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련 / 종주대 단장

 

일자: 2018년 12월 9일
구간: 생달마을 -늦은목이-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산행거리: 16.6km(접속구간3.8km) 
산행시간: 10시간 30분(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인원: 11명

 

▲ 옥돌봉에 올라 등정의 기쁨을 만끽하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한파를 뚫고 늦은목이에서 만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한파가 절정을 이루는 날에 그것도 야간 산행이다. 산행 이틀 전 전용정 대장이 카톡에 소백산 기상예보를 올린다. 영하 17도.

 오지 중에 오지인 봉화와 영월을 가르는 늦은목이에서 도래기재 구간이다.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에 놓여 있어 양백지간으로 불리는 곳이다. 고도는 1200-1300m 사이. 지난 고치령 늦은목이 구간을 빼먹은 4명의 대원들은 밤 12시에 고치령에서 출발 새벽 6시에 늦은목이에서 본대와 만나기로 했다. 

  묵직한 배낭을 짊어지고 나서기는 했지만 걱정이 앞선다. 겨울철 산행 때마다 손가락 발가락이 얼어서 늘 고생했었다. 벙어리장갑에 여벌로 두툼한 장갑도 준비하고 핫팩도 챙겼으니 괜찮겠지 스스로 다독인다. 밤 11시30분 사당에서 만난 7명의 대원들의 표정은 담담하다. 고치령 팀은 이미 풍기에서 고치령을 향해 택시로 이동하고 있다. 

▲ 들머리 생달마을 앞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지난번 산행 들머리였던 오전리 생달 마을을 다시 찾았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가 급이 다르다. 핫팩과 목에 두르는 워머를 어디에 뒀는지 못 찾고 허둥대다가 지체했다. 늘 출발할 때마다 이 모양이다. 결국 못 찾고 마스크만 하고 출발한다.

 조금 여유가  있어 버스에서 새벽잠을 잤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빡빡해지면서 전용정 대장이 속도를 낸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고치령에서 오는 대원들보다 늦으면 면목이 안 선다. 때론 이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 걸 때도 있다. 

 지난번에 지나친 곳이기도 하여 쉼 없이 오른다. 엄청 추운 새벽인데도 땀이 난다. 임도를 지나 상운사 입구에서 산불예방 방송을 들으며 숲길로 접어들었다. 벌써부터 손끝이 시려온다. 핫팩 생각이 간절하고 스틱은 사용하지 못한 채 장갑을 벗어서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녹여보기도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뒤로 쳐지고 싶지 않았건만 한참 후미가 되어 버렸다. 뒤돌아보면 동굴 속 같은 어둠이 등을 오싹하게 하고 아직 얼지 않은 계곡물 소리에 마음까지 써늘하다. 늦은 목이가 가까워지면서 바람마저 서서히 불어대니 갈 길은 먼데 눈앞이 아득하다.

▲ 강추위 속에 떨며 늦은목이에서 고치령 팀을 기다리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고치령 팀이 오기 전에 늦은목이에 도착해서 체면은 섰으나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고치령 팀이 걱정도 되었지만 이런 추위에 10여 분 간 서 있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발을 동동거리며 몸을 이리저리 움찍거리고 있을 때 저 편 어둠속에서 불빛이 나타났다. 정확히 6시에 오동진 대원을 앞세우고 완전무장을 한 채  눈만 빼꼼히 드러낸 4명의 대원들이 도착했다.

▲ 고치령 팀이 오동진 후미대장을 앞세우고 도착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야간산행의 들머리 고치령.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서울을 떠나 이곳에 오기까지 주위에서 들은 말이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주말이란다. 혹한에 대간산행을 말리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모두 물리치고 온 길이지만 조금은 두렵기까지 하다. 밤새워 걸으며 혹한과 바람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힐지 상상이 안가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의 대간길이 시작된다. 고치령에서 마구령까지 8km, 마구령에서 늦은목이까지 5.9km. 거의 14km의 대간길을 아침 6시까지 가야 본대를 만난다.

