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화 / 종주대원

 

일자 : 2019년 10월 13일 (토요 무박 산행)
구간 : 진고개~동대산~두로봉~응복산~마늘봉~약수산~구룡령
거리 : 23.23km
시간 : 13시간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인원 : 11명

 

이번 산행은 오대산지구 진고개~구룡령 구간이다. 오르내림이 심한 봉우리 여러 개를 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조망마저 없는 지루한 코스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태풍으로 인해 두 번이나 산행이 무산되어 몸의 리듬이 깨진 상태라 걱정이 앞선다. 지금까지 끌고 온 힘이 오늘 산행을 밀어주리라 믿으며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선다.

사당역 주차장에 리모델링된 전용버스 옆에서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다. 버스는 외관뿐 아니라 내부도 완전히 바뀌었다. 우등버스 급으로. 안정감 있는 운전실력과 고객 서비스... 지금 기사님을 만난 건 행운이다.

아늑하고 포근한 의자에 앉으니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들머리 진고개에 안개비가 내리고

▲ 안개비가 내리는 진고개 동대산 방향 등산로 입구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2시 30분 진고개에 도착하여 내리자 부슬부슬 안개비가 내리고 싸늘한 바람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예상치 못한 비. 초겨울 기온에 당혹감이 든다.

각자 몸을 풀고 길 건너 안내 표지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조금 오르다보니 다행히 비는 그쳤다.

진고개에서 동대산을 향해

진고개에서 동대산까지는 1.7km 계속 오르막길이다. 사방은 깜깜하고 대원들의 랜턴 불빛 만 반짝인다. 밤사이 비가 왔는지 길은 질척거리고 바람이 부니 물기를 머금은 나무에서 비오듯 물이 떨어진다.

▲ 어둠속 1시간여를 올라 도착한 동대산 정상.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거칠게 나는 숨소리, 흐르는 땀 조용한 산행. 오늘 산행의 난코스 중 하나임이 증명되는 듯하다. 한 시간여 만에 동대산에 도착했다.

해발 1433m. 아담한 정상석 앞에서 빠르게 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한다.

랜턴과 씨름하며 두로봉을 향해

오로지 발끝을 비추는 랜턴 불빛만 의지하며 산을 내려간다. 동대산에서 두로봉까지 6.5km는 대체로 평이한 길이지만 어둠속에 내리막길은 힘들다.

미끄러질까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속도는 떨어지고 금세 지친다. 흐르는 땀과 같이 콧잔등으로 내려오는 랜턴을 끌어올린다. 랜턴과 씨름하며 걷다보니 커다랗고 하얀 바위가 나타난다. 차돌백이다.

▲ 차돌백이의 유래가 된 커다란 석영 암석 앞에서 박명한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차돌백이는 동대산과 두로봉 사이 능선부에 발달한 석영 암맥으로, 희고 두터운 차돌(석영)이 박혀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차돌백이 석영 암맥은 중생대 쥐라기(약 1억 8,000만년 전~1억 3,500만년 전)에 마그마가 기반암을 관입하여 형성되었고, 이후 지표면과 기반암이 지속적으로 풍화를 받아 제거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이유는 차돌백이를 이루는 석영이라는 광물은 조직이 치밀하여 주변의 암석보다 풍화작용에 대한 저항도 크기 때문이다. <오대산 국립공원 사무소>

오대산 깊은 산중에 서있는 거대하고 독특한 바위. 갈 길이 멀지만 사진 한 컷씩 찍고 걷는다. 다시 1시간여 지나 신선목이에 도착했다. 목도 축이고 당도 보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 사위가 밝아오면서 안개 속에서 단풍이 든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들머리에서 3시간 산행 새벽 6시. 여름이면 해가 뜰 시간이지만 가을밤은 길기만 하다. 힘을 내 걷다보니 여명이 밝아오고 주위 단풍이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한다.

헤드랜턴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거추장스러운 랜턴을 벗어던지니 한결 수월하다. 오르막을 가볍게 치고 오르니 두로봉이다. 진고개에서 두로봉까지 8.4키로 오늘 산행의 3분의 1정도를 걸었다.

이정표를 보니 비로봉을 거쳐 상원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있다. 14키로 낚시에 걸려 왔다는 김종택, 박흥기 대원. 대장이 하산할 수 있는 기회라며 의사를 타진한다. 못 먹어도 고라는 완주의사를 확인하고는 만월봉을 향해 간다.

라면 예찬 아침

▲ 오대산 다섯 봉우리 중 두 번째 두로봉. 두로봉은 한강기맥의 출발점이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두로봉에서 신배령 사이 맞춤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아침 먹을 준비를 한다.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고, 전용정 대장, 박명한 대원은 라면을 끓인다.

쌀쌀한 날씨에는 라면국물 만한 게 없다. 긴장된 몸을 풀어주고 맛도 좋다. 늘 푸짐한 반찬, 콩나물 넣어 끓인 시원한 라면. 저마다 라면 예찬 한마디씩 한다. 마지막으로 커피까지 행복한 식사 시간.

