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미국 행태의 근거 한미상호방위조약 개폐해야

‘미국은 제 호주머니 돈 쓰듯이 방위비를 한국에 요구하고 한국 영공을 제 집 드나들 듯 한다.’

최근 미국이 한국에 주한미군방위비분담금 5배 인상 요구를 하고 수도권 비행금지구역을 미 최첨단 정찰기가 비행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군사적 주권문제를 돌아보게 된다.

미국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한 방위비 폭탄 인상에 대해 ‘공정하고 공평한 부담 분담’을 강조하면서 한국이 수용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게 총만 겨누지 않았을 뿐 상식에서 너무도 거리가 먼 요구를 하는데 떳떳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다. 말을 뒤집으면 한국이 공정하지 않고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이런 해괴한 논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주한미군방위비분담금 인상과 관련해 미국이나 한국 정부는 설득력 없는 구실만을 거론할 뿐,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법리적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만약 법리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요구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지탄받아야 할 강대국의 횡포일 뿐이다.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이 왜 공정하고 공평하고 한국이 그렇지 않은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이번에 대폭 인상을 수용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나라 살림에 엄청난 주름살이 가면서 그 부담은 결국 국민의 몫이 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견제 수단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 얻는 효과가 엄청나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을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세계 4대 전략지역으로 지정했었던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그러면 미국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한국에 공정, 공평을 요구하는 것인가?

미국은 방위비 대폭 분담 요구를 하면서 미국 본토에 배치된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비용, 한반도 역외지역 작전에 주한미군을 투입하기 위한 준비태세의 강화를 위한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비용 등 터무니없는 항목을 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분담금에 대한 협정인 주한미군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은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 군사건설 및 연합방위 증강사업, 군수지원비 등에 국한한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SMA 관련 조항의 수정 조치 없이 한국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건 불법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고자세로 한국에 대해 공정, 공평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국제 불량배인가, 아니면 한국이 머저리라서 그런가?

이 부분에서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살펴야 한다. 만약 그 근거가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있다면, 한국의 부담을 키우는 조항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 이 조약이 갖고 있는 불평등성, 즉 한국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 조약은 그 전문과 3조에서 태평양지역의 안보를 거론하고, 4조에서는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right)로 규정했다. 4조는 미국을 슈퍼 갑, 한국을 슈퍼 을로 규정한 세계 어느 국제법서도 찾아보기 힘든 불평등 규정이다. 4조를 바탕으로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인 SOFA가 부속 협정으로 만들어졌고, SOFA에서 주한미군방위비분담특별협정, SMA가 만들어졌다.

SOFA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고, 주한미군방위비분담협정은 SOFA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를 담았다.

SOFA가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미국이 부담하게끔 했는데도 양국은 SOFA 5조의 예외적 협정을 별도로 만든 것이다. SOFA에 그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런 조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의 '권리' 조항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변칙을 확대할 경우 이번과 같은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요구가 나올 국제법적 근거가 된다는 해괴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한미동맹 ‘갱신’을 언급하며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힘든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무임승차 불가론’에 이어 ‘한미동맹 재정립론’ 등 각종 논리를 총동원한 것이다(경향신문 2019.11.22). 미국이 선제적으로 한미동맹 갱신을 언급한 배경이 어떤 의도인지 확실치 않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적극 수용해 구조적으로 한반도 상황을 21세기에 맞게 변형, 정상화하는 노력을 할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계속 부당한 요구를 해올 경우 한국 정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시킬 수 있다)에 따라 현 불평등한 군사동맹의 개폐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단초가 되는 방위조약을 필리핀과 같은 수준으로 개정하면 한미 간에 분쟁이 생길이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협정과 비교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은 명백히 드러난다. 필리핀에서 미군은 필리핀 부대 내에 주둔해야 하고 미군의 영구기지는 불가하다. 미군 기지는 필리핀 국내법의 적용을 받아 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한미상호안보조약은 무기한 유효하다고 되어있지만 필리핀, 일본의 경우 그 기한이 10년으로 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의 상호방위조약도 미군의 일본 배치를 권리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주한미군방위비분담금 문제에 대해 미국 측은 주한미군이 전적으로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면서 한국의 안보 부담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전 방위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대북 억지 역할과 함께 미국의 중국과 러시아 견제용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주한미군은 중국을 겨냥한 비수라는 인식과 함께 미국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였다.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 시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될 것에 대비해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만들어 남한에 영구 주둔할 장치를 마련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 등 대여섯 개의 사령관직을 겸직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는 장치에 불과하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해 80년대 말까지 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하는 등 자국 영토처럼 주한미군 기지에 첨단무기나 세균전 무기 등을 들여놓거나 빼가는 일을 되풀이 했고 유사시 미 본토의 병력을 직접 투입하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1990년대 초까지 실시했다. 주한미군은 세계 여러 분쟁 지역 미군의 순환배치를 지원하는 주요 군사 기능도 도맡고 있다. 주한미군의 이런 기능은, 미국이 슈퍼 갑이 되면서 한국의 대미 군사종속을 제도화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미 공군에 2대 밖에 없는 최첨단 RC-135U(컴뱃 센트) 정찰기를 서울과 경기도 일대 3만1천피트(9천448.8m) 상공을, 미 해군 소속 정찰기인 EP-3E가 수도권 등 한반도 상공 2만3천피트(7천10.4m)를 비행토록 했다 이들 정찰기는 미국의 주력 통신감청기로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안포 사격 이후 한반도를 비행했는데 이런 조치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미군 정철기가 비행금지 구역인 서울 상공 등을 날아다니는 조치에 대해 관행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란 애매한 입장만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수년 전 중국이 G2로 급성장하자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를 배치해 미 본토를 방어할 미사일 방어체계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강력 반발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검토하는 한편, 한국에 경제 보복 조치를 취했다. 한미군사동맹의 강화가 한반도 안보 상황 및 한중 경제관계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떤 형식으로든 한미군사동맹의 수정 보완책이 필요한 이유다.

한미동맹을 정상화하는 것은 특히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책이 국가 간 호혜원칙을 보장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란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마비시킨 특권을 인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유지되는 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전략과 같은 불합리한 조치는 수정되지 않으며, 한반도 정책에서 한국이 미국에 종속되는 비극적 현실이 개선되기 어렵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2~13위권이고 대 미국 무기수입은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한국이 군사적 자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 정부나 시민사회 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침묵하고 그 곁가지인 SOFA, SMA에만 매달리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미국의 비이성적인 수탈적 태도는 계속될 우려가 크다.

여야는 방위비 분담에 대한 미국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대해 결의안 하나 채택 못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두고 통일부 장관이 미국에 건너가 양해를 구한다는 식의 설명회를 했던 모습은 너무 한심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5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을 공식 거부했고,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한 시한이 연말로 다가오면서 내년 초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거나 4월 총선이 북한 핵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내외 정세는 눈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가는 상황임을 고려해 정부나 시민사회의 경각심이 요구된다. 특히 미국이 ‘한·미동맹 재정립론’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한미상호방위조약 개폐를 통한 한미관계의 정상화에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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