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시작되자 한반도 평화는 화두가 됐다. 70여 년 분단 세월, 군사정부와 권위주의 정부가 휘두르던 국가보안법의 망나니 칼날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며 통일을 외치던 과거와 달리, 통일담론의 자리를 평화론이 차지했다.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나리라 예상 못 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경제를 꺼냈다. 남북 간 경제교류가 한반도 평화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문제 하나 제대로 건들지 못하면서, 통일부 장관은 틈만 나면 평화경제를 외친다.

한반도 평화와 평화경제라는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준비단계로 허투루 넘길 내용이 아니라는 데 공감한다. 그렇다고 통일담론을 애써 외면하듯 하는 정책도 그리 달갑지 않다. 그래서 통일방안을 다시 논의하는 일각의 움직임은 환영할 일이다.

정부와 시민은 통일 한반도의 모습을 어떻게 기대하는가. 부산에서 출발한 고속열차가 서울을 거쳐 평양, 신의주를 지나 유럽으로 내달리는 장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가는 그림. 어쩌면 우리는 통일의 장밋빛 환상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 책 『환상 너머의 통일』.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통일 한반도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고민을 담은 책이 나왔다. <프레시안> 이대희, 이재호 기자가 쓴 『환상 너머의 통일』 (숨 쉬는 공장)이 그것.

『환상 너머의 통일』은 이대희, 이재호 기자가 지난해 9월 7일부터 약 2주간 구 동독지역(신연방주)을 둘러보며 구 동독인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환상 너머의 통일』은 흥미롭다. 흡수 통일된 독일 재통일 과정을 학술적으로 정책적으로 다룬 연구서적은 넘쳐나지만, 정작 구 동독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책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일 한반도에 주는 교훈이 구 동독인들의 목소리에서 읽힌다.

서독 중심의 흡수통일로 동독 사회는 충격이 컸다. 단순한 충격이 아니었다. 정년을 보장하는 등 노동자 중심철학을 지닌 세계적 기업 칼 자이스도 동독 노동자를 향한 해고의 칼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동독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앉았다.

노동이 중심이던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격변한 구동독은 경제가 무너지면서 가정해체로 이어졌다. ‘일하는 여성’의 상징이던 구 동독 출신 여성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독인 중심주의에 빠진 통일독일에서 구 동독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마약만이 구동독 청춘들에게 허상뿐인 행복을 가져다줄 뿐이다. 서독 중심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난민혐오와 폭력을 자행하는 극우파로 변질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상치 못한 통일의 결과이다.

분단 한반도를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3등 국민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지 않은가.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을 우리는 ‘한민족’이라며 포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마음가짐은커녕 정부는 통일 이후 정책을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아”온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지만, 5천 년의 동질성보다 70년의 이질성을 바로 봐야 한다는 화두를 『환상 너머의 통일』은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특히, 구동독 지역에 대한 정보도 충실히 담겨 있어, 『환상 너머의 통일』 한 권을 들고 다니면, 생각있는 독일 여행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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