만월봉에서 듣는 고산병 이야기

▲ 올해는 태풍과 이상기온으로 단풍이 그리 곱지는 않지만 그래도 울긋불긋한 단풍 숲속에서 모두들 기분이 좋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짙게 깔린 안개로 시야가 좁아 멋진 오대산 단풍을 즐길 수 없음이 아쉽다. 주변 노란 단풍, 신갈나무가 무성한데 빨간 단풍은 보기 힘들다. 신배령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여기서 만월봉까지는 오르내림이 심하고 가파른 통나무 계단을 지나는 고생길이다. 10시 40분 만월봉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1281미터 좁은 정상. 쪼구리고 앉아 소라 안주에 맑은물로 열량을 보충한다.

▲ 이날 산행에서 유일한 중간 탈출로인 만월봉에서의 휴식.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11월 중순 히말라야 등반에 나서는 김종택 대원. 고산병은 없는가 묻는 대장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시작된 고산병 이야기. 처음 히말라야를 가서 고산병으로 그냥 돌아와 엄청 속상했다던 이야기이며, 묘하게 빠져들게 만든다. 변광무 대원과 쌍벽을 이룰 입담고수가 등장했다. 후미대장을 노린다는 것 또한 닮았다.

지루한 산행길에 활력소를 준 김종택 대원. 변광무 대원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어 함께하는 산행의 즐거움을 상상해 본다.

멀고도 지루한 약수산 가는 길

등산지도를 보니 구룡령까지 아직 8km 가까이 남았다. 지도를 보던 몇몇 대원이 많이 남긴 했지만 내리막길이라 쉽지 않겠냐며 안도하는 모습이다. 알고 보니 해발고도를 참고하지 않고 그림만 보고 안심한 듯하다.

급경사를 내려가 평이한 길을 걷다 산꾼 두 사람을 만났다. 버섯 많이 따셨냐고 물으니 “두 번의 가을 태풍으로 포자까지 쓸려 내려가 송이고 능이고 씨가 말랐다” 하신다.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무력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 만월봉을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한 주목 군락지. 오대산도 주목이 상당히 많은 곳이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노오란 단풍나무 사이로 주목이 군데군데 보인다. 몇 백 년 됨직한 멋진 주목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목 군락지인가 보다.

만월봉에서 1.5Km로 걸으니 응복산이 나온다. 오래된 이정표만 서있고 정상석도 없다. 그래도 인증은 하고 가야지.

응복산 내려오는데 큰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고 버티고 있다. 약수산인가? 이렇게 가까울 리 없지. 넘어간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걷다보니 멀리 이정표가 보인다. 약수산? 가까이 가니 마늘봉이다. 약수산까지는 3.4Km 남았다.

노오란 단풍나무 사이 빨갛게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후미 대원들과 간격을 좁히려 천천히 걷는다.(속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쳐서 속도를 낼 수 없는 것)

약수산 2.8키로. 조금 전에 2.1키로 이정표는 뭐지? 이정표가 서로 바뀌었다는 결론에 이름. 설사 이정표가 맞다고 하더라도 지친 우린 2.1로 믿고 걷고 싶다.

▲ 마지막 승부처인 약수산에 오르기 전 남은 음식으로 기력을 보충한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약수산에 오르기 전에 남은 먹거리를 정리해 배낭을 가볍게 한다. 빵, 과일, 돼지머리에 막걸리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오른다.

이지련 단장님이 흰 밧줄 계단이 나오면 약수산 거의 다 왔다고 했는데, 쓰러진 나무 밑을 지나고 흰 밧줄 잡고 오르고 몇 번을 더 오르내리고 나서야 약수산이 나타났다. 1306미터의 약수산 정상에서 사진만 찍고 구룡령을 향한다.

▲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입담꾼 김종택 대원이 약수산 정상 표지석 앞에 섰다. 11월에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간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구룡령 하산길

이제 1.7Km 내려가기만 하면 날머리 구룡령이다. 그러나 하산길도 쉽지 않다. 작은 봉우리 몇 개를 넘고 나서도 700m 더 내려가니 구룡령이다. 드디어 13시간 긴 산행이 끝났다.

▲ 지금까지 산행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구간을 무사히 끝낸 후 구룡령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구룡령은 북으로 설악산과 남으로 오대산에 이어지는 강원도의 영동(양양군)과 영서(홍천군)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구룡령은 일만 골짜기와 일천 봉우리가 일백 이십 여리 구절양장 고갯길을 이룬 곳으로 마치 아홉 마리 용이 서린 기상을 보이는 곳이라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 한다.

몸은 갔어도 입은 살아있다

진고개 구룡령 구간 넘 지겹고 지쳐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코스지만, 한편 무사히 넘겨 어려운 숙제를 한 것처럼 후련하다. 오대산 단풍은 맛만 보고 힘들었던 이번 진고개에서 구룡령길.

오늘 산행은 강원도 콩으로 직접 만든 손두부가 들어간 두부해물 전골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구룡령 표지석 바로 앞에서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에서 만난 동네 주민에게 소개받아 찾아간 뒤풀이 집 ‘그리운 두부집’.

“몸은 갔어도 입은 살아있다”는 명언을 남긴 김종택 대원의 익살에 대원들은 힘든 산행도 잊어버리고 모두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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