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선언(1943.12.1.)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의 단호한 처벌 및 그 희생자 보호, △1914년 제1차 대전 개시 이후 일본이 탈취해간 태평양의 일부 도서와 만주 대만 등 중국의 영토주권 회복, △일본이 탐욕과 폭력으로 탈취한 영토주권 회복(독도), △한국인의 노예상태에 유의한 적정한 시기에 한국인의 자유와 독립 및 인권 보호를 미국, 영국, 소련(중국)이 포함된 연합국이 최초로 합의한 신사협정이다.

이어 포츠담선언(1945.7.26.)에서 위 카이로선언의 전면 이행 및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일본에 요구했고, 이어 실제로 일본의 ‘포츠담선언 무조건 수락’(1945.8.10.)으로 발전했다. 또 포츠담선언 무조건수락 조건이 담긴 ‘일본의 항복문서 서명’(1945.9.2.)-‘SCAPIN 677호’(연합군총사령부 지령 제677호)(1946.1.29.)에 의해 실제 집행명령으로 연결되어 법적 구속력 있는 문서로 되었다. 다시 말해 카이로선언 자체는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이지만, 선언내용은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 문서가 되었다.

그런데 국제법적 구속력 있는 카이로 선언의 핵심정신들이 태평양 전쟁을 법적으로 최종 종결하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 단계에서 애매하게 처리되어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고, 그 후에도 충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 그 요인은 당시 미국이 1947년 이후 불어 닥친 냉전질서에 대비해 일본 전범에 대해 너무 관대하였고, 만주 일본 관동군을 과대평가해 소련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게 한 전략적 큰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로비스트(예: Willam Sebald)가 미국무성에 소련견제용 안보를 빙자해(독도에 레이다 기지 및 기상대 설치 제시 등)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단계에서부터 카이로선언 핵심정신 실천에 대한 집요한 방해 공작이 있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미국 국익 중심으로 전통적 평화조약의 징벌적 조항을 배제하고 결국 일본에게 면죄부 문서 및 냉전 질서 옹호문서로 전락되어, 그 아류인 일제 36년 강점을 합법화해 준 1965년 한일 협정체제와 냉전질서의 버팀목인 1953년 한국정전협정체제를 탄생시켰다.

그러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빙자해 일본이 강변하는 국제법을 위반한 몇 가지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

첫째 일제강제동원 한국 대법원 배상판결(2018.10)은 반인륜범죄를 위반한 일본전범기업에 대한 피해자손해배상 판결이다. 일본정부가 2012년처럼 대법원 판결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반 인륜범죄를 금지하는 국제 강행규범(jus cogens)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이 중재에 응하지 않는 것을 국제법위반이라고 강변한다. 그런데 중재에 응하지 않는 것은 해당국가의 선택사항이지 의무사항이 아니다. 더구나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는 1차적 해결로 외교적 해결, 2차적 해결로 중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일본에게 제1차적 해결인 외교적 해결을 우리 정부가 수차례 요구하였지만, 전혀 응하지 않고 2차적 해결인 중재요구를 고집하는 것은 그 진정성이 매우 의심된다. 이는 대법원 판결을 흠집내려는 홍보성이 짙다.

둘째, 최근 2019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조치도 그 기저에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기반한 한일간 역사인식의 근본차이에서 온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19년 7월 1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대한 경제제재에 돌입하였다. 이번 시행령취지가 “국제평화와 안전유지를 위해서”라는 안보위해를 빙자해 대한국수출규제라는 경제보복조치 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 대법원 재상고 확정판결 집행에 대한 불만이다.

이는 수면하에 잠재해있던 한일 간의 근본적 갈등이 노골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일본의 대한국수출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배제는 자유무역질서를 지향하는 WTO협정(세계무역기구협정)의 명백한 위반이다.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는 WTO 상소기구의 분쟁처리 패널을 통해서 2019년 9월 최종심인 2심에서 일본의 국제법 위반으로 판정됐다.

셋째 일본 성노예 위안부 헌법재판소 판결(2011)이후, 일본정부는 한국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서 공식으로 요구한 외교적 해결, 중재해결 요구를 당시 모두 거절하였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한국 주재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의 집행(2019.7)을 앞두고 해당기업에 압력을 넣어 방해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90년대 중반이후 성노예 관련 UN인권이사회 및 국제법률가협회의 수많은 권고결의(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배상을 위한 국내 특별법 제정)도 모두 무시하였다. 한일 관계에서는 일본이 국제법 위반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넷째, 카이로선언에서 “탐욕과 폭력에 의해 탈취한 모든 영토로부터 일본은 축출된다”는 국제사회의 합의에 따라, 1905년 일본의 독도 선점논거는 “탐욕과 폭력에 의한 탈취한 영토”에 해당되므로 명백한 국제법위반이다. 1943년 카이로선언에서 독도는 탐욕과 폭력에 의해 탈취한 영토이며,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재확인, 항복문서(1945.9.2.)에서 법적 구속력이 부여되고, SCAPIN(연합국 총사령부 지령) 677호에서도 일본영토에서 명백히 제외됐고, 이후 대한민국정부에 승계,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한국의 영토이다.

그런데 일본의 집요한 로비작전으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2조 1항에서 ‘독도’ 명칭이 삭제되고, 독도 영유권 문제가 애매하게 처리되었다. 일본은 현재 이것을 빌미로 한국의 불범점거를 강변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남긴 제국주의 유산이다.

