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 / 종주대원
 

일자 : 2018년 10월 14일 (무박 산행)
구간 : 남천리~싸리재~묘적봉~도솔봉~죽령
거리 : 17.75km (접속구간 2.8Km 포함)
시간 : 10시간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인원 : 10명

 

새벽산행의 즐거움

▲ 2주일 전인 34구간 산행 때 날머리인 남천리 저녁 풍경.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얼마나 지났을까? 전용정 대장이 “다 왔습니다. 기상” 하자, 눈을 뜨니 차창 밖은 고요하다. 가만히 창밖을 보니 어둠 속에서도 낯익은 광경이 나온다. 그렇다, 2주일 전 이곳으로 날머리를 삼아 하산했었지. 

대원 10명을 실은 소형 버스는 우리가 산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도록 언덕을 계속 올라 차를 돌릴 수 있는 데까지 전진한다. 이윽고 그런 장소가 나왔다. 더 올라가는 건 무리다. 버스에서 내리자 새벽하늘에서 와락 별이 쏟아지다. 새벽산행의 맛은 이거다. 모두가 잠자는 시간, 홀로 또는 몇몇이서 별을 벗 삼아 산행을 한다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다.  

초가을 새벽의 바람은 신선하다. 이지련 단장이 심호흡을 하며 “한 달에 두 번씩 받는 축복”이라고 감탄해 한다. 우리 백두대간 종주대가 한 달에 두 번씩 산행을 하니, 또 산행을 하면서 맑은 공기와 자연과 접하니 이를 감사히 받는 것이리라. 

남천리.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천리. 2주일 전엔 날머리이지만 이날은 들머리다. 2주일 전 원래 날머리는 남조리로 잡았는데 잘못 하산을 해 남천리로 내려왔다. 그때 저녁 어스름할 때 남천리 마을로 내려왔는데 모두가 놀랐다. 마을이 정갈하고 풍광이 운치 있어 감탄했던 것이다. 잘못 내려왔는데 참 잘 잘못 내려왔다고 모두가 동의한 마을이다. 

▲ 헤드 랜턴을 켜고 산행 준비를 한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풍경화에 나올듯한 마을. 짐작컨대 오지인 이 지역에 주민들을 위해 혹은 귀촌 농민들을 위해 지자체에서 도로를 정비해 주고 주택엔 축대를 쌓아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1차선 도로는 어제 뚫린 듯 아스팔트와 백색 선이 깨끗했고 각 집들은 깔끔히 채색되어있었다. 마을 어귀나 담에는 작은 화원에 예쁜 꽃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새벽.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간간히 여기저기 전봇대 불빛이 도로와 산간임을 알려줄 뿐이다. 길을 오르는데 저만큼 어둠 속에서 개가 짖는다. 이 소리에 신호를 받아 저 멀리서 여러 개들이 컹컹 짖는 소리가 산골마을을 뒤덮는다. 멈칫한다. 우리 대원들 때문에 마을사람들의 새벽잠을 설치게 할까봐 마음을 졸인다. 헤드 랜턴을 켜고 산행준비를 한다. 

두 번의 알바 끝에 능선에 오르다

둘레길을 걸으며 산행길을 찾아 올라야 하는데 그만 산길을 놓치고 지나갔다. 처음부터 알바다. 다시 뒤로 돌아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참 많이도 지나쳤구나. 돌아가면서 세심히 산길을 찾아도 잘 보이질 않는다. 몇 번이고 허탕 친다. 어둡기도 하고 나무숲으로 덮어있어 길이 잘 안 보인다. 

드디어 산길을 찾았다. 이제부터 접속구간인 멀고도 험한 계곡길을 올라 첫 능선인 싸리재에 도착해야 한다. 거기부터가 대간길이다. 바닥은 작은 너덜바위 천지라 걷기가 힘들고, 또 계곡이 흐르는데 산행 길까지 계곡물이 흘러 산길인지 물길인지 가늠이 안 간다. 어둠 속에 특정 길이 보이지 않고, 산행길이 있다고 해도 찾기가 쉽지 않다. 

▲ 암벽 옆 계단을 오르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얼마쯤 지났을까. 30여분 지났을까? 대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린다. 길을 잘못 들은 것 같다는 것이다. 또 알바인가? 알바라 해도 되돌아갈 수 없다. 너무 멀리 왔고 뒤돌아 간들 길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위안이 드는 것은 알바를 했더라도 지금 오르는 길이 산행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등산길은 등산길이다. 다만 어느 능선에 닿느냐이다. 

