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세계적인 음식점 가이드인 미슐렝은 객관적이고 엄격한 평가를 통해 음식점을 선정한다고 알려진, 최고 권위의 음식점 가이드이다. 미슐렝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은 최고의 음식점으로 인정받으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으로 등극한다. 그만큼 미슐렝 가이드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런데 이 미슐렝이 한국의 유명 음식점에 2억을 내면 별 3개를 주겠다는 뒷거래를 제안했다고 한다. 손님으로 가장한 평가원이 은밀하게 조사해서 엄정하게 평가한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실제로는 이런 은밀한 제안을 통해 평가원 방문 일시는 물론, 제공할 음식의 종류까지 사전에 미리 통보해 주고 평가를 진행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음식점 평가는 처음부터 허상일 수밖에 없다. 입맛은 개인 취향이고, 누구에게는 최고의 식당이 누구에게는 최악일 수 있다. 서양인이 한국 음식을 평가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와인 병의 내용물을 바꿔 담아서 실험을 진행해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믈리에들도 제대로 와인 맛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스위스 대학의 학술 연구 결과도 있다.

어느 방송에서 커피 동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해보니 1000원짜리 편의점 커피를 제일 맛있는 커피로 꼽기도 했다. 그러니 맛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며, 별 몇 개로 객관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미슐렝 류의 음식점 가이드에서부터 방송의 맛집 프로그램은 차고 넘쳐난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무슨 무슨 방송에 소개된 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음식점을 심심치 않게 본다. 워낙 많은 방송 프로그램이 맛집을 소개했고, 과장을 조금 보태서 방송 출연한 집이라는 간판이 한집 걸러 걸려있으니, 이런 간판을 믿고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수많은 식당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을까? 원인은 물론 수익 즉 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방송 제작 환경이 재정적으로 매우 열악해진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고, 프로그램 제작자는 어떻게든 제작비를 마련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에 흔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방송에 소개해주는 것을 전제로 촬영하면서 해당 음식점으로부터 협찬 명목으로 지원을 받는 것이다.

항간에는 이런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음식점의 거의 대부분이 일정 금액을 협찬하는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만큼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미디어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 것인데, 사실 미디어도 정보를 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 개인 사업자일 뿐이니,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미디어가 평가를 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은 비단 음식점뿐만이 아니다. 대학교 서열도 미디어가 매겨준다. 중앙일보가 한국 대학교를 평가해서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고, 거대 언론이 갖는 영향력으로 인해 순위에 따라 대학교의 이미지가 좌우되는 현실이 되다 보니, 각 대학교는 언론사의 평가에 목을 매는 지경이 되었다. 영국의 대학평가 회사인 QS 순위는 특히 한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조선일보와 제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이건 대학이건, 이런 류의 평가 기관들은 대부분 미디어와 연계하여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그러다 보니 권력이 되고, 권력이 되다 보니 미슐렝 가이드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미슐렝 가이드가 자신이 가진 권위를 이용하여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듯이, QS도 대학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대학 순위를 높이는 방법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이것은 굉장히 비윤리적인 일을 대놓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평가를 하는 평가 대상자에게 돈을 받고 컨설팅을 해준다는 것은, 곧 대학 순위를 돈을 받고 조작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QS 대학 랭킹은 조선일보라는 언론매체와 손잡고 한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QS는 처음 영국의 더 타임스와 손잡고 대학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QS는 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업을 시작한 특이한 이름의 사람인 Quacquarelli Symonds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이 무명의 인사가 국제적인 대학평가 기관이 된 것은 더 타임스라는 권위지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더 타임스는 2010년 QS와 결별하고 자체적으로 대학 순위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바로 타임스 고등교육 세계 대학 랭킹(Times Higher Education World University Rankings)이다. 머릿글자를 따서 흔히 THE순위로 알려져 있다. 더 타임스와 결별한 이후 QS는 다른 협력 미디어를 찾아 나섰고, 아시아에서는 조선일보와 함께 했다.

그런데 정작 전문가들은 미디어가 진행하는 이런 대학 순위 평가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객관성을 확실하게 담보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인 대학교의 순위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높은 신뢰를 받는 대학 평가 순위는 중국 상하이 자오퉁 대학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대학 학술 순위 (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 ARWU)이다.

이 평가는 순수하게 객관적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하기에 가장 신뢰성이 높다고 인정받는다. 이 평가의 목적 자체가 중국 정부가 세계 속에서 자국 대학의 위치와 경쟁력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하이 자오퉁대학에 조사를 의뢰한 것이기에 미디어의 이익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디어가 배제되어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통적인 미디어들은 신뢰성과 영향력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틀림없이 중요한 몫을 했지만, 전통적인 미디어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언론사의 경우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덕목인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했기에 몰락을 자초했다. 자업자득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언론의 신뢰성이 추락하면 궁극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라는 사실이다. 언론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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