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주이 / 총무
 

산행일자 : 2019년 8월 4일(일) ~ 5일(월)

사전 산행코스 : 화엄탐방안내소 ~ 화엄사 ~ 연기암 ~ 집선대 ~ 무넹기 ~ 노고단대피소(8.9km) 1박 ~ 성삼재 (3.4km)

1,10구간 산행코스 : 성삼재 ~ 만복대 ~ 정령치 ~ 고리봉 ~ 고기리 ~ 노치마을 ~ 수정봉 ~ 입망치 ~ 여원재 (20km)

산행시간 : 4일 – 8.9km / 5시간 30분
           5일 – 23.4km / 13시간 40분


산행 계획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는 백두대간의 남측 구간을 총 61구간으로 계획하고, 2017년 4월 9일 1구간을 시작으로 2019년 7월 14일로 49구간을 진행했다.

그 중 내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빠진 구간은 1구간(고기리~노치샘~수정봉~입망치~여원재), 10구간(성삼재~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고기리), 30구간(하늘재~탄항산~미역봉~조령3관문)이다.

올해 말이면 계획된 대간길이 거의 마무리된다. 
하계휴식으로 산행 일정이 없는 틈을 타 이계환 대원께서 땜빵산행을 한다는 소식에 미뤄왔던, 아니 부지런하지 않아 채우지 못했던 산행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운 좋게도 1구간과 10구간은 이어진 구간이다.
게다가 접근성이 쉬운 지리산 서북능선 구간!

첫 날의 시작

당일 남부터미널에서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하는 차를 타야만 한다.
5시 전에 집을 나서 첫 전철을 탔다.

두 번을 환승해야 하는데, 1호선에서 환승을 몇 정거장 앞두고 멀리 앉은 어르신께서 전화로 철도청에 항의를 하신다.
“시간을 이렇게 못 맞추면 어떻게 해. 늦어져서 어떡하나. 상급자 좀 바꿔요!”
이런 내용이었다.
‘점잖게 생기셨는데 깐깐하시네~’라며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아뿔싸!

환승역인 노량진에 도착했을 때 4분이 연착되어 뛰어 이동했건만 다음 차량을 바로 앞에서 놓쳤다.
결국 고속버스 출발 1분전에 전철에서 내려 계단을 쉼 없이 뛰어올라갔지만 5분이 늦게 도착했다.
다행히 구례공영터미널로 향하는 예약자가 모두 탑승하고서야 떠나는 마음 넓은 버스였다.

▲ 구례공영터미널. [사진제공-심주이]
▲ 성삼재 버스 시간표. [사진제공-심주이]

구례공영터미널에는 예정시간에 맞게 도착했다.
10시에 성삼재로 가는 버스를 탔다. 
화엄사까지는 10분 남짓한 거리인데 중간에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성삼재에서 지리산 종주 산행을 하는 모양이다.

너른 주차장 한쪽으로 화엄탐방안내소가 있고 화엄사로 이어지는 차도 옆으로 식당이 줄지어 있다.
식당에 들어가 비빔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탐방안내소 옆에서 준비를 하고 11시 산행을 시작한다.

▲ 화엄사 산행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 안쪽의 전광판 옆 숲길로 조금 오르면 절집과 숲길로 갈라지는 곳에 산행 안내판이 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화엄사부터 노고단까지

지리산이 큰 산인만큼 화엄사 옆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줄기가 장쾌하다.
사찰인데도 초입에 리조트가 있고, 계곡 틈틈이 물놀이객의 알록달록한 옷차림과 왁자지껄한 소리가 발길을 잡아당긴다.

▲ 화엄사 계곡. [사진제공-심주이]
▲ 연기암 산행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수풀 사이로 계곡 구경을 하며 오르다보니 금세 연기암에 도착했다.
폭염경보가 있는 날씨에 한참 전에 온몸은 땀에 젖었다.
계속 오르막이니 얼굴로 열이 차올라 물길 가까운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세수를 해댔다.

다행히 국립공원이라 안내표지판도 있고 산행객도 붐비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오간다.
4km정도 지점에서부터 경사가 더욱 가팔라지고 몸에 난로를 품은 듯 열기가 차오른다.

▲ 집선대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집선대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3시다.
8km 4시간 산행코스를 넉넉히 5시간 예상해서 식생관리로 통제중인 노고단 정상에 4시 예약을 해두었다.
남은 거리는 2.7km이지만 가장 난이도가 높고 더운 시간 때이다.
노고단 정상행은 포기하고 대피소까지 완주만 해도 대견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산행을 이어간다.