처음에 길을 잘못 들면 길이 부채살처럼 퍼져 어찌어찌 운 좋게 능선에 닿아도 원래 목적지와는 엄청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이 단장도 여러 산행기를 봤는데 이곳 계곡길이 대개 불명확하게 묘사돼 있다고 한다. 그만큼 특정 등산로가 지정돼 있지도 않고 또 등산객 발길도 뜸하다는 것이다.

▲ 전용정 대장의 멋진 모습.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심주이 총무의 망중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종주대 막내 여현수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능선에 올라 뱀재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초반부터 지친 몸을 가누며 오르다 동이 틀 무렵 능선길에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이 능선길이 대간 능선길인지 아닌지,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야 했다. 누군가 핸드폰 인터넷으로 위치 검색을 하니 흙목과 뱀재 사이란다. 그렇다면 원래 목적지인 싸리재를 지나 순방향으로 2킬로 정도 더 온 셈이다. 어쨌든 두 번의 알바를 하면서도 대간 능선에 닿은 것이니 안심이 놓였다.

대원들 사이에서 잠시 논쟁(?)이 일었다. 대개는 힘들어 그냥 전진했으면 하는 눈치인데 몇몇 대원은 종주에 어긋난다며 싸리재까지 가서 다시 와야 한다고 ‘사리에 맞는 말’을 한다. 특히 ‘원칙주의자’ 김성국 대원이 가장 완강하다.

예상치 못한 해돋이를 보다

▲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산 능선에서 잠시 티격태격하는데, 가장 나이 어린 청년 여현수 대원이 “저기 보세요” 한다. 모두 고개를 반대편 산능선으로 돌린다. 해돋이다. 빨간 몸체가 먼 산 사이로 빼꼼히 드러난다. 

우리는 논쟁을 하다말고 모두 일어나 능선가로 달라붙었다. 오랜만에 보는 해돋이다. 최근에 무박산행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또 무박산행일지라도 계곡을 오르다 놓친 경우도 있었다. 해돋이를 볼 때 꼭 느끼는 건 해가 그리 빨갈 수 없다는 것과 산이나 구름 사이에서 참 빨리도 오른다는 것이다. 해돋이에 잠시 넋을 잃는다. 알바를 했지만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 해돋이.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산행 결정은 대장의 몫. 전용정 대장이 전진을 선언한다. 연이은 알바에 시간이 지체된 것과 체력도 소모된 것 등을 고려했으리라. 전진 명령이 떨어지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김성국 대원이 투덜댄다.

이제 본격적으로 능선을 걷기 시작한다. 능선엔 단풍과 싸리나무 천지다. 그런데 능선의 나무들은 단풍 절정이 지나 색깔이 바랬고, 싸리 잎은 힘없이 처져 말라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싸리나무는 태워도 연기가 나지 않기에 빨치산들이 밥 짓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싸리나무를 보니 문득 군대 생각이 났다. ‘싸리나무의 일생’이라고나 할까? 가을에 산 천지에 자라있는 싸리나무를 밑둥까지 잘라 연병장에 날라 길게 널려놓는다. 며칠 지나면 이파리가 말라 바삭바삭해지며 자연히 떨어진다. 싸리나무를 한 웅큼씩 둘로 해 윗부분을 엑스(X)로 해 묶은 다음 힘을 줘 둘을 합해 중간쯤을 묶는다. 싸리비가 되는 것이다.

이 싸리비는 겨우내 연병장 쓸고 낙엽 치우고 눈 치우고 하다가 봄이 되면 몽당연필처럼 닳아 더는 빗자루 구실을 못하게 된다. 그러면 남은 싸리비는 좋은 연료다. 따뜻한 봄날 휴일 처마 밑에 앉아 반합에 라면을 넣고 몽당해진 싸리비를 태우면 라면 서너 개는 거뜬히 끓어 먹을 수 있다. 연탄이나 가스불보다 훨씬 맛있다. 

