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북한을 알기 위한 여러 접근법이 있겠지만 북녘의 예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곳의 일상에 조금이나마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물론 훌륭한 안내자가 필요할 것이고 이철주의 신간 『조선, 예술로 읽다』(네잎클로버)는 적격이랄 수 있다.

문화기획자인 이철주는 누구보다 북녘 예술단 초청공연이나 남북합동공연의 레퍼토리를 많이 구상해본 경험이 있고, ‘금강산가극단’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는 등 문화예술 교류에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성사보다는 구상에 그친 경우가 훨씬 많았지만.

▲ 이철주, 『조선, 예술로 읽다』, 네잎클로버, 2019.3. [자료사진 - 통일뉴스]

『조선, 예술로 읽다』는 저자가 <민플러스>에 연재했던 글을 엮은 것으로, “문화기획자로서 남북 문화예술 교류의 현장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획득한 정보의 축적”이자 “같이 북을 알아가자는 취지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펼쳐 보인 단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저자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33꼭지 하나하나가 결코 가벼이 흘려버릴 내용들이 아니다. 노래 한 곡, 가수 한 명, 공연 한 마당이 갖는 역사성과 의미가 글 속에 담겨있고, 특히 북녘 사회의 시대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결코 뒷켠의 소소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한 뒤 2012년부터 매년 12월 17일 개최되는 공식 추모음악회 ‘김정일 동지 서거 회고음악회’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매해 신년사와 어떻게 연결돼 공연 레퍼토리(연목)로 구체화돼 왔는지를 살필 수 있다면 이는 간단한 문제일 수 없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넘어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주체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주체문예이론이나 항일투쟁을 기린 <피바다>부터 고난의 행군기를 이겨낸 표징 <구령봉 일가의 이야기>, 희천발전소 건설 현장에 새겨진 ‘단숨에’ 구호에서 김정은 체제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단숨에>에 이르기까지,

또한 저자가 다루는 예술의 범주도 음악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가극과 무용, 교예와 영화, 집단체조와 미술까지를 아우르고, 이미 작고한 1세대부터 김주향까지 많은 북녘 스타들이 등장한다. 유일한 북한의 해외예술단인 재일총련의 ‘금강산가극단’도 빼놓을 수 없다.

귀에 익은 <피바다> <눈이 내린다> <휘파람> <조선은 하나다> 등도 하나하나 사연을 들추고 예술적 연혁을 따라가노라면 그 가극이나 노래가 다시금 새롭게 다가오게 마련이고, 몰랐던 노래나 작곡가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새 책장을 덮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도 명성 높은 무용가 최승희를 비롯해 리종오, 백고산, 김원균, 그리고 채주혁, 조청미 등 북녘(동포)의 예술가들 한명 한명의 삶의 궤적과 예술적 성취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을 읽는 묘미를 더해 준다.

곁들여 책 속에 등장하는 노래나 가극 제목들은 정겨운 우리말이 그대로 살아있고 총화(평가), 수표(사인), 연목(레퍼토리), 설화자(MC) 등 낯선 용어들마저 정겹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책이 기존 분단으로 인한 협소한 시각에 갇히지 않고 북녘 예술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른바 ‘내재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북녘 예술을 이해하고 교류하는 데서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한반도 해빙 무드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이미 남북 예술단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공연을 펼쳤고, 숱한 예술분야 교류들이 제안된 상태다. 저자의 제안처럼 ‘뚜렷한 공통분모로서 최승희라는 걸출한 무용수의 존재’가 있는 무용 분야처럼 각 분야별 교류도 가시화 될 날이 머지않았다.

만 마디 말보다 노래 한 곡, 가극 한 편이 남과 북, 해외 동포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고, ‘틀림’이 아닌 ‘다름’ 속에서 더 큰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상식이 이제는 현실화 돼야 할 때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새로 알게 된 북녘 예술가의 작품을 유튜브에서 먼저 감상해보고 마침내 공연장에서 만나는 멋진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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