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9월 안 평양’에서 3차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올해 4.27 판문점선언에서 명시된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를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들어 올해에만 4.27, 5.26에 이어 ‘9월 안’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사실상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의아스럽게도 날짜를 특정하지는 못했습니다. 택일(擇日)을 못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합니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약혼을 하려고 했다가 약혼식은 하는데 날짜는 아직 못 잡았다는 격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떠돕니다. 하나는 남측과 북측의 택일 입장 차가 있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남측은 8월 말이나 9월 초를 희망했는데 북측은 정권 수립 기념일인 9월 9일(9.9절)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회담 전부터 남측 정부의 입장이었기에 이해가 되지만 후자는 불명확합니다. 마침 청와대가 14일, 북측이 9.9절에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확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북측이 대남 압박용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부러 택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근 북측은 연일 남측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핑계로 남북경협 등에 나서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시해왔습니다. 더구나 이번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측 리선권 단장은 “북남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탄생할 수 있고, 일정에 오른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측이 남북관계 진전의 답보 상태에 대해 남측에 이런저런 불만을 표출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대남 압박을 지렛대로 ‘신성한’ 남북정상회담을 어쩌겠다는 식의 ‘불경’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은 남측과 북측 동시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최근 남북을 둘러싼 숱한 정치일정 때문에 택일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9월만 해도 북측의 9.9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9월 11-13일), 9월 하순 유엔총회 등이 이어지고 9월 말에는 추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예정된 방북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유력한 방북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일정은 어차피 병가지상사이기에 남북정상회담 택일을 하는데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던 중에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정상회담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9월 안 평양’에서 갖기로만 합의한 것은 ‘북미관계 변수’ 때문이라는 소식이 14일 전해졌습니다. 사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는 교착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종전선언과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 중이고 미국은 북핵 리스트 제출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서로 팽팽하게 맞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택일이 안됐다는 것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상호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12 북미합의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어야 남북정상회담 개최 택일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침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이 이르면 다음 주에 성사될 거란 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일정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남북정상회담 일정도 잡힐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라도 해서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남북정상회담 택일’로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늦어지거나, 나아가 방북 결과가 좋지 않다면 남북정상회담을 계속 순연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에 영 찝찝한 것도 사실입니다.

택일은 중요합니다. 남북정상회담 일정은 외풍의 영향을 받는 변수가 아니라 오히려 외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수가 되어야 합니다. 북측 리선권 단장이 남북고위급회담 후 취재진을 만나 “(정상회담은) 9월 안에 진행된다. 날짜도 다 돼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수정,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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