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무궤도 전차(트롤리버스)는 평양의 얼굴”
      
필자가 평양에 체류하는 기간에 간혹 휴식을 취하거나 산책을 할 때 혹은 시내거리를 지날 때 틈나는 대로 이것저것 시민들에게 궁금한 내용들을 질문하곤 한다. 북측의 인민들과 평양시민들에게는 평양시내 전차들에 얽힌 여러가지 일화들과 추억들이 의외로 많았다. 특히 평양 전차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면 다들 저마다 아름다운 추억담들을 지니고 있었으며 각기 체험들이 달랐다. 그들은 대부분 전차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간혹 전차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출퇴근할 때 콩나물시루처럼 불편한 상태에 대해서는  좋지 못한 기억들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궤도 전차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마칠 때까지 힘들었지만 2-3년 동안 공사 현장에 동참했다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궤도 전차는 1991년에 개통되었다. 그런데 이 궤도 전차노선 개통을 위해 큰 도로 위에 궤도를 설치하는 작업과 전차 지붕에 연결되는 전기줄을 공중에 설치하는 작업들은 아주 고도의 정밀 기술을 요구하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당시 많은 인민군 장병들과 평양시민들,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한 마음으로 개통되기 2-3년 전부터 땀 흘려 완공했다고 한다.

웬만한 평양시민들과 병사들은 전차궤도 건설 동원에 한두 번쯤은 참가했으며 완공 후에는 대부분 전차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주부들은 주말 아침이 돌아오면 야외로 소풍갈 준비를 하느라 한참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새벽부터 깨우며 분주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야 첫 전차를 타고 가족들끼리 문수원이나 창광원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전차 문화는 평소에는 자녀들의 학교 통학과 남편의 직장 출퇴근 시에 매일 이용하기 때문에 이미 가정마다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또한 과거 70년대 초에 개통된 지하철이 대동강 건너편에 있는 동평양 지구에는 다니지 않기 때문에 대동강을 건너 출퇴근하려는 시민들을 위해 국가와 평양시에서는 송신역에서 만경대구간에 무궤도 전차 노선을 건설했으며 일반 시민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문수거리와 락랑거리 구간에도 무궤도 전차노선이 개통됐다. 무궤도 전차노선은 궤도 전차보다 역사가 아주 더 오래됐다고 한다. 특히 무궤도 전차의 역사는 1962년 5월부터 시작되었는데 그중에서도 1963년~1967년 사이에 평양무궤도 전차공장에서는 많은 전동차들을 생산했다고 한다.

이처럼 궤도 전차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송신-만경대 노선을 버스가 두 대 연결된 노란색의 굴절버스 전차가 다니며 운행을 했는데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때 당시 그 노랑색 차량들이 그토록 멋지고 예뻐 보였다고 한다. 그 후 이 노란색 굴절버스(무궤도 전차)를 없애고 송신역부터 만경대까지 궤도 전차가 최초로 운행되기 시작했으며 락랑거리에서 문수거리까지 구간에도 이 궤도 전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처럼 인민들의 생활가운데 전차들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중요 부분이 된 것이기 때문에 “무궤도 전차는 평양의 얼굴”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무궤도 전차 생산 공장을 시찰하는 도중 최신형 무궤도 전차에 탑승하며 “무궤도 전차가 수도 평양의 얼굴이 되게 하여야 한다”며 강조했던 교시였다. 여기서 언급된 무궤도 전차는 일반 무궤도 전차가 아니라 외형이 고급 일반버스처럼 생긴 최신형 트롤리버스를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 최신형 무궤도 전차인 트롤리버스들이 평양시내의 핵심적인 교통수단을 상징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 무더운 한 여름 낮에 승객을 적당히 태운 궤도 전차가 유유히 시내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비가 간간히 내린 오후 시간에 궤도 전차가 시내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락랑-서평양 구간을 운행하는 궤도 전차가 대낮에도 승객을 가득태운 채 시내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청색, 붉은 색 무궤도 전차들이 평일 낮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 도로에 정차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아침 출근시간대 승객을 가득 태운 채 시내를 달리는 무궤도 전차.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무궤도 전차는 평양 외에도 청진, 원산, 함흥 등에도 운행 중
     
현재 평양에는 무궤도 전차와 궤도 전차 두 가지 다 운행되고 있다. 특히 무궤도 전차는 평양 이외에도 청진, 원산, 함흥 등 주요 대도시에도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궤도 전차 노선을 잠시 살펴보면 1호선은 만경대에서 평양역을 거쳐 송신까지 운행하며, 2호선은 시작역, 종착역이 토성역-문수역 구간이며 이는 모두 대동강 남쪽이다. 3호선은 서평양에서 락랑까지 운행하는 노선이다. 이들 궤도 전차 노선들에서 운행되는 전동차들은 대부분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에서 자체 생산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붉은기 6호’가 궤도전동차 중에 가장 대표적으로 운행 중인 차량이다.