자정을 지나 어두운 밤에 들리는 소리는 거세게 부는 바람소리뿐. 평소 대간팀 후미대장인 오동진 대원이 선두를 치고 나가고 이종규 대원이 바싹 뒤따르며 바삐 움직인다. 시간조율을 하는 것이다.

박명한, 이민우 대원은 약간 뒤쳐져 나아간다. 바람을 피하는 경사면이 있으면 잠깐이라도 물로 목을 축이며 체력안배와 숨 조절을 하면서 뒤를 따른다.
 
3:26 마구령 도착.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다. 지친 체력에 간단한 야간식이라도 하며 숨을 돌려야 할 때다. 대간길 왼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쉴 곳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 드디어 마구령 도착.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바위언덕 경사면에서 잠시 쉰다. 배낭 속의 물은 모두 얼어있다. 설마 했다. 두터운 겨울잠바와 모자, 장갑을 착용하여 추위로 덜덜 떨지는 않았지만 가져간 물이 얼어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핸드폰의 온도는 영하 17도, 18도 조금씩 다르다. 소백의 겨울 칼바람은 무척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 피부로 느끼는 기온은 영하 30도쯤 될 것이라고 한다. 따뜻한 커피와 양갱, 초콜렛으로 체력을 보충한다. 

갈곶산을 지나 본대와 합류할 늦은목이까지 6시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는다. 대간길 시작 후 지금까지 바쁘게 걸어 온 것을 생각하면 시간이 많이 남아 여유 있게 가도 되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다. 야간산행 14km 6시간이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갈곶산에 도착하니 본대 합류거리가 1km. 다 왔거니 하는데도 추위와 지친 체력에 참 멀구나 하며 어둔 산행길을 재촉한다.

▲ 갈곶산 도착. 이제 본대가 기다리고 있는 늦은목이로 출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아직은 어두운 6시. 늦은목이에 이미 도착하여 기다리던 본대가 야간산행팀을 반가이 맞아준다. 밤새워 걸은 피곤함이 눈 녹듯 사그라진다. 오동진, 이종규, 박명한 대원은 워낙 대간길 프로급이라 큰 걱정은 안했지만 아마추어 이민우 대원에 대해서는 걱정들을 많이 했다면서 격려를 한다. 

과연 늦은목이에 제대로 올 수 있을까? 낙마로 야간산행팀 전체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체력적으로 가능할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이 태산 같았던 모양이다.

대원들의 고맙고 감사한 마음씀씀이다. 아무런 문제없이 거뜬하게 도착한 야간산행팀에 본대원 모든 분이 환영해주는 분위기가 비로소 이해됐다. 

고치령에서 14km, 이곳 늦은목이까지 6시간 15분 동안 혹한과 칼바람을 뚫고 밤새 걸어온 대간길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앞으로 본대원들과 함께 걸어야 할 선달산-박달령-옥돌봉 대간길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면서 2018 마지막 대간산행길에 잊지 못할 야간산행 추억거리 하나를 남겨두게 되었다.

 

선달산 오르는 길에는 칼바람이 몰아치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반가운 만남도 잠시뿐. 서 있으니 몸이 얼어온다. 움직여야 산다. 서둘러 단체사진을 찍고 선달산을 향해 출발한다.

▲ 잠시도 서 있기 힘든 강추위다. 서둘러 늦은목이에서 단체사진를 찍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늦은목이에서 선달산 오르는 길은 2km가 채 못 되는 거리다. 하지만 체감온도가 가장 낮다는 동트기 직전의 새벽이다. 그믐에서 사흘째. 사방은 짙은 어둠속에 잠겨있고 밤하늘도 차갑게 얼어붙은 듯 별조차 더욱 멀게 느껴진다. 차디찬 계곡을 스쳐온 바람은 냉기를 가득 머금고 얼굴부터 세차게 때려온다. 

  오르는 내내 그 누구도 말이 없다.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이 서서히 얼어가며 감각이 사라질 때 이러다가 동상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얼어서 쩍쩍 갈라질 것 같은 뺨이며 이마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덮어쓴 털모자 아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곧이어 살얼음이 되니 아리다 못해 아프다. 들숨 날숨에 코를 감싼  마스크도 얼어붙어 콧날은 시리도록 곤두서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다.  

