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이라는 역사의 족적이 올 해처럼 굵직하게 찍히는 해도 드물다.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조선의열단 출범 등이 올 해로 꼭 10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도, 그 무게와 비중이 남달리 각인되는 사건들이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무언가 의미 있는 실마리나 마무리가 도출되지 않을까. 어쩌면 특별한 성취를 위한 전환점도 마련되지는 않을지. 특히 남북한 간의 공동이벤트나 형식적 만남을 넘어,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이 눈앞에 다가올 듯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올 해도 벌써 계절의 끝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의 정치와 외교는 물론, 경제‧사회‧체육 등 모든 분야가 그 시간의 정서만큼이나 시들해졌다, 게다가 남북의 장벽은 꽉 막혀 정체되고, 일각에서는 ‘반일종족주의’라는 해괴망측한 구호까지 등장하며 우리의 자존심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기대가 꺾이면 의기도 소침한다. 허무와 방탕의 경계에 서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방탕은 인간됨의 자존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기대를 먹고 사는 인간에게 내일이 없는 삶만큼 가혹한 형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절망까지도 감당하게 된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과도 같다. 어제가 아랑 곳 없고 내일도 기약이 없다. 구조가 무너지고 우리도 문드러졌다. 나마저도 부정해야 하는 오늘은 더더욱 힘들다.

그 절박감에서 문득 상기되는 것이 이육사의 시구(詩句)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 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때로는 눈을 감는 길이 절망의 탈출구가 된다. 거기서는 죽었던 사람이 다가오고 잃었던 모든 것을 재구(再構)할 수 있다.

절망 속에서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꿈 밖에 더 있을까. 꿈은 상식을 부수고 차원을 무너뜨린다. 이육사에게 일제강점기는 사방 둘러 무릎 꿇을 곳 없는 암담한 현실이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독립된 공간의 함성이 들끓어 올랐다.

이육사의 꿈은 항상 그의 현실적 의지와 정비례했다. 강하면 와 닿고 약하면 멀어졌다. 그것은 낭만적 유유자적이나 물아일체가 아니었다. 치열한 현실의 연장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꿈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과는 다르다. 현실 초극을 위한 치열한 의지로 통했다.

비결이나 예언 역시 꿈과 현실을 매개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된다. 그것은 당대 인간들의 현실도피나 삶의 꿈이 투영된 사유물이다. 물론 긍정적 요소는 성취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부정적 내용은 경계를 위해 새겨야 할 일이다.

1910년 대 초반 북간도 화룡현 청파호(靑波湖)에서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백두산 북쪽 기슭의 청파호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당시 청파호는 만주 대종교의 거점이자 독립운동지도자들의 회합 공간으로, 대종교의 교주였던 홍암 나철을 비롯하여 중광단을 이끌던 백취 현천묵과 백포 서일, 그리고 남파 박찬익 등의 거점이었다. 연해주의 보재 이상설이나 상해의 예관 신규식, 우천 조완구, 그리고 안중근의 백부(伯父)였던 안태진, 북간도의 부자로 소문난 김영학 등등이 드나들며 모의한 곳도 이곳이다.

그 시기 개천절이었다. 개천절 봉축식을 거행하고 박찬익이 고경각(古經閣, 대종교 교주의 집무 공간)으로 나철을 찾았다. 당시 시국과 관련한 대담 끝에 나철이 박찬익에게 주며 꼭 기억하고 간직하라는 시(詩)가 흥미를 끈다. 100여 년 전에 예견한 그 시의 전문은 이렇다.

조계칠칠일낙동천(鳥鷄七七日落東天)
흑랑홍원분방남북(黑狼紅猿分邦南北)
낭도원교멸토파국(狼道猿敎滅土破國)
적청양양분탕세계(赤靑兩陽焚蕩世界)
천산백양욱일승천(天山白陽旭日昇天)
식음적청홍익이화(食飮赤靑弘益理化)

본디 예언적 성격의 글은 중층적 상징성이 강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그러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 한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그 기본적인 함축만을 개괄해 본다.

‘조계’란 새[乙]와 닭[酉]이며 ‘칠칠’은 칠월 칠석으로 양력 8월 15일이다. ‘일낙동천’은 일본의 패망으로 새길 수 있다. ‘흑랑홍원’은 이념적 대립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분방남북’은 말 그대로 남북분단이다. ‘낭도원교’란 치열한 이념 대립이며 그로 인해 망가지는 한반도가 ‘멸토파국’의 상징성이다. ‘적청양양분탕세계’는 맹목적 이념 대립이나 패권주의로 인해 혼돈으로 치달아가는 지구촌사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천산백양’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과 맞닿아 있고, 그 정체성이 바로 세워지는 날을 ‘욱일승천’으로 드러냈다. 마지막구의 ‘식음적청’은 우리의 정체성을 토대로 대립을 극복하는 것을 뜻하며, ‘홍익이화’는 진정한 세계주의의 구현을 말한다. 이를 토대로 나철의 원시를 풀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을유년(1945년) 팔월 보름 무너지는 군국주의
패권주의 이념 투쟁 동강나는 한반도
냉전대립 외래사조 금수강산 진흙탕
양보 없는 가치 논박 세계주의 먼먼 꿈
백두산 배달 기운 높이 솟아 오른 날
이념 가치 하나 되는 온누리 한나라

이 시에 나타나는 나철의 꿈은 5행에 모아진다.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간절한 열망이 그것이다. 그것이 없이는 통일도 기대할 수가 없다. 나아가 지구촌사회에서도 행세하지 못한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던져주는 나철의 일깨움일 듯하다.

우리의 현실은 시계(視界) 제로(zero)다. 정치인들의 행동은 천방지축이고 서민들의 살림은 백척간두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판국에 무슨 얼어 죽을 통일 타령이냐고 내게 따지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통일을 바란다. 그것도 간절한 마음으로. 그러나 진정 통일은 오려나. 그러면 언제나 오려는 지.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나철의 꿈을 다시 곱씹어 본다.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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