전에는 지금까지 놓여있던 핵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서 이제는 내려졌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선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후 비핵화 회담’ 원칙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는 11월에 일관되게 나왔습니다. 김계관 고문은 11월 18일 담화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와의 대화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면 우리를 적으로 보는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같은 날 조금 늦게 김영철 위원장도 담화에서 미국을 향해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전까지 비핵화 협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일축했습니다.

하루 뒤인 19일 김명길 순회대사는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조미(북미)대화는 언제가도 열리기 힘들게 되어있다”며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서 김 순회대사는 11월 14일 담화에서 미국에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이 아닌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북한 측 인사들은 여지없이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합니다. 그럼 북한 측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위 김 순회대사의 말처럼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이 아닌 ‘생존권 및 발전권’과 관계있는 것이라면, 미군의 핵 위협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북한의 ‘생존권’과 대북 제재는 북한의 ‘발전권’과 각각 연관이 있겠지요.

아무튼 북한의 대미 대화 재개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한마디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연기’가 아니라 ‘완전 중지’라는 것입니다. 또한 일련의 대북 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공은 미국의 코트에 떨어져 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폭풍전야처럼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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