▲ 희부옇게 밝아오는 오르막길에서 대원들이 바위를 타고 오른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고치령 팀이 겪은 한 밤중의 칼바람은 이보다 더 심했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소백산 칼바람이지만 강추위가 몰아치는 새벽에 맞바람으로 맞고 보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칼바람과 추위를 6시간이나 견뎌내고 또 선달산 칼바람까지 이겨냈으니 대단한 대원들이다.

 애초 고치령 늦은목이 구간을 보충하려는 오동진 대원의 일정은 이렇지 않았다. 토요일 주간 산행 그리고 늦은목이 아래 주목산장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낭만의 일박을 한다. 다음날 새벽 산장 앞에서 본대와 느긋하게 합류하는 나름 야무진 계획이었다.

 그랬던 산행계획은 박명한, 이민우 대원이 동참하면서 돌연 철야 산행으로 바뀌고 뒤이어 이종규 대원이 합류한다. 처음 계획을 잡을 때만 해도 이렇게 추울 줄은 예상 못 했을 것이고 다분히 의욕도 앞서지 않았을까. 

 선달산 오르는 길 내내 저승에서 온 것 같은 칼바람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어두운 하늘위에서 마구 울부짖었다. 

▲ 간절히 기다리던 해가 마침내 떠오르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희부옇게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였지만 해는 유난히 더디게 떠올랐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어내산으로 향하는 외씨버선 마루금길 표지판이 나왔다. 드디어 선달산이다. ‘이젠 살았다’  절로 안도의 탄성이 나온다.  

▲ 선달산 정상에 선 이민우 대원. 코를 감싼 모습이 짠하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해는 떠올랐으나 정상 부근은 여전히 칼바람이 몰아친다. 잠시라도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일사천리로 인증 샷을 하고 아침 식사 할 곳을 찾아 박달령으로 향한다. 

▲ 아침식사 자리를 물색하는 대원들을 햇살이 비춘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얇은 비닐이 가져다준 그 아늑함과 따뜻함이라니 

 해가 뜨고 얼었던 세포가 하나둘 살아나면서 어김없이 허기가 찾아온다. 양지바르고 바람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 비닐텐트를 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바람이 여전히 세차 한 쪽을 끌어당기면 반대쪽이 들쳐지기를 반복한다. 한동안 씨름을 한 끝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작년 부항령에서도 비닐텐트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었다. 누군가 사진을 보곤 거지들 같다고 했다던데 밖에서 보니 영락없다.
 

▲ 보기엔 허접해 보여도 안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비닐텐트 안에 11명이 들어앉았다. 바람만 막아주었을 뿐인데도 비닐텐트 안은 금방 온기가 가득하고 아늑하다. 사람의 체온이 이토록 따뜻할 줄이야. 신영복 선생의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이란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새벽 추위에 얼어붙었던 뺨들이 발그레해지고 오그라들었던 몸들도 되살아난다. 

▲ 비닐텐트 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처음 참가한 이종문 대원과 이제야 제대로 된 인사들을 한다. 다부진 몸매에 칼바람을 무릅쓴 모습답지 않게 의연하고 멋지다.  ‘세상은 참 불공평해’하며 오동진 대원은 너스레를 떨고 평소 말수가 적은 이석화 대원마저 어쩜 목소리까지 그리 좋으냐며 추임새를 넣는다. 

 이종문 대원이 가져온 여분의 핫팩을 이계환 대원과 함께 받아서 양말과 장갑에 붙였다. 이렇게 조그만 것이 있을 줄이야. 준비성까지 최고다.

▲ 완전 무장한 이종문 대원. 흡사 특전사 대원 같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고픈 배도 채웠고 핫팩까지 붙인데다 언제 불었냐는 듯 바람도 잠잠한 능선 위를 따뜻한 햇살까지 받으며 걸으니 살 것 같다. 이 포만감과 아늑함에 젖어 기분은 좋아지는데 몸은 나른해 지고 졸음이 온다. 고치령 팀은 전혀 잠을 못 잤고 본대도 잠을 설쳤다. 틈만 나면 그 추운 곳에서 앉았다 하면 잔다. 