▲ 유일한 단풍에서 자세를 잡은 오동진 후미대장.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바짝 마르고 있는 단풍들 속에서도 그나마 반짝이는 단풍이 하나 있다. 이제껏 본 유일한 단풍이다. 탄성을 지르며 이 아래에서 찰칵 하고 기념을 남긴다. 마침 평지가 나온다. 새벽부터 두 번의 알바를 하면서 힘을 뺐더니 시장기가 빨리 올라온다. 그러고 보니 피로감도 엄습한다. 여느 때보다 식사도 빨리 했으며 또 중간엔 휴식 겸 잠시 취침을 하기도 했다.

▲ 즐거운 식사 시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가짜 묘적봉

그래도 능선길은 계곡길에 비해 엄청 수월하고 편했다. 이제부터 1000고지를 전후한 능선과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문제는 이런 봉우리가 다섯 개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높낮이가 작은 등산길이라 해도 서너 번 오르락내리락하다보면 지치게 마련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봉우리가 있을 땐 더 그렇다. 체력 안배를 했는데 높은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야 했을 땐 아연 실색할 정도다.

▲ 가짜 묘적봉 글씨.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가짜 묘적봉에서 기분 좋게 찰칵.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얼마를 지났을까. 오르막을 오르니 주변이 휑하게 열린 바위로 된 정상이 나타난다. 전망이 탁 트여 있다. 바위에 서툰 글씨로 빨갛게 ‘묘적봉’이라 쓰여져 있다. 우리는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서 숨도 고르고 사위를 조망한다. 

이민우 대원이 북한엔 묘향산이 있는데 여긴 묘적봉이라면서 같은 ‘묘’ 씨라며 웃는다. 묘향산 한자가 무엇이냐고 하길래 누군가 묘할 묘(妙)자에다 향기로울 향(香)를 쓴다고 한다. 여기 묘적봉(妙積峰)도 같은 묘(妙)자를 쓴다.

▲ 진짜 묘적봉에 선 이석화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이 묘적봉은 가짜다. 몇 백 미터를 더 가니 진짜 묘적봉(1,148m)이 나타난 것이다. 우린 가짜 묘적봉에서 바람도 쐬고 휴식을 취하며 사방을 조망했다. 그런데 진짜 묘적봉은 가짜 묘적봉보다 운치가 없었다. 그냥 표지석 하나 덜렁 있을 뿐이고 주변은 나무 때문에 트여 있지가 않다. 

소백산 구간에 들어서다

▲ 지나온 마루금.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급경사 계단길.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앞에서 이민우 대원과 박명한 대원이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묘적봉은 소백산국립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봉우리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소백산 구간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백두대간의 구간은 통상 지리산 구간, 덕유산 구간, 속리산 구간, 소백산 구간, 태백산 구간, 설악산 구간 등으로 나눈다. 그간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구간을 지나 지금 소백산 구간에 들어선 것이다. 구간만으로도 남측 대간에서 반을 넘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적으로도 지난해 3월부터 시작했으니 1년 7개월이 지났다. 이번 겨울을 넘기고 다음 겨울 이전까지는 대간 산행을 마치자는 게 대원들 간의 이심전심이다. 아무래도 겨울 산행은 부담이 크다. 특히 마지막 구간은 설악산이다. 한겨울에 설악산을 만나는 건 편치 않다. 게다가 설악산 구간은 당일 산행이 거의 없다. 무박이라 해도 접속구간이 긴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내년 겨울이 오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소백산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는 도솔봉

이제 이날 산행의 마지막 승부처인 도솔봉이다. 멀리 이날 산행의 최고봉인 도솔봉이 보인다. 암벽을 휘감고 있다. ‘섬은 보여도 멀고 산은 보이면 가깝다’고 했는데, 산과 고개를 넘길수록 가깝게 보이는 도솔봉이 가도 가도 가깝게 보일 뿐 잡히질 않는다. 누군가 “모든 산이 그렇듯이 도솔봉도 쉽게 허락하지 않네요” 한다. 능선이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 마을을 둥글게 유(U)자형으로 휘감고 돌기에 일정한 거리로 가깝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35구간 산행의 최고봉인 도솔봉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도솔봉 오르는 길은 주위 경관이 장관이다. 도솔봉에 올랐다. 가깝게 소백산 연화봉과 천문대, 비로봉, 국망봉 등 소백산 주능선 마루금이 한눈에 와락 안긴다. 바로 다음 산행 구간이다. 이날 구간의 최고봉에 올랐으니 휴식도 취하고 요기도 때우고 주위도 부감한다. 

