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어색할 때가 있다. 태어나서 몇 살까지를 ‘아이’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지만, ‘어리다’라는 기준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리다’에는 ‘어리석다’라는 의미가 포함된 이유도 있다.

‘학생’이라는 말도 그렇다. 학교에 소속되어 배우는 위치라면 ‘학생’이라고 부르면 되지만, ‘청출어람’이 무색하게, 요즘 학생들은 선생보다 더 배울 점이 많아, 무턱대고 ‘학생’이라고 부르기 민망하기도 하다.

‘아이’라고 표현하기도 ‘학생’이라고 부르기 어색한 이들이 있다. 바로 재일동포들의 배움터인 재일 조선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우연히 만나 몇 마디만 주고받아도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서 사는 사람들은 말문이 막힌다. 말솜씨가 기가 막힌 게 아니라, 말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엮은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의 문집인 『꽃송이』.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엮어 최근 발간된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의 문집인 『꽃송이』를 읽으면 글쓴이들을 감히 ‘아이’라고 무턱대고 ‘학생’이라고 지칭하기 어렵게 만든다.

고베조선고급학교 2학년 리우희가 쓴 시 ‘가슴펴고 살고싶어’에서는 민족성의 상징인 치마저고리의 자부심이 읽힌다. 일본 우익의 폭언 속에서 치마저고리가 당당한 친구의 모습을 보며, 리우희는 부끄러운 자신을 되돌아본다.

뭘 입든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선생들의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듣고 자라온 환경에서, 리우희의 글은 ‘치마저고리’를 달리 보게 만든다.

도호꾸조선초급학교 중1 박사룡의 시 ‘우리 말은’은 일본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한다. 읽고 쓰고 외우는 식으로 배우는 외국어가 아니라 “조선사람의 자신을 갖게 해주는 기쁜 것”이자 “조선사람된 마음을 안겨준 자랑스러운 것”이라며 말의 깊이를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들어 통일의 의미가 중요해졌다. 통일부는 통일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입시 위주 교육 현실에서 통일교육은 대학 진학에 한 줄 의미도 없는 게 사실이다. 통일이 뭐냐고 물으면 통일을 왜 해야 하냐는 반문을 듣게 된다.

하지만 문집 『꽃송이』에 실린 글은 다르다. 남부조선초급학교 5학년 남대하는 “우리들이 활약할 밝은 미래, 하나된 우리나라 이름 떨치는, 통일의 그날을 바라는 소리, 얼마나 좋은가, 그날이 오면”이라고 통일을 바랐다.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초4 리하진은 4.27 ‘판문점선언’ 당일,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이 한반도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며, “다 먹고나니 이제 곧 조선이 통일되는 것만 같았어요. 그 곽밥은 나에게 조국통일을 바라는 소중한 마음을 안겨주었어요. 나는 앞으로 통일되는 그날을 그리며 열심히 배워나갈래요”라고 적었다. 10살 남짓한 이들의 글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이들의 글이 깊이가 있는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일제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이 해방 후 조국이 분단되자 돌아오지 않은 상황, 70년 넘도록 일본 정부의 차별 속에서도 학교를 세워 우리말과 역사를 배워야 했던 환경 등, 재일동포의 삶은 역사의 무게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재일동포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인가. 분단의 세월은 70년이 넘었고, 노동의 가치보다 자본의 힘이 더 중시된 세상이지만, 4.19혁명,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으로 역사를 바꾸고자 했던 남쪽 사람들의 삶에도 분단의 현실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데 왜 다르다고 느낄까. 국적이 남이냐 북이냐를 선택하지 못해 ‘조선적’을 그대로 두는 이들을 우리는 ‘빨갱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차이점의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문집 『꽃송이』를 읽으면 교육 환경과 현장이 재일동포와 우리를 구분 짓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일본 내 총 139개 조선학교에서 국어수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역사수업도 중요하다. 물론, 수학 등 우리가 배우는 과목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여기에 무용, 기악, 미술, 축구 등 동아리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여기에는 재일동포 사회의 사회적 연대가 토대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데 한눈팔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 문제집을 달달 외워라, 친구가 무슨 소용이냐 친구도 대학 문 앞에서는 적이다 등등. 이런 학교에서 ‘통일’은 먹고사는 데 중요하지 않다. 학교가 지역 사회의 중심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남쪽 젊은이들이 통일에 무관심하다고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이다. 그토록 통일을 외쳤던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해왔는가. 삶 속에서 살아야 할 ‘통일’이 아니라 정치구호로만 남은 세상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문제야”라고 말하면 속은 편할까.

문집 『꽃송이』를 펴낸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은 펴낸 글에서 “조선학교를 향한 ‘관심’은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며 “조선학교의 초, 중, 고급부 학생들이 쓴 글들은 학생들과 재일동포사회에 대한 인식을 위한 훌륭한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의 무게를 짊어졌으면서도, 우리 말과 역사를 배우는 재일동포, 재일 조선학교에 관심을 두는 것은 하나의 민족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남이가” 정신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하지만 ‘관심’은 호기심이 아니다. 문집 『꽃송이』를 접한 독자들은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이들이 쓴 글이라는 호기심에 머물지 않길 바란다. ‘아이’라고 표현하기도 ‘학생’이라고 부르기도 쉽지 않은 이들이 쓴 글의 깊이는 너와 나의 차이가 아니라, 과연 우리는 어떻게 잘못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문집 『꽃송이』는 현장 교사들이 꼭 읽어보길 권한다. 교실에서 통일을 어떻게 인식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 되리라고 본다. 문집 『꽃송이』에 초.중등 교사들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엮은이로 함께했으니, 교육 현장에서부터 통일이 ‘꽃송이’를 피우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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