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표정과 옷매무새에 신경을 쓰지만 그에 앞서 등장부터 공을 들인다. 어떻게 짠하고 나타날까, 관중들에게 어떤 파격을 줄까 하면서 말이다. 드디어 2차 북미정상회담의 두 주역이 회담 하루 전인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각각 입성했다. 그런데 그 등장이 사뭇 다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기차를 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 나타났다.

◆ 김정은 위원장은 ‘전용열차’를 타고 이날 오전 8시 15분쯤(현지시간) 베트남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지난 23일 오후 4시 30분쯤 평양역을 출발해 4500㎞에 이르는 장거리를 거쳐 거의 66시간만이다. 열차는 평양에서 중국 단둥을 거쳐 중국 대륙을 종단해 베트남에 도착했다. 짙은 녹색 바탕에 창문 아래로 노란색 줄무늬가 그어져 있는 전용열차는 장갑차 수준의 방탄 능력을 갖춰 ‘움직이는 집무실’로 통한다고 한다.

◆ 트럼프 대통령은 ‘에어포스 원’을 타고 김 위원장보다 늦은 이날 오후 8시 57분(현지시간) 하노이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0시 34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횡단하는 경로를 택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20시간 41분을 비행했다. ‘에어포스 원’은 미사일이나 핵무기, 화학무기 등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방어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어 ‘구름 위의 백악관’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 트럼프 대통령은 대서양을 넘어야 했기에 비행기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세월 걸리는 배를 탈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달랐다. 비행기와 기차가 모두 가능했다. ‘참매냐? 전용열차냐?’ 하고 의견이 분분했다. 많은 대북 전문가들이 참매를 찍었다. 그 가장 큰 이유로 기차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김 위원장이 십수일간 평양을 비우지 못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막상 전용열차를 타고 떠나자, 집권 8년차이니 체제 안정에 대한 자신감을 대내외에 드러내는 효과를 노렸다고 둘러댔다. 참으로 엉터리들이다.

◆ 사실 비행기로 네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66시간에 걸쳐 2박3일 행로로 잡은 것은 언뜻 보면 비합리적일 수 있겠다. 그러나 북한식 발상과 셈법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2001. 7.26-8.18)했을 때 전용열차를 같이 타고 수행했던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대통령 전권 대표가 저서 ‘동방특별열차’에서 지적했듯이, ‘(계승자 김정일은 열차를 타고) 김일성이 밟았던 길을 따라 러시아를 밟아야 했다.’ 또한 김 국방위원장은 “(열차를 타고) 나는 내 눈으로 러시아의 장단점을 직접 보고 싶다”라고도 대답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전용열차를 타고 할아버지가 밟았던 길을 따라 중국과 베트남의 현실을 직접 보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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