▲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주능선.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우리의 백두대간 해설사 이 단장이 도솔봉과 비슷한 도솔천(兜率天)에 대해 일장 해설을 한다. 도솔천의 천 자가 내 (川)인 줄 알았더니 하늘 천(天)이라면서 불교의 우주관을 들어 설명한다. 우리의 대간 공식 해설사인 이 단장은 이렇게 공부를 해온다. 산행정보를 매번 정리해 올리는데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이를 위해 산행기 20-30편, 지도, 주요 구간, 유래 등을 조사한다고 한다. 대원들에게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는 재미도 있지만 자신에게 공부도 된단다. 문득 자료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솔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체력보충을 할 즈음 한 무리의 산악인들이 도솔봉에 들이닥쳤다. 대간을 전문적으로 타는 산악인들이다. 간소한 옷차림, 작은 배낭, 엄청 빠른 스피드. 경관 좋은 정상임에도 잠깐 머물러 주위를 조감하고는 오직 인증샷을 위한 듯 정상석에서 사진 한 장 급히 찰칵 하곤 바람처럼 자리를 뜬다. 

이들은 오직 산을 목적 대상으로 두고 빠르게 달려 정상을 정복하고는 다음 정상을 향해 내빼는 것을 반복적으로 하며 무한질주를 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지러운 생각도 든다. 누군가 “우리 산악회는 저렇게 안하는 게 다행”이라며 안도를 한다. 저들의 무한질주를 보고 불안했나 보다. 

정신 줄을 놓자 허벅지에 통증이 오다

이날의 정상 도솔봉을 탔다는 안도감이 지나쳤는가? 마지막 봉우리 심형제봉이 내겐 쥐약이었다. 도솔봉에서 한참 내려온 탓도 있지만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삼형제봉을 오르는 건 고역이었다. 도솔봉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 도솔봉에서 깊숙이 내려왔기에 삼형제봉까지는 고스란히 올라가야 한다. 

▲ 휴식 후 산행할 채비를 하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삼형제봉에 오르는 막판에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정상을 넘었다는 안도감에 정신 줄을 놓았다가 마지막 봉우리를 타다가 중간쯤에서 그만 오른쪽 허벅지에 이상이 온 곳이다. 오르면 허벅지에 힘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힘을 줄 때마다 통증이 온다. 무게중심을 왼쪽으로 옮겨 조심스럽게 오르려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쥐가 나려 하나 보다.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앞서 오르던 박명환 대원에게 허벅지에 통증이 온다고 하니까 바로 멈추라고 한다. 그리고 배낭을 뒤지더니 알약을 하나 꺼내준다. 아스피린이다. 약을 먹고 잠시 쉬라고 한다. 물도 마시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올랐다. 아스피린 때문인지(그렇겠지만) 이후부터 통증이 없어지고 비교적 가볍게 오를 수 있었다. 어쨌든 힘겹게 오른 삼형제봉 정상에 정상석은 없고 리본만 나부꼈다.

그러고 보니 박명환 대원은 산행에 참 재주도 많다. 대간길도 몇 번 탄 것 같고, 산행 지리도 훤하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산을 편하게 탄다. 프로의 냄새가 난다. 무엇보다 배낭에 없는 게 없다. 비상시 필요한 여러 물품들, 무릎보호대, 방수용 장갑 등등 소품서부터 응급처지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산행지식도 풍부하다. 그러기에 산행중 이상이 오거나 급하면 그를 찾는가 보다.

편안한 죽령 하산길

▲ 죽령으로 하산하는 내리막길. 길고 넓고 푹신하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제부터 이날의 날머리인 죽령까지는 4킬로미터 정도를 가야 한다. 하산길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거리는 긴 편이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흙길인데다 낙엽과 솔잎이 내려앉아 푹신푹신해 걷기 쉬운 길이다. 새벽에 올라온 길은 너덜길에다가 길도 안 보여 알바도 두 번이나 했는데 내리막길은 넓고 편하다. 1시간 30분 정도에 내려온 것 같다. 

내려오니 죽령 큰길이 나오며 맞은 편 아래에 주막이 있다. 우리는 산행 때부터 이 주막을 목표로 삼았었다. 하산하면 들르리라 하면서. 우리는 죽령주막에 가 식사와 반주를 들며 무박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한 달에 두 번씩 받는 축복”인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35구간을 무사히 마쳤다.

▲ 날머리 죽령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죽령주막에서 식사와 함께 반주를.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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