무궤도 전차는 궤도 없이 공중에 설치된 전깃줄을 따라서 움직이는 전차(Trolly-Bus)를 말하는데 이는 전기를 이용한 동력으로 운행하는 버스라 할 수 있다. 평양에는 현재 15종류 이상의 무궤도 전차 차량들이 운행 중이며 색상 등이 컬러풀하거나 심플한 디자인들이 많았다. 평양에서는 1962년 5월 처음으로 무궤도 전차를 운행한 이래 지금까지 주요 간선도로 10개 노선에 무궤도 전차가 운행되고 있다. 무궤도 전차는 대형 전기버스라고 이해하면 되며 대략 1백 명 정도 태우는 대형버스와 50명쯤 태우는 소형버스가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북조선은 1961년 무궤도 전차 설치계획에 따라 평양 화물자동차 수리 공장에서 무궤도 전차선 가설을 추진하기 시작해 현재 평양에만 평양-공업농업전람관 구간을 비롯해 평양역-연못동, 평양역-서평양역, 황금벌-송신역, 평양제1백화점-사동구역, 문수거리-낙랑구역, 모란봉-광복거리, 연못동-평성, 팔골동-대동강역 등 10여 개 노선의 무궤도 전차가 운행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90년대 들어와 평양과 청진 등에 궤도 전차화 공사를 추진해 왔는데 그 일환에 하나로 평양을 비롯한 청진, 원산, 구성진, 평성, 안주, 경성, 함흥, 서천, 혜산 등 10여개 도시에서 대중교통수단으로 무궤도 전차가 운행되고 있다. 이는 배기가스가 없고 건설비가 적게 드는 특징을 지녀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무궤도 전차는 이번에 최신형 트롤리버스를 대량 자체 생산하게 되면서 전차의 문화도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추세였다. 일반적으로 무궤도 전차의 요금은 초창기에는 일반성인 10전, 학생은 5전이었는데 현재는 모든 승객들이 내는 요금이 일괄적으로 5원으로 통일되어 인상됐다.

이처럼 무궤도 전차의 또 다른 명칭인 트롤리버스(Trolley bus)는 일반적으로 팬터그래프가 차량 천장에 탑재되어 있으며, 이곳으로 카데나리로 연결된 외부 전력선을 통해 전력을 공급 받아 차량을 구동하는 시스템이다. 얼핏 보면 노면 전차(궤도 전차)와 비슷할 수도 있으나, 노면 전차는 별도의 레일이 설치되고 전차의 바퀴도 레일위로 쇳덩이 바퀴가 굴러가는 방식이지만 트롤리버스는 도로 위에 타이어식 바퀴가 굴러가며 레일도 필요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

트롤리버스의 시초는 전기철도를 개발한 독일의  발명품인데 당시 독일을 비롯해 영국, 미국, 유럽 각국에 활발하게 보급되었으나, 점차 지하도로와 고가도로를 운행하는 도시철도나 도시버스들이 그 역할을 차지하는 바람에 트롤리버스 운행이 점차 사라졌으나, 최근 들어 전기차량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매연과 소음이 없고 정전사태가 발생해도 문제가 없고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이나 시민들로부터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 한여름 무더위 대낮에도 승객을 가득 태운 궤도 전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차량 출입문을 닫지 않은 상태에서 승객이 매달려 가는 모습이 아찔하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출근길 승객들이 무궤도 전차에 탑승하려고 정류장에서 질서 있게 탑승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종점에 거의 다다른 궤도 전차를 필자가 가까이 따라가며 찍은 모습. 차량과 차량을 중간에서 잇는 장비들이 약해 보였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정전 되도 멈추지 않는 신형 무궤도 전차를 생산하다
       
평양시의 전차는 크게 3가지 종류가 있다. 궤도 전차와 무궤도 전차가 있으며, 무궤도 전차의 일종으로서 고급버스 외형을 지닌 트롤리버스가 있다. 트롤리버스는 기존의 무궤도 전차를 리모델링한 것을 말하며 외형은 일반 버스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트롤리선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 운행하는 최신형 첨단 대중교통수단이다.