▲ 코재 산행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이어지는 구간은 코재다.
산행자료에서 코가 땅에 닿을 듯 가파르다고 해서 코재라고 한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위와 탈진이 문제였다.
10분 걷고 쉬면서 물마시기를 반복하며 오른 것 같다.

언제부턴가 목 뒷덜미를 타고 올라온 두통에 정신이 없어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코재를 지나 무넹기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 무넹기 산행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 노고단대피소로 가는 돌길. [사진제공-심주이]

편한 임도를 지나 노고단으로 가는 빠른 돌길을 오르는데 네 살배기 아이가 아빠와 손을 잡고 내려간다.
아~ 집에 있을 아이가 생각나는 걸 보니 여유가 좀 생겼다.
오후 4시 40분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했다.

▲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해서. [사진제공-심주이]

노고단대피소에서의 하루 밤

방 배정과 입장시간이 되기 전에 몸도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대피소 1층에는 휴게실과 건조기가 있어 다음날 산행에 대비해 부지런히 신발과 옷을 말렸다.
그제야 도시락을 주섬주섬 챙겨 대피소 밖 조용한 쪽에 앉았다.
식고 굳어서 맛없는 밥이지만 곡차 한잔 곁들여 식사를 했다.

통일뉴스 채팅방에 도착소식을 올리고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받으니 대원들과 함께 있는 듯 마음이 든든하고 힘이 난다.
앞으로도 산에 오를 때면 백두대간 식구들이 생각나겠지.

내가 백두대간 종주대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운동을 즐기거나 ‘종주’라는 목적에 욕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다.
또한 우리그림에 대해 공부하면서 정선, 김홍도, 이인문, 안견 등 천재적인 조선의 화가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땅을 실제로 돌아보고 이상세계로 그려 낸 그림을 보며 직접 우리 땅을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통일을 꿈꾸며 남한의 대간을 넘어 백두산까지 이어서 종주하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다는 종주 계획을 들었을 때 이미 마음이 움직였다.
500km의 길을 걷고 돌이켜보니 우리 땅을 걷는 행위를 넘어, 사람들과 뜻을 함께 나누며 흔적을 새겨갈 때 진정한 우리의 땅이 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 노고단대피소의 일몰 풍경. [사진제공-심주이]
▲ 노고단대피소에서 그린 디지털그림. [사진제공-심주이]

방과 자리 배정을 받고 나와 조용한 자리에 앉았다.
멀리 산 그림자 위로 땅거미가 내리고 높이 초승달이 새초롬하게 떴다.
아름다운 풍경과 그 곳에 앉아있는 시간을 그냥 지나 보내기 아쉬워서 휴대폰으로 그림을 그렸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풍류객이 따로 없다.
어설픈 그림이지만 볼 때마다 지리산의 뜨거웠던 여름밤이 떠오르겠지.

둘째 날의 시작

다음 날 새벽 4시 반쯤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씻고 출발 준비를 했다.
나와서 보니 성삼재에서 출발해 도착한 등산객들이 아침식사를 하느라 분주하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에게 다가가 소금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소금은 왜요? 식사용이요?”하고 되묻는다. 
탈수를 대비해 소금을 가져온 산행객이 있을 줄 알았다.

돌아서려는 찰나 아저씨 한 분이 몇 톨의 소금을 덜어주며 “죽염인데 염도가 높으니 조금씩 먹으면 될 거에요”라고 멋쩍게 말을 한다.
사실 밤새 두통이 가시지 않아 새벽 2시까지 생수병으로 냉찜질을 하며 잠을 설쳤다.
몇 톨의 소금이라도 감지덕지였다.

새벽 5시25분 노고단대피소에서 출발해서 6시 성삼재에 도착해 아침식사를 했다.
더운 날씨에 상할까 염려되어 얼려온 음식을 녹여 먹으려니 맛이 형편없다.
그래도 더운 날씨에 긴 길을 걸어야하니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 성삼재에서 바라 본 일출. [사진제공-심주이]

식사를 하며 멀리 보이는 산머리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본다.
일출은 정말 맛있는 반찬이다.
누가 그랬던가.
맛은 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해가 떠올랐던 산봉우리는 반야봉이었다.
이만한 밥상이 또 있을까.

10구간 메우기 산행

▲ 성삼재에서 산행 출발. [사진제공-심주이]
▲ 만복대 탐방로 입구. [사진제공-심주이]

6시 40분 드디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한적한 오르막을 홀로 오르는데 얼굴에 거미줄이 걸린다.
전 대장님이 산행 때 “거미줄 때문에...”라며 귀찮아하던 생각이 난다.
이제야 그 노고가 이해가 된다.

