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어느 정치인이든 이미지 정치를 잘해야 인기를 끌고 또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미지는 한편 위선과 술수를 포장한 산물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 콘텐츠를 잘 꾸민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도 있다. 북한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북한은 ‘구호의 나라’이자 ‘전시의 나라’ 아닌가? 굳이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극장국가 이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북한이 관료, 군대, 경찰 등의 강제적 물리력만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상징과 의례 등을 통해서 유지됨은 자명하다. 여러 가지 상징과 의례란, 북한의 경우 주체탑과 개선문 그리고 2015년에 완공된 미래과학자거리 등 거대한 조형물 건축들과 아리랑축전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간략히 ‘상징 효과’라 부를 수도 있겠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백두의 첫눈을 맞으시며 몸소 백마를 타시고 백두산정에 오르시었다”고 16일 보도했다. 백두, 첫눈, 백마 등 ‘순백’(純白) 앞에 눈이 부실 정도다. 김 위원장이 첫눈이 내리는 날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광경은 흡사 이육사의 시 ‘광야’에 등장하는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연상시킨다. 그만큼 비장하고 강렬하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협상, 경제 발전 등 근본적인 과제를 앞두고 대내외적으로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북한의 ‘상징 효과’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쨌든 김 위원장이 백두산에 올랐다면 무언가 결정을 했거나 결정에 임박한 게 틀림없다.

◆ 백두산이 어떤 곳인가. 북한은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이자 ‘혁명의 성지’로 상징화하고 있다. 백두산에 오르면 정상 부근에 ‘혁명의 성산 김정일’이라고 흰색으로 글발이 쓰여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백두혈통’이라는 말도 있듯이, 백두산은 조부 김일성 주석이 항일투쟁을 벌인 근거지이자,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난 밀영(密營)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김정은 위원장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백두산을 찾았다. 본격적인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에 나서기 직전인 2017년 12월 백두산에 올랐고, 장성택을 처형하기 직전인 2013년 11월 말에는 백두산 삼지연을 찾았다. 백두산을 찾는 것 자체가 ‘상징 효과’를 극대화하는 행위인 것이다.

◆ 무슨 메시지인가? 통신은 김 위원장의 백두산 방문을 두고 “우리 혁명사에서 진폭이 큰 의의를 가지는 사변”이라고는, 백두산행에 동행한 일꾼들 모두 “우리 혁명이 한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확신을 받아안았다”고 밝혔다. ‘사변이 될 만한 웅대한 작전’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삼지연에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 앞에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더는 고통이 아니라 그것이 그대로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면서 “우리는 적들이 우리를 압박의 쇠사슬로 숨 조이기 하려 들면 들수록 자력갱생의 위대한 정신을 기치로 들”어야 한다고 일깨웠다. 대미 비난을 쏟으며 자력갱생을 강조한 것이다.

◆ 중대 결심을 뜻하는 ‘사변이 될 만한 웅대한 작전’이란 무엇일까? 이는 북한의 최대 과제이자 현안인 대미 협상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과 미국은 올해 12월을 시한부로 마지막 결전에 나선 형국이다. 북한의 ‘새로운 계산법’ 요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대로 미국이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면, 양측은 6.12싱가포르성명처럼 ‘새로운 관계’로 들어설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북한은 ‘새로운 길’이라는 독자노선으로 나갈 것이다. 째깍 째깍... 운명의 초침이 12월을 시한부로 돌아가고 있다. ‘새로운 북미관계’인가? 아니면 ‘북한의 새로운 길’인가? 김 위원장이 타고 백두에 오른 백마는 어느 쪽으로 말머리를 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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