특히 트롤리버스 생산을 담당하는 부서는 평양 수도여객운수국이다. 2017년 3월말 이 운수국이 주도해 축전지를 동력으로 활용하는 신형 무궤도 전차(트롤리버스)를 개발해 시운전한 것이  트롤리버스 대중화의 시초가 됐다. 북조선 자체의 순수기술과 힘으로 100%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다.

평양시민들은 큰 도로에 설치된 전차 선로를 가리켜 트롤리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선로에 전기가 아닌 축전지를 동력으로 이용해 전차를 움직일 수 있도록 개발했다는 것은 이 선로에서 공급하는 전기 동력만을 의존하던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강력한 밧데리(축전지)를 구비하는 2중 전원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의미이다. 평소에는 외부에서 공급받는 전력으로 운행하다가 정전이 되면 즉시 사전에 충전해놓은 축전지가 가동될 수 있도록 해서 운행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지금까지 무궤도 전차들은 트롤리선으로 공급받은 전력만으로 운행했기 때문에 전기가 아웃되어 정전되면 차량이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꼼짝없이 서 있기 때문에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나 통학하는 학생들의 지각 사태가 벌어지거나 많은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의 지시로 이런 불편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과 시운전에 성공하게 되자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평양 무궤도 전차공장은 현대화 개건공사에 착수해 12개 건물을 새로 짓고 기존 4개동의 건물을 보수해 개건공사를 끝내고 2018년 3월부터 드디어 무궤도 전차 전동차 생산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산한 첫 제품이 바로 ‘천리마-316’형이라고 한다. 개건공사를 하기 전에는 이 공장에서는 연결식 대형 무궤도 전차 ‘천리마-091’형만을 기본으로 생산하여왔는데, 이번에 개발한 ‘천리마-316’형은 ‘천리마-091’형에 비해 규모가 소형이기 때문에 수송승객은 다소 적다고 한다. 그러나 보니 차량 객실에 오르내리는 계단 높이를 더 낮추어 승객들이 전차에 편안히 오르내릴 수 있고 안전한 운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좌석 수는 24개. 탑승 정원은 80명이고 최대 120명까지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 전차는 전압이 낮아도 안정적인 운행을 할 수 있고 전력도 종전에 비해 절반정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으며 평소보다 진동과 소음도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평양 무궤도 전차 공장 차고 모습. 생산된 무궤도 전차(트롤리버스)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완성된 무궤도 전차(트롤리버스)들이 운행을 앞두고 차고에서 마지막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모두 3호선을 보유한 궤도 전차 노선

궤도 전차는 앞서 밝혔듯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사라졌다가, 1961년도 들어서 무궤도 전차가 도입되며 다시 전차시대가 시작됐다. 그 후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로 1991년에 궤도 전차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 궤도 전차는 현재 3개 노선이 운행 중이며 1호선은 평양역-만경대, 2호선은 토성-락랑-문수, 3호선은 서평양-락랑노선이다. 금수산태양궁전 전용노선은 삼흥역-금수산태양궁전까지 운행되며 1996년 4월 15일에 맞춰 개통됐다.

개통연도를 보면 1호선은 1991년, 2호선은 1992년, 3호선은 1998년에 개통했으며 1-3호선 모두 김일성 주석 탄신일인 4월 15일에  맞춰 개통했다. 특히 대표적인 궤도 전차는 1호선으로 보통 2-5분 간격의 배차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한편 1991년 4월 15일 만경대-평양역-선교-성신 간 19.1km가 최초로 개통했으나 대동강 횡단교의 노후화로 통과 중량 제한 규정이 생기게 됐다. 동시에 영광거리 공사와 정비를 하는 도중에 평양역-선교간의 2.6km 구간이 전격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세월이 지나 2014년에는 선교-성신 간 6.2km 구간이 폐지되며 무궤도 전차 노선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 현재는 만경대와 평양역을 잇는 10.3km 구간만이 운행 중이다.

또한 모든 전차는 출퇴근 시간이나 주중 주말 관계없이 2-5분 간격으로 정확하게 운행되고 있으며 특히 서성거리-천리마대로 구간은 궤도 전차노선과 무궤도 전차 노선이 나란히 부설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공중에 가설한 전차선(카데너리) 등도 궤도 전차용과 무궤도 전차용이 함께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진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신서교 전후 0.7km 구간은 궤도 전차 3호선과 선로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광복거리 인근의 청년영웅 도로에는 150m 지하도는 평양전차가 통행하는 유일의 지하구간이다. 대부분의 차량기지는 만경대 부근에 있으며 이곳에서 전차 2, 3호선의 차량검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성신에 있다는 차량기지는 선로 철거 후 무궤도 전차 전용으로 전환되었다.  전차 요금은 어느 구간에서나 무조건 5원 단임 요금제이며, 시내차표라는 이름의 패스와 자유승차권도 있다.

