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권의 『핀란드 역사』 표지.

서사시 『칼레발라』와 교향시 『핀란디아』, 교육과 복지, 노키아와 리눅스, ‘행복지수’ 선두권을 유지하는 나라.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북유럽의 강소국 핀란드는 잊혀질만 하면 한번씩 국제정치의 장에서 논쟁 대상으로 떠오르곤 한다.  

최근 사례는 2014년 봄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빌미로 국내 일부 ‘보수논객’들이 퍼트린 ‘한반도의 핀란드화’ 우려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그해 6월 <중앙일보> 시평을 통해 “‘핀란드화’를 단순히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의 일방적 예속으로 규정하는 시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헬싱키 대학과 핀란드 국제관계연구소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오히려 변화하는 대외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한 약소국의 생존전략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라고 평가했다.

2016년 4월부터 2년 7개월 동안 주핀란드 대사를 지낸 김수권 전 대사는 문 교수보다 한발 더 나간다. ‘핀란드화’라는 낙인은 “몰이해의 산물”이고 “핀란드는 지정학을 거부한 나라”라고 봤다. 최근 그가 펴낸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여정, 핀란드 역사』(도서출판 지식공감, 이하 『핀란드 역사』)의 논지다. 

스웨덴에 이어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 사람들은 1917년 12월 독립을 선언했다. ‘적백내전’(백군이 승리했다)에 이어 ‘동쪽 이웃’(소련, 현재는 러시아)과 두 차례 전쟁(겨울전쟁과 계속전쟁)을 치렀다. 국민서사시 『칼레발라』의 무대인 ‘카렐리아’ 회복 열망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했고 영토는 더 축소됐다. 

외교가 필요한 순간 핀란드 사람들은 파시키비(1870~1956)를 선택했다. 1946년 3월 ‘외교권’을 가진 대통령으로 취임한 파시키비는 1948년 4월 ‘핀-소 상호원조협정’을 체결했다. 소련과 군사동맹이 되었지만, ‘강대국의 충돌하는 이익 밖에 있고자 하는 핀란드의 열망’을 전문에 담았다. 실제로, 핀란드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 1949)이나 ‘바르샤바조약기구’(1955)에 가입하지 않았다. 

“핀란드의 독립과 안보를 위해 소련의 전략적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우호, 선린관계를 유지해가면서도 국내적으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를 열망하는 핀란드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나간다는 두 개의 축”(『핀란드 역사』 172쪽)을 유지한 것이다. 

1956년 3월 대통령이 된 케코넨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큰 틀에서 파시키비의 정책을 계승했다. 냉전 시기 핀란드 대외정책을 ‘파시키비-케코넨 라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론적 근거는 다니엘슨-칼마리의 ‘제한적 순응론’이라고 한다. 그는 “러시아가 핀란드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했을 때 순응할 것이지만 만약 핀란드를 파괴하려고 한다면 순응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책 179쪽) 

‘파시키비-케코넨 라인’이 작동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체질적으로 자유를 좋아하며 누군가와 깊게 엮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핀란드 사람들의 기질이 거론된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핀란드는 ‘핀-소 상호원조협정’을 파기하고 1995년 유럽연합(EU), 2002년 유로에 가입했다. 그러나, 폴란드 등과 달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스칸디나비아 3국(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사이에 작동하는 ‘노르딕 균형’이라는 요소도 있다. 냉전 시기 핀란드(동노르딕)는 소련과의 동맹으로 묶였고, 스웨덴(중노르딕)은 자체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중립을 유지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서노르딕)는 나토 회원국이었으나 평시 외국 군대 주둔과 핵무기 배치를 유보했다.           

보다 중요한 요인은 핀란드 최대의 정치세력 사회민주당과 그 지도자였던 탄네르의 역할이다. 많은 사회민주당 당원들이 적백내전 때 적군에 가담해 희생됐지만, 소련과의 겨울전쟁에 총을 들고 나섬으로써 핀란드의 단합을 이뤘다. 탄네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사회민주당은 소련의 쇠퇴가 감지되고 케코넨이 물러난 1982년부터 30년 간 대통령을 독식하게 된다.

소련이 핀란드에 대해 ‘제한적’ 순응을 요구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핀란드에 대한 소련의 이해관계가 이념적이거나 영토적인 것이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소련 북서부 국경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전략적인 것이라고 본 파시키비의 통찰력이 평가받는 이유다. ‘핀란드 사례’를 과도하게 일반화하여 동유럽 나라들을 질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수권 전 대사는 사석에서 “이 책을 쓸 때 ‘소련’ 자리에 ‘중국’을 넣고 한반도의 진로를 생각해봤다”고 밝혔다. 오늘날 핀란드와 러시아의 국경선은 1,300km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선(1,500km)과 비슷하다.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 국내에는 생소한 나라 핀란드의 대외정책을 한국인이 체계적으로 정리한 첫 단행본이라는 데 있다. 외교관으로서 공적 분야에서 축적한 지식과 통찰력을 사회에 환원한 좋은 선례다. 지금 한국은 지구촌 곳곳에 115개의 상주대사관과 46개의 총영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제2, 제3의 김수권이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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