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렬의 『한반도 비핵화 리포트』 표지. [사진제공-백산서당]

2008년 가을, 외교부 출입을 시작했던 무렵이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터무니없는 슬로건을 내걸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공들여 쌓아온 남북관계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뜻이 맞는 기자들과 함께 저명한 외교안보전문가 조성렬 박사와 만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저녁 모임에서 조 박사가 “안보-안보 교환론”을 설파했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대북정책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더욱 아닌 새로운 접근이었다.   

‘선불제냐 후불제냐 차이만 있을 뿐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경제적 보상으로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점에서 경제-안보 교환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설파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생생하다. 그 대안이 ‘안보-안보 교환론’이었다.

2010년 11월 한 심포지엄에서 ‘안보-안보 교환론’의 골격을 처음 발표했던 조 박사가 2012년 단행본 『뉴 한반도 비전: 비핵 평화와 통일의 길』, 2014년 논문 「북핵문제 외교적 해법의 실패원인과 시사점」(2014)을 거쳐, 10년 연구를 결산한 책을 펴냈다. 『한반도 비핵화 리포트: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론』(백산서당, 436쪽)

책을 관통하는 화두 중 하나는 ‘등가성’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과정에서 논란이 된 ‘미국식 계산법’과도 관련있다. 경제와 안보가 등가성이 없음은 쉽게 이해되지만, ‘안보-안보 교환론’이 풀어야 할 문제들도 많다. 특히, 북한과 미국처럼 핵 능력 차이가 큰 나라들 사이의 안보 교환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서로의 안보적 관심사를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안보-안보 교환은 크게 경성균형 방식과 연성균형 방식의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책, 68쪽)고 지적했다. 

경성균형 방식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중국 등이 북한에 확장억제력을 제공하거나, 미국이 한국에 제공해온 핵우산 철폐 및 전략자산 반입금지를 통해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과거 북한이 주장했던 ‘핵군축론’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연성균형 방식은 북한의 핵포기 대가로 외교, 국제법, 국제제도 등으로 체제안전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북미수교,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체제안전을 추구해온 북한의 오랜 대미 외교가 이 범주에 속한다. 문제는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협상 당사국들의 평가 또는 가격책정이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2017년 11월 29일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직후부터 북한은 북미수교와 한반도평화체제 같은 연성균형뿐만 아니라 한미의 대북 군사위협 해소와 같은 경성균형을 추가로 비핵화 조건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3월 5~6일 평양을 방문했던 남측 특사단에게 핵 포기 조건으로 ‘군사위협의 해소’와 ‘체제안전의 보장’ 두 가지를 요구한 게 대표적이다. 

북한은 또한 2018년 9월 29일 리용호 외무상의 유엔연설 이후 줄기차게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주된 쟁점이었다. 저자가 “북한 핵문제의 해법은 연성, 경성의 안보적 인센티브들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경제적 인센티브를 상응조치에 포함시키는 포괄적 해법이 되어야”(책 71쪽) 한다며, 자신의 북핵 해법을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론”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저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는 길은 김정은 위원장이 거부하는 ‘리비아 방식’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하는 ‘이란 방식’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4.27 판문점 선언’,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예고하는 ‘한반도형’이어야 한다. 

“한반도형 비핵화 방식의 요건”으로는 △연성균형과 경성균형의 배합을 통한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이 이뤄질 것, △비핵화-안전보장 조치들이 쉽게 되돌이킬 수 없게 만들 것, △한반도 비핵화 시간표를 엄격히 관리하기 위해 의제를 제한할 것, △포괄적 합의-일괄타결-단계적 이행의 로드맵에 따르되 단기간 내에 주요한 비핵화를 완료하는 시간차 접근법을 택할 것을 제안했다.

한반도형 비핵화 모델은 ‘포괄적 합의-일괄타결-단계적 이행’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를 확정해 포괄적 합의를 이루고, 다음으로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해 완전한 일괄타결을 이룬 뒤 (...) 로드맵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만약 일괄타결이 어려울 경우 예비회담 성격으로 한두 차례 고위급회담을 열어 부분적 타결과 부분적 이행을 한 뒤 정상회담에서 최종 일괄타결하고 이행을 완료하는 방법도 있다.”(책, 200쪽)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과 맥이 닿는다.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특사단의 일원으로 모스크바를 다녀왔고 2018 남북정상회담 전문가 자문단이었으며,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으로 있는 저자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100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새로운 100년”을 향해 “우리는 평화의 한반도라는 용기 있는 도전을 시작했다”며, “‘신한반도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해 통일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역사적 대전환기에 선 우리 민족이 새로운 100년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이룩해야 할 과제가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희망하고 모색해온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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