다섯째,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인의 노예상태에 유의한 한국인의 자유와 독립” 약속은 현안 일본국위안부 해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이다. 그런데 일본은 피해국 및 피해자에 대한 법적 사과 및 손해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이러한 문제를 명백하게 규정하지 않았고, 애매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체제의 이러한 많은 한계점 때문에 동아시아는 아직도 결국 식민지주의 및 제국주의의 유산과 냉전 질서 속에서 현재까지도 심각한 지역갈등을 현재 앓고 있다.

반면 유럽과 국제시회를 보자. 유럽은 1986년 개혁개방 이후 냉전체제인 얄타체체가 무너진 지 30년도 넘으면서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을 넘어 유럽연방(European Federation)을 꿈꾸고 있다. 독일통일(1990.10.3.)이 이루어진 지 내년 2020년이면 30년이 된다.

또 국제사회는 2001년 UN이 조직한 인종차별국제회의인 남아프리카 더반(Durban)에서 소위 ‘Durban 선언’을 하였다. 특히 Durban 선언은 노예거래는 전쟁범죄이고, ‘식민지주의’는 21세기가 “청산할 과제”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탈냉전이후 작금의 국제법 및 국제사회의 지향가치는 ‘국제인도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적극적 평화 개념’ 방향으로 쉼없이 발전해가는 것이 큰 흐름이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세계 경제력의 3분의 1, 그리고 시민들의 높은 교육열 및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이에 걸맞는 국제평화, 인도적 협력, 생태계보호를 비롯한 주요 국제문제 현안에 국제적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동아시아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남긴 1951년 샌프란시스코체제라는 냉전체제에 아직도 갇히어 영토분쟁, 역사갈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쟁으로 큰 내홍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냉전체제는 구체적으로 한반도에는 일제 식민지 잔재 미청산과 한반도 장기분단 체제의 합법화를 제공하고 있다. 그 상징이 일제강점을 합법화한 1965년 한일협정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1953년 한국 정전체제이다. 이 두 체제가 아직도 연명하는 이유는 미국이 주도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냉전체제라는 숙주가 아직도 동아시아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를 고수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패권주의가 동아시아에 신냉전체로서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일 간 갈등을 자세히 보자. 한 예로 한일 간 근본적 현안 갈등은 일제강점의 법적성격에 대한 한일 간 근본적 입장 차이의 문제이다. 이것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침략국인 일본의 처벌조항 및 영토주권회복 규정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한데서 연유한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체제와 그 아류인 1965년 한일협정체제는 한반도의 36년 일제강점의 불법성을 명백히 규정하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전범국가를 처벌하는 응징조약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전범국가 일본에게 면죄부를 부여하였다. 같은 날 서명된 미일안보조약으로 일본을 전범국가에서 정상적 주권국가로 조속히 회복시켜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면죄부 조약을 맺게 한 것이다. 이는 당시 동북아에 엄습한 냉전전선에 지나치게 과민 반응한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정책의 변화에서 연유한다.

생각건대 이러한 한일 간 근본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 우익세력에 기반한 아베정부의 역사인식제고 및 정책변화가 그 관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일 간에도 이 문제를 한일 양 정부라는 국가주의에만 맡겨둘 수 없다. 국가를 초월해 동아시아 시민사회가 우선 나서야 한다.

우선 역사적 진실에 기초한 동아시아 평화와 역사화해 및 인권을 기원하는 깨어있는 조직화된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소속 정부 및 국민 그리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이에 가칭 1951년 샌프란시스코 체제 극복을 위한 ‘아시아 NGO평화네트워크’(Asian NGO Peace-Network, ANPN)결성을 제안한다.

제1차적으로 ANPN은 ‘아시아 시민 사회 헌장’(Asian Civil Society Charter)을 제정하고, 이에 기초한 구체적 행동계획(action program)을 점차적으로 실천하는 캠페인을 국경을 넘어 벌여 나가가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ANPN은 소속 정부를 압박하여 ‘아시아 시민사회 헌장’(Asian Civil Society Charter)을 수용하는 국가차원의 ‘Council of Asia’(아시아 평의회)로 발전되어가야 할 것이다. 유럽의 ‘Council of Europe’(1949) 결성 과정도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역사화해‧인권공동체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한계점을 극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한일 및 동아시아에서 과거사 및 냉전질서에서 오는 역사 왜곡문제 및 영토적 갈등해결을 위한 근본적 해법이다. 결론적으로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ANPN결성 - ‘Asian Civil Society Charter’ 채택 - ‘Council of Asia’의 로드 맵을 추동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 상황은 아시아와는 많이 달라도 유럽의 ‘European Social Charter’ 및 ‘Council of Europe’ 그리고 유럽안보협력회의(1975 CSCE, 지금 OSCE)가 유럽평화 및 독일통일에 기여한 역할 등 역사적 경험도 참고할 만하다.

이제 동아시아는 카이로선언 핵심가치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70년전에 미국이 자국국익에 집착해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냉전적 질서라는 새로운 진영논리를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동아시아의 평화는 미국중심의 양자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다자주의로 나가야 한다. <동아시아 6자 다자간 평화회의>가 그 정답이다.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남북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 평화마라토너와 함께하는 사람들’(평마사) 상임공동대표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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