한편 평양시내에서 미림승마 구락부가 개원하기 전에는 궤도 전차 노선이 운행되고 있었는데 승마장이 개원하면서 노선 일부 정거장을 철거했다. 궤도 전차 레일을 일부 걷어내고 대신 대체 버스가 투입된 것이다. 미림 승마구락부로 가는 궤도 전차가 없어진 이유는 이용객들이 좀 더 효율적으로 최단거리로 목적지에 편안하게 왕래하도록 배려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 위험한 상황임에도 낡은 궤도 전차 뒤편에 고등중학교 학생들이 천진난만하게 매달려가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궤도 전차가 시내를 주행하는 모습을 외출 중에 찍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락랑-서평양행 구간 궤도 전차가 간선도로를 지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날씬한 외형의 빨간색 궤도 전차가 유유히 인도 옆을 지나치고 있다. 필자의 담당안내원이 전차 가 지나가는 순간에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무사고 문구표시를 부착한 문수-토성구간 궤도 전차가 궤도 위를 달리고 있다. 원래 1호선이었으나 현재 2-3호선으로 이적됐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석암동-개선문 구간 무궤도 전차가 정거장에서 승객을 태우는 장면.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광복거리 인근의 청년영웅 도로의 지하도를 2량짜리 무궤도 전차가 통과하는 모습. 지하도는 150m 길이로서 평양 유일의 전차통과 지하구간이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역이 종점인 노랑색 무궤도 전차가 정류장에 정차하기 직전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평양의 이국적인 전차 문화와 역사

필자가 평양 시내 대로변에 다니는 전차들의 모습들을 보노라면 마치 일곱 빛깔 무지개 색상처럼 다양하고 원색적이었으며 게다가 전동차의 디자인과 모델, 문양들도 워낙 다양해서 그야말로 평양시내 전체가 마치 전차 박물관처럼 보였다. 이처럼 이국적이고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는 전차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평양 기차박물관 참관을 바탕으로 잠시 알아보았다.

조선 땅에 운행되었던 전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23년 일제에 의해 개통된 전차가 그 모태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전쟁 이전에는 서울, 부산, 평양 등 조선 3대 도시들이 전차를 가장 먼저 도입해 운영했다. 그 후 이 전차들은 해방 후에도 계속해서 운행되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차 시설물들과 전동차량, 전용도로 등이 모두 파괴되었다. 그 후 남측은 전후 복구시기를 거쳐 이전처럼 그대로 운행을 하였다.

그러나 남측과 달리 평양은 파괴된 전차 시설들을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폐지되었으나 한 동안 서울과 부산의 전차운행은 전쟁 후에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60년대 들어 자동차가 대중화되자 마침내 모두 폐지되어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에 없었다. 그리고 서울, 부산등 대도시는 자동차 증가와 더불어 지하철 시대로 전환되었다.

그 후 평양의 전차는 다시 전후 복구 시대를 거쳐 1960년도가 되자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지원으로 무궤도 전차가 도입되면서 다시 해방 이전처럼 전차 시대가 개막됐고 1961년 9월경에는 첫 무궤도 전차를 생산하기도 했다. 남측과는 달리 북조선에서는 일반인이 자동차를 소유하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필요에 의해 다시 전차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점점 증가하는 인구대비에 맞춰 그 대안으로 새로운 교통수단 건설이 시급하자 노면전차(궤도 전차)의 건설을 시작해 마침내 1991년 개통된 것이다. 그 후 궤도 전차는 2008년경에 대대적인 노반 보수를 끝내며 새 단장을 했고 이때 선로를 중앙에서 인도 쪽으로 이전하는 대공사를 단행했다.

결국 트롤리버스 노선이 포화상태가 되자 평양시 교통당국에서는 마지막 수단으로 궤도 전차 도입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궤도 전차를 노면전차라고도 부르는데 1991년에 들어서면서 궤도 전차가 최초로 운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로서 평양은 전기로 구동되는 트롤리버스와 궤도 전차 그리고 지하철이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일반 시내버스들중에는 전차 노선에 공백이 있는 구간에 대체버스로 투입돼 운행되기도 했다.