다행이 뒤로 남성 산행객이 올라온다.
재빠르게 비켜주면서 ‘거미줄 때문이 아니야. 내가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지’라고 간사한 마음을 빠르게 무마했다.

아침부터 하늘은 파랗고 해는 뜨거웠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에 땀샘은 벌써부터 바쁘게 일을 한다.
50여분을 올라 고리봉에 도착했다.
탁 트인 풍경으로 성삼재와 노고단 그리고 옆으로 늘어선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파란 하늘 아래로 운무가 내려앉은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 고리봉에서 바라 본 성삼재와 노고단. [사진제공-심주이]
▲ 고리봉에서 바라 본 지리산 능선. [사진제공-심주이]
▲ 고리봉에서. [사진제공-심주이]

지나는 객이 없어 작은 바위에 전화기를 기대어 놓고 사진을 찍었다.
낮은 삼각대에 전화기를 거치하고 바닥에 머리를 구부리고 촬영준비를 하던 전 대장님 생각이 났다.
대원들 사진 찍어 주느라 정작 당신이 단체사진에서 빠지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높이조절이 가능한 가벼운 삼각대가 없을까?
하나 장만해야겠다.

▲ 묘봉치 산행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고 내리막길의 묘봉치는 수월하게 통과한다.
만복대를 오르면서 들꽃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도착해서 설명판을 보니 오랜 식생복원사업의 결과였다.

▲ 만복대에서 바라 본 지리산. [사진제공-심주이]
▲ 만복대 정상. [사진제공-심주이]
 ▲ 만복대 정상부의 풍경. [사진제공-심주이]
▲ 만복대 산행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 만복대에서 정령치로 가는 능선 길의 여러 풍경들. [사진제공-심주이]

편한 능선길을 꽃구경 삼매경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려서니 멀리 정령치 휴게소가 보인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움이 컸다.

▲ 멀리 보이는 정령치 휴게소. [사진제공-심주이]
▲ 정령치 산행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주저 없이 휴게소로 들어가 이온음료 두 병과 컵라면을 사서 그늘 아래에 앉았다.
이온음료를 마시면서 그늘에 앉아만 있어도 시원했다.
정령치부터 고리봉에 다녀온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소리로 내려온다.

아, 땡볕 능선길 오르막이 만만치 않겠다.
컵라면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이온음료도 충분히 마셔준다.
세수로 열도 좀 식히고 재정비 후 다시 출발~

▲ 고리봉 가는 길에 있는 ‘진달래와 철쭉 이야기’. [사진제공-심주이]

고리봉까지 가는 길은 나무계단이 놓여있고 심심하지 않게 바위 구간이 있지만 크게 어렵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12시 40분 고리봉에 도착!
정상석은 없고 ‘고리봉’이라는 표지판만 있다.

▲ 큰고리봉에서 바라 본 지리산. [사진제공-심주이]
▲ 큰 고리봉 산행 표지판. [사진제공-심주이]

만복대 전의 고리봉은 ‘작은 고리봉’, 정령치 후의 고리봉은 ‘큰 고리봉’이다.
정령치를 비롯해 지나온 능선이 한 눈에 보이는 절경인데, 정령치에 구름이 지나다 걸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구름에 풍경이 가려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시원하려나?’하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친다.
다행히 이제부터 고기삼거리까지 3.2km의 내리막인데, 그 길의 경사도가 30%의 장거리라는 것이 함정일 뿐.

보이지 않는 위협, 멧돼지

여름날 산행의 어려움은 무더위다.
하지만 물을 마시고 열을 식히면서 걸으면 죽을 정도는 아니다. 
2km 지점을 지나 내려오면서 멧돼지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멧돼지나 고라니의 피해가 심한지 그물망을 설치한 곳도 보인다.
높이가 10m씩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 군락지에 길 양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바닥에 풀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흙이 갈아엎어져 있다.
필경 멧돼지의 흔적인데 마치 소가 쟁기질 한 밭을 보는 것 같았다.

멧돼지가 튀어 나올지 모른다는 위압감에 겁이 덜컥 났다.
여기서 멧돼지를 마주 한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두려운 순간이었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깊은 숲길에서 스틱을 두드려가며 소리를 쳤다.
“여기 사람 지나간다아아~.”
이 필사적인 고함을 멧돼지는 들었을까? 
알 수 없는 짐승의 움직이는 소리를 간간히 들었지만 끝내 나타나지는 않았다.

