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판문점에서는 한반도 및 세계사적으로 기록될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철전지 원쑤’ 관계인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역사상 최초로 미북 간 대결의 최전선인 판문점에서 서로 악수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지속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판문점은 미국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소일 것이다. 이곳은 미국으로서는 ‘잊고 싶은’ 전쟁인 6.25 전쟁 때 북한 및 중국과의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무승부’를 인정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를 잊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결단을 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양국 정상의 역사적인 이번 만남이 ‘쑈’로 끝나지 않고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양국이 향후 반드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녹녹치 않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양국 간의 근본적인 입장차이가 아직은 해소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만남에서 양국이 7월 중순경에 실무접촉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지만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때처럼 ‘한반도 비핵화 범위’를 놓고 실무합의를 하지 못한다면 북미 관계는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미국이 ‘단계별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북한이 제시한 시한인 금년 내 한반도 비핵화는 물건너 갈 것이다.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북한, ‘병진노선’을 바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3년 3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하였다. 비록 경제건설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지만 경제보다는 국방 즉, 핵개발이 우선이었다. 김 위원장은 선대 수령들처럼 안보가 없는 경제발전은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는 미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필수라고 본 것이다. 수많은 UN안보리 제재를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핵개발에 집중한 결과 2017년 11월 무렵에는 핵무기 소형화와 미국을 사정거리에 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엄청난 제재와 내핍을 이겨내고 북한은 ‘만능의 보검’을 소유하게 되었고 안보의 ‘대체재’가 없는 한 이것을 포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것으로 판단한 김정은 위원장은 대미 협상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위해 판을 바꾸는 선택을 하였다. 그는 2018년 1월 1일 평창올림픽 참가를 선언하는 한편, 3월에는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대화의지를 천명하였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인 2018년 4월 20일에는 ‘병진노선 승리’를 선포하고 이후부터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이것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탄 개발을 통해 안보는 튼튼히 하게 되었으므로 향후에는 민생경제 발전에 국력을 집중하겠다는 의도였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수라는 것을 잘 아는 김정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미군유해 송환 등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정지작업에 착수했다.

김 위원장의 전략은 ‘과거핵’은 보유한 채 ‘미래핵’만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시간은 북한편’이라고 생각한 김정은 위원장은 대미 협상의 ‘승리’를 확신한 것 같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ICBM을 두려워 할 것이고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는 협상장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김 위원장은 판단한 것이다.

북한에게 유리한 협정이었던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은 늘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에서도 승리할 것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생각한 것 같다.

북, 미국에 ‘새로운 셈법’ 요구하며 연말시한 통보하다

그러나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원론적이었고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영변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교환하려 했다. 김 위원장의 전략을 어느 정도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은 ‘결렬(no deal)’을 선택했고 김 위원장은 일단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쉽게 포기할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의 손발을 묶어놔야 했다. 그것은 대화를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한 김정은 위원장은 개인서신을 통해 언제, 어디서, 어떤 형식이든 만나자는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것 같고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에서의 만남을 선택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은 성공하였고 대화는 지속되게 되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를 펼쳐야 하는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에게 다음 회담에는 ‘새로운 셈법’을 가지고 나오라고 주장하고 그 시한을 2019년 말로 정하였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김 위원장이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식 계산법’은 무엇인가? ‘일괄타결(big deal)’로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프로그램, ICBM 등을 일시에 제거(FFVD)하는 것이고 그 이후에야 북한체제안전 보장, 경제제재 해제 등을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단계적 해법(small deal)’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이 북한의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새로운 셈법’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2일 차 회의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북한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지만 만일 미국이 ‘기존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해결의 전망은 어두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임을 경고했다.

북한은 또한 6월 4일 발표한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의 셈법 전환’을 촉구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주장한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북한은 2018년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의 개인논평을 통해 “미국이 《최대의 압박》을 고집하다가는 재앙적 결과와 맞다들리게 된다는 것을 통절히 깨달을 때에라야 비로소 길이 나질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미국의 대북 제재로 인한 ‘재앙적 사태’가 발생해야만 ‘새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미국, ‘검은 백조’ 수용하는 파격적 결정 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금년 말까지 미국의 일방적인 북한 비핵화 요구를 철회시키고 대북 적대시 정책 및 대북 제재를 포기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전망은 쉽지 않다. 미국의 대응 여부에 따라 북한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요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국은 ‘선 핵폐기’가 아닌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내놓을 것인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시간은 미국편’이라는 인식하에 대북 제재를 지속하면 북한이 항복을 하든지 북한 내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세계 최강 미국이 북한에 굴복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북한은 유일한 수단인 군사력을 통해 대미 압박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정도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5월 4일과 9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되었지만 앞으로는 더 긴 사거리의 미사일이 발사될 것이다. 핵무기를 매개로 북한의 자주를 보장받기 위해 ‘벼랑끝 전술’이 시작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스몰 딜(small deal)’을 받아들여 대북 적대시 정책 및 경제제재를 일부라도 해제하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향적 반응이 연말까지 없을 경우 2020년 초부터 북한은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인식하에 ‘옥쇄전술’을 구사할 지도 모른다. 북한도 여느 국가들처럼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안보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7월 중순 경에 시작될 실무회담에서 ‘단계별’ 해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이 이것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노벨평화상 수상, 중국견제 등을 얻기 위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검은 백조(Black Swan)’ 즉, ‘북한의 단계별 해법 수용’이라는 파격적 결정을 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북한도 ‘영변+α’를 제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6.30 판문점 만남’처럼 케케묵은 관습이 아닌 ‘전략적 선택’을 한다면 ‘재앙적 결과’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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