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헌법 전문이다. 정부 부처 중 ‘헌법’ 정신인 ‘통일’을 지향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처는 통일부가 유일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폐지와 명칭변경 논란 속에서도 헌법정신을 강조하며 지금까지 버텨온 부처가 바로 ‘통일부’이다.

3.1운동 50년이 되던 해에 만들어져 50년의 역사를 지닌 통일부는 말 그대로 한반도 통일을 연구하고 정책을 만들어 온 부처였다.

1960년 4.19혁명 후 정당.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각계에서는 통일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통일문제를 장기적으로 연구.추진하기 위한 정부기구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해 11월 신민당은 통일부 설치를 제안하고, 장면 국무총리가 통일문제연구소 설치를 언급한 바 있다.

5.16쿠데타로 억눌린 통일논의는 1963년 정당 활동이 재개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1963년 10월 박정희 공화당 총재가 정부 내 통일문제 전담기구 설치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하면서, 통일부 설치가 공론화됐다.

1966년 7월 국회는 ‘국토통일연구특별위원회’를 설치, 1967년 ‘국토통일연구 전담기구 설치 건의안’이 채택됐다. 이어 1968년 국무회의에서 ‘국토통일원 신설 등에 관한 정부조직법 중 개정 법률안’이 의결됐고,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그리고 1969년 1월 국토통일원 직제를 제정하고, 3.1운동 50주년인 1969년 3월 1일 국토통일원이 창설됐다.

창설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통일문제에 관한 국민의 중지를 모으고, 범국민적 초당적인 토론의 광장이 되도록 문호를 널리 개방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국론을 통합하고 통일정책의 기본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의 국토통일이 단시일 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보다 긴 안목으로 국력을 신장하고 국내정세의 추이를 살피면서 통일에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국토통일원 창설의 의미를 부여했다.

1969년 3월 1일 서울 장충동 한국반공연맹 건물에 들어선 국토통일원은 3실 1과 7담당관, 45명 정원이었다. 이어 통일문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1990년 통일원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장관은 부총리로 격상됐다. 하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작은 정부’를 표방해, 장관급의 통일부로 다시 변경돼, 지금에 이른다.

현재, 통일부는 본부에 2실 3국 2관 1단 25과 담당관 1팀, 8개 소속기관에 4부 26과 3팀으로 601명이 근무하고 있다.

통일부는 ‘통일’이라는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정부 부처이지만,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을 끊임없이 바꿔온 조직이기도 하다. ‘통일’을 위한 정책은 진보.보수 정권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과연 ‘통일’을 고민해온 조직이 맞느냐는 비판은 항상 뒤따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교류를 통한 화해 협력의 통일 시대를 준비해 온 통일부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없어질 뻔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름 자체를 ‘교류협력부’로 바뀔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2014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통일부 직원 중 방북 경험자가 8%에 불과했다던 조사결과는 통일부가 처한 위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도 자리보존이 중요하다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엎드리기 자세는 통일부에서 빛났다.

대북.통일정책이 롤러코스터 타듯 할 때도, 통일부는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정책만 내놓았지, 통일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고 평가하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는 어떠한가. 통일부는 지난 9년 남북관계 중단을 뚫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북미 간 힘겨루기 속에서 통일부가 제구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남북교류를 토대로 화해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할 통일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리스트만 펼쳐놓고 하나하나 따지고 있을 뿐이다.

지난달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긍정적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속에서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발전시키겠다던 꿈만 꾸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북미정상회담 결렬 소식에 통일부는 현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순식간에 잿빛이 된 통일부는 사실 50년 동안 역사를 이어와서는 안 되는 조직이다. 헌법정신처럼 통일을 이루기 위해 정책을 개발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정부 부처로, 목표인 한반도 통일이 달성되면 자연스레 없어져야 할 조직이기 때문이다.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통일부 창설 50주년 행사장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토로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앞으로 50년 뒤, 통일부 100주년 행사를 하면 큰일 난다. 50년 뒤에 50주년에 있었다고 (100주년 기념식에) 자리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함께 만드는 평화, 함께 누리는 번영, 함께 이루는 통일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맞이한 통일부 창립 50년 기념식장은 노래와 마술로 어우러졌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기념식에서 통일부 소속 공무원들은 박장대소했지만,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였다.

이런 와중에 통일부 장관 교체설이 나오고 있다. 한 학자가 유력하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조명균 장관은 남북관계에 오랫동안 몸으로 부딪혀온 인물이었음에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나온 통일부 50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장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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