▲ 고기삼거리의 날머리. [사진제공-심주이]
▲ 고기삼거리에 있는 선유산장민박. [사진제공-심주이]

고기삼거리로 내려서는 길은 산행 표지판이 없고 국립공원 차단기가 하나 놓여있다.
길고 긴장된 산행으로 한 구간이 끝났다.
땡볕이지만 짐을 잠시 내려놓고 한 숨 돌리며 다음 구간을 이어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마침 삼거리 옆으로 민박 식당이 보인다.
일단 시원한 콩국수를 하나 주문하고 세수부터 했다.
강력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음식을 뱃속에 채워 넣으니 살 것 같다.

산행을 이어서 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오기도 어려운 일이다.
간사하게도 몸이 충분히 식은 후에야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 탓이건 몸 탓이건 무리한 계획 탓이건, 이건 분명 극기훈련이다.

1구간 메우기 산행

노치마을로 가는 길을 물으니 식당 주인 부부는 매우 능숙하고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도로로 이어진 대간 길을 어렵지 않게 걷는다.
운봉의 모습은 지리산이 품어주는 고지대의 넓고 평온한 곳이었다.

▲ 운봉에서 바라 본 지리산. [사진제공-심주이]
▲ 노치마을 입구. [사진제공-심주이]

대간이 통과하는 동쪽은 운봉읍, 서쪽은 주천면에 속해 한 마을에 두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뉜다.
그래서인지 한 집이 반으로 쪼개져 주천 부엌에서 밥을 해다가 운봉 안방에서 밥을 먹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한다.

아담한 마을의 뒷길로 들어서서 노치샘을 지나니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가 시산제를 올리고 1구간 산행을 시작했던 언덕이 보인다.
그곳에는 네 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 노치마을 뒤 네그루의 보호수. [사진제공-심주이]

풀 위에 잠시 앉아 대간 산행을 시작하던 때를 떠올려 본다.
아는 것 없이, 준비 된 것도 없이 백두대간을 걷겠다고 덤볐으니 용감했다고 해야 할까?
이제 백두대간 남측 구간의 후반부만 남겨 놓고 시작지점에 서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한 구간 한 구간 초행인 산행 길을 쫓아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고, 남북의 평화모드 소식이 들릴 때면 함께 환호하면서 지나온 시간이었다.
홀로 시작지점에 서 있으니 대원들이 보고 싶다.
2년을 돌아왔지만 부지런히 가보자!

▲ 노치마을 산행 안내문. [사진제공-심주이]

여원재까지는 6.2km.
총 산행 거리가 6.2km라면 콧방귀를 뀌며 출발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18km를 걷고 폭염경보의 오후 4시라면 상황이 다르다.
풀어지는 몸과 마음을 꼭 부여잡아야 한다.

수정봉을 가기 전 덕운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소나무가 시원하게 늘어선 폭신한 흙길이지만 시작부터 숨이 턱에 차오른다.
덕운봉을 지나 구간의 최고봉인 수정봉에 도착해서야 여유가 생긴다.

▲ 수정봉에서. [사진제공-심주이]
▲ 수정봉에서 바라 본 지리산. [사진제공-심주이]

곧 도착할 수 있겠다는 들뜬 마음에 입망치까지 달려 내려갔다.
여원재까지 3.1km만 가면 된다.
그런데 하산길이라고 여겨 방심한 탓일까?
올라갔다 내려갔다 옆으로 돌고 끝없이 계속되는 길에 시작부터 따라붙었던 모기와 날벌레들은 떠날 줄을 모르니 어느 때보다 지치고 어려운 길이었다.

산행 중에 힘들어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까지 힘들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딱 그 지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후 7시가 다가오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쉼 없이 발을 움직여야 했다.
음산한 임도길을 한참이나 걸어 숲을 빠져나왔을 때 멀리 밭일을 하던 농부가 보였다.
아, 드디어 도착했다.

다시 시작하는 길

밭길 옆으로 좁은 길을 통과해 내려가니 ‘여원치 민박’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마당으로 들어섰다.

▲ 여원치 민박. [사진제공-심주이]

‘샤워 3천원’이 제일 먼저 눈에 보인다.
몸을 씻고 맥주를 한 잔 마시니 정신이 맑아진다.
친절하신 민박집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남원역행 버스시간도 확인했다.
이번 산행은 쉼터마다 오아시스다.

▲ 남원역. [사진제공-심주이]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여원재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남원역에 도착했다.
9시가 되기도 전에 편의점 문이 닫힌걸 보니 시골역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남원역을 지나는 KTX 열차를 기다리면서 지친 산행객에서 풍류 여행객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한다.

돌아가지만 길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빠진 길을 채운 것뿐이다. 
북쪽의 길을 마저 걷더라도, 길은 새롭게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연들은 나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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