▲ 이왕 잘 거면 편안히 누워서 자야지. 이계환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자는 모습도 멋지다. 이종문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태양이 나뭇가지 사이로 따뜻한 온기를 내려준다. 매일 보는 태양의 소중함을 이때만큼 몸과 마음으로 느낀 적이 없었다. 태양을 향해 큰 절이라도 드리고 싶었다.

▲ 대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박달령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비로소 사위가 눈에 잡힌다. 쓸쓸한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진다. 멀리 보이는 건너편 능선 위론 열병 서듯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하늘과 맞닿은 나무들은 손을 치켜들고 아우성친다. 다 벗어던지고 빈 가슴 빈 몸으로 하늘을 향해 외쳐대는 처절한 몸짓이 안쓰럽지만은 않은 것은  다시 움터오는 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탄생하고자 몽땅 비우는 끝없는 순환이 경이롭다.

▲ 박달령 너머로 옥돌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능선 남쪽 나뭇가지 사이로 물야 저수지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보부상들의 삶은 고개마다 이야기로 남고

 “박달령 오른쪽으로는 옥돌봉과 구룡산 높은 뫼가 버티고 있고, 왼쪽 멀리로는 늦은목이를 껴안은 선달산이 버티고 있어 영월과 태백으로 오가는 등짐장수들은 필경 박달령을 넘는 지름길을 내왕해야만 일정을 줄일 수 있었다. / 생달이 그처럼 피폐하게 된 연유는 강원도 영월 태백으로 드나들던 부상들이 박달재를 넘다가 고개치에서 출몰하는 도적떼에게 크게 봉변을 당한 뒤로, 내성에서 옥돌봉 기슭을 지나 구룡산 아래의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로 가는 길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김주영 소설 ‘객주’엔 이곳을 묘사하는 글들이 여러 장면 나온다. 울진에서 소금과 해산물을 지게에 지고 험준한 십이령 길을 넘어 봉화 내성장에서 한숨 돌린 보부상들은 충청과 강원도 산간마을로 장사 길을 나섰다. 단양 쪽은 고치령 마구령으로, 영월 태백 쪽은 늦은목이 박달령 도래기재로 넘나들었다.

▲ 커다란 박달령 표지석을 배경으로 이석화 대원이 서있고 뒤편에 성황당이 보인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보부상들은 생존을 위해 험준한 백두대간을 넘었다. 산짐승들도 생존을 위해 그들의 길을 만들고 인간도 생존을 위해 길을 연다. 그 옛날 생존의 길이 지금은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이 되었다. 

 박달령은 외씨버선 길 약수탕 길이 지나는 길목이다. 박달령으로 하산하면 오전약수터를 지나 보부상 위령비를 거쳐 물야 저수지와 만난다. 물야 저수지엔 보부상들이 전 재산을 투자하여 토지를 사들이고 죽을 때 마을에 그 땅을 기부하였다는 애전 마을이 수몰되어 있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가족도 없이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기 일쑤였던 보부상들은 토지를 사들일 때 자신의 이름 대신에 별칭으로 사들였다. 송파가 고향이면 김송파처럼. 그리고 소출이 난 것은 마을 사람들과 같이 나누었다. 마을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합동제사를 지내주고 수몰 후에는 위령비를 세워주었다.

▲ 보부상들의 애전마을이 수몰되어 있는 물야 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백두대간엔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야기는 상상력의 원천이며 타임슬립의 통로다.  과거와 현재는 이야기를 매개로 소통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미래를 꿈꾼다. 이야기가 없다면 허무가 자리할 것이다.

박달령에서 탈출은 용인되지 않았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내려서는 긴 하산 길에 맥이 다 풀렸다. 그 옛날 길손들이 오고가며 무사를 기원했을 성황당이 보이고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박달령에 내려서니 마치 하산한 느낌이다. 그래서인가 이쯤에서 하산하자는 돌출발언이 나왔다. 

그런데 그 의견의 주인공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철체력의 소유자 오동진 후미대장이다. 고치령에서부터 밤새 걸어 온데다 마음을 놓았는지 예기치 않게 체력소모가 심했다. 여기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가 숨어 있지만 때론 상상에 맡겨야 할 때도 있다.

▲ 박달령에서 잠시 몸을 추스리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저녁에 있을 송년회 시간도 걸리고 밤새 추위와 싸운 대원들도 마음에 쓰였는지 전용정 대장이 의외로 대원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하지만 탈출의견은 고비를 넘지 못했다. 김성국 대원의 허공을 가르는 한마디가 조용히 귀를 때린다. “가야죠!” 상황종결이다. 

▲ 옥돌봉 오르기 전 박달령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전용정 대장이 오전약수터를 들러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고 만다. 대못을 박듯 이석화 대원과 김성국 대원은 뒤도 안 돌아보고 옥돌봉으로 오른다. 야속한 사람들이라니! 사실 나도 은근히 탈출을 기대했다. 고치령에서 부터 온 대원들 보기에 낯간지러워 감히 드러내 놓고 말을 못했을 뿐이었다. 

 옥돌봉 오르면서 박명한 대원이 쥐가 나 이렇게 힘든 산행도 최근에 없었노라고 뒤늦게 털어놓는다. 진작 얘기할 것이지.

머나먼 옥돌봉, 마지막 남은 인내력을 짜내다

  사실 전용정 대장이 탈출을 생각해 본 것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다. 그 이유를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옥돌봉 오르막이 좀 지루해요.” 옥돌봉 오르면서 전용정 대장이 지나치듯 말한다. 좀 지루하다고! 탈진한 몸으로 오르내림도 없이 조망도 없는 곳을 3km을 끊임없이 오르기만 하는데. 

 꾸역꾸역 따라 오른다. 오동진 후미대장이 헤매는 모습도 처음 본다. 엉덩방아도 몇 번 찐다. 대원들은 에둘러 인간적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렇듯 귀여운 면이 있었을 줄이야. 박명한 대원은 쥐난 다리로 천천히 이민우 대원의 호위를 받으며 오른다.

▲ 박명한 대원과 이민우 대원이 힘겨운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오르는 길은 능선 아래 산허리를 타고 이어진다. 보이는 것은 헐벗은 나무들과 수북이 쌓인 낙엽들뿐. 고개 들어 쳐다보면 긴 오르막이 기를 질리게 하고 이곳만 지나면 능선에 오를까 하면 또 다른 오르막이 앞에 떡하니 펼쳐진다. 

▲ 옥돌봉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선두는 계속 간다. 뒤로 쳐진 박명한, 이민우 대원에게 갑자기 더 정이 간다. 동병상련인가. 

 이민우 대원은 이번 산행의 반전의 주인공이다. 고치령 팀인 이종규 대원은 워낙 체력이 좋다. 백두대간 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늘 선두다. 

 반면 고치령 팀에 이민우 대원이 합류했을 때 대부분이 걱정했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불안했다는 얘기다. 그런 이민우 대원이 시종일관 끄떡없이 게다가 베테랑 박명한 대원을 돌보며 가는 모습에 모두들 경탄해 마지않는다.

 이민우 대원은 코 위로 손수건을 감쌌다. 안경에 서리는 김 때문이란다. 흡사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얼굴을 감싼 부상병의 모습 같아 측은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는데 끝까지 하고 간다. 즐겁게 수다까지 떨어가면서. 

▲ 산허리를 따라 옥돌봉에 오르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주실령 갈림길만 가면 옥돌봉이 240m 지척이다. 길고 긴 오르막이 드디어 끝나고 주실령 갈림길 표지목을 만났다. 이젠 고생 끝이다. 240m 그까짓 것. 하지만 240m는 심리적인 거리일 뿐 다리가 느끼는 240m는 왜 이리 멀기만 한지.

 힘겹게 오른 옥돌봉엔 암석덩어리 위로 직사각형 표지석이 멋없이 서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좀 운치가 있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걸. 정상 밑 널찍한 헬기장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 옥돌봉 아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박달령에 내려서면서 오늘은 안 보이나 했던 나사모 산악회 회원들을 옥돌봉 오르는 길에 한 둘씩 만났다. 

 호기심 많은 심주이 총무가 하산 길에 나사모 산악대장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은 우리가 두 번에 나누어 가는 구간을 한 달마다 한 번에 종주하고 다른 주는 또 다른 산을 30km 가까이씩 등반한다는 사실. 

 “매일 뒷산을 오르내리면 되요. 어렵지 않아요.” 입이 딱 벌어지는 심주이 총무를 뒤로 하고 그들은 갈 길을 간다. 하산했을 때 그들이 하산주로 선물한 막걸리 네 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어느덧 우리와 정이 들었나 보다.

 고치령에서부터 무려 27km를 상회하는 혹한의 길을 걸어온 4인의 철각들과 7인의 본대원들은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옥돌봉 양지 바른 곳에 편안히 자리 잡고 앉았다. 한낮의 태양아래 몸과 마음은 일시에 풀려 버린다. 

지난밤의 무용담과 에피소드가 흘러나오고 모두들 예상하지 못한 이민우 대원의 투혼에 거듭 거듭 찬사가 잇따른다. 다시 봐도 코 감싸개는 오늘의 히트상품이다. 오동진 후미대장의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에 너도나도 놀려대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 힘들었어도 환한 미소를 짓는 옥돌봉의 오동진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송년회가 기다리고 있다, 가자 도래기재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고 너무 여유를 부렸다. 벌써 1시30분이다. 송년회 시간에 대기가 빠듯해 졌다. 도래기재까지 2.7km. 도래기재에서 서울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점심을 생략하고 휴게소에서 대충 때우기로 한다. 

  하산 길은 드문드문 눈이 남아 있고 미끄러운 곳이 서너 곳 있었지만 계곡 길이 아니어서  속도가 붙었다. 철쭉이 군락을 이룬 곳에 550년 수령의 철쭉고목이 눈부신 햇살을 등에 지고 있다.

▲ 550여년 모진 풍상을 이겨낸  고목이 햇살을 등지고  서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남쪽으로 봉화군 춘양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춘양면에는 백두대간을 타고 금강산에서부터 청송에까지 퍼져있는 금강송이 자란다. 봉화 울진 근방에서 벌목한 금강송은 춘양역에서 실려 기차로 하루 만에 서울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춘양역에서 왔다고 해서 이곳의 금강송은  춘양목이라 부른다.

▲ 하산길에 남쪽으로 봉화군 춘양면이 펼쳐진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오동진, 박명한, 이민우 대원이 시종일관 후미자리를 고수하며 내려간다. 같이 고락을 겪어서 더욱 우정이 깊어졌는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면서 하산한다. 그 모습이 정겹다.

▲ 하산길이 마냥 즐거운 박명한, 오동진, 이민우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도래기재엔 생태도로가 위로 나있고 오지의 여느 고개처럼 한적하다. 한 때 금광이 있어 수천 명이 마을을 이루며 영화관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 것인가? 지금은 봉화군 춘양면과 영월군 김삿갓면을 잇는 도로만이 그 옛날의 영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용히 놓여 있다.

모든 일의 끝마침이 있다는 사실은 고생을 한 뒤에 더욱 실감이 난다. 새벽의 혹한과 칼바람을 뚫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4인의 철각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물론 본대 역시 어려운 구간을 잘 헤쳐 나왔다. 눈마저 두텁게 덮여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하기 싫을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 이종규 대원이 도래기재로 지친 기색도 없이 내려서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대자연은 경외감을 품고 대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때때로 대자연은 무자비하게 돌변할 수도 있다. 

 조망도 설경도 없는 구간이었지만 대원들 간 유대와 신뢰는 더욱 깊어졌다. 모든 일이 그렇듯 끝이 좋으면 고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종주대는 안전을 위해 2월 중순까지 휴식기를 갖는다. 그리울 것이다. 대원들도 산들도... 

▲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도래기재에 내려선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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