비근한 예로 평양역- 선교간의 2.6km 구간이 전격 폐지되며 만경대-평양역을 잇는 구간과 선교-성신을 잇는 구간의 노선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분리되는 사태가 발생할 때 그 대안책으로 선교-평양역 사이에 대체버스가 투입돼 운행됐다.

▲ 만경대-평양역 구간을 잇는 10.3km 구간의 무궤도 전차. 원래는 궤도 전차 구간이었으 무궤도로 변경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산뜻한 디자인으로 단장한 굴절차량 형태의 무궤도 전차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4월의 봄 행사를 알리는 청색 깃발들이 날리는 정류소 앞에 정차한 무궤도 전차를 이용하는 승객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송산-송신구간 궤도 전차 노선표.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서평양역-평양역 노선에 운행 중인 천리마 091형 무궤도 전차가 만수대 인근 정류소에 정차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필자가 련못동을 다녀오는 도로에서 찍은 최신형 무궤도 전차. 현재 평양에는 15종류 이상의 무궤도 전차 차량들이 운행 중이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아침시간에 승객을 가득 태운 무궤도 전차가 시내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무궤도 전차가 로동신문사 앞 교차로에 진입해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전차가 가장 한가한 시간은 오후 2시-4시 사이라고 한다. 빈자리가 많이 보이는 가운데 궤도 전차가 평양시내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무사고 운전 5만km 달성 시마다 차 외벽에 붉은 별 표시

필자가 가끔 궤도 전차가 지날 때마다 유심히 쳐다보며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차 전동차 양 측면에 그려진 빨간색 별 표시 때문이었다. 마치 장군들 계급장처럼 일렬로 나란히 그려져 있는 별들은 모든 차량마다 각각 별 숫자가 달랐다. 어떤 차량에는 5개, 7개, 어떤 차량에는 10개, 20개, 30개 심지어 어떤 차량에는 50개가 넘기도 했다.

알고 보니 별표는 5만km 무사고 운행을 달성할 때마다 평양시 당국에서 수여하는 명예스런 모범운전 표시라고 한다. 매번 목표가 달성될 때마다 평양시 당국에서 직접 별표를 하나씩 더 그려준다고 한다. 어떤 차량에 7개의 별표시가 그려졌다면 이 차량은 35만km 무사고 운행을 한 것이다. 그러나 무궤도 전차노선은 궤도 전차보다 역사가 더 오래됐으나 별 표시가 없다.

1963년~1967년 사이 평양 무궤도전차공장에서 많은 전동차들이 생산되었는데 그 당시 전차가 지금도 유일하게 남아서 운행되고 있었는데 가장 오래된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70형’인데 현재 차량번호 903호인 이 차량 1대만 남아서 상징적으로 운행 중이었다. 이미 주행거리가 300만 km을 아득히 넘은 상태였으나 무궤도는 별 표시 제도가 없다고 한다.

또한 필자가 알아보니 예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궤도 전차 탑승이 pq게 허용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관광 패키지에 포함시기도 해서 제한된 자유롭게 이용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해외동포나 외국인이 전차를 타고 싶을 경우에는 1호선의 만경대-평양역 구간인 10.3km 거리에 한정해서 승차가 가능하다.

1호선 구간 중에서도 관광객들이 탑승하는 전차는 일반 인민들이 이용하는 영업용이 아닌 전세용 전차만 이용하도록 배려해준다. 이 전차는 탑승 인원에 구애받지 않고 운행을 해준다. 전차 탑승 의사를 밝힌 해외동포나 외국인이 공식적으로 궤도 전차를 시승할 수 있는 유일한 노선이 1호선의 만경대-평양역 구간이며 전세로 이용 가능하며, 단 한명이 신청해도 운행을 해준다.

▲ 모두 51개의 무사고 별을 달은 궤도 전차 모습. 5만 Km 무사고를 달성했을 때 1개의 별을 달아주기 때문에 이 차량은 무려 255만Km의 무사고 운전을 달성한 차량이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금수산태양궁전만 운행하는 무료 전차 노선
       
필자 일행이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관하기 위해 입구에 방문해보니 그곳은 방문객들을 위한 전용 전차가 셔틀차량처럼 수시로 운행되고 있었다. 예전에 평양 지하철노선 중에 혁신선이 있는데 이 노선은 애초 9개역사가 개설돼 운행 중이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이후에는 락원역과 삼흥역 사이에 있던 광명역이 폐역되고 말았다. 바로 그 광명역이 금수산주석궁에 내리는 유일한 역이었기 때문이다.
 
주석이 부재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보안상 그런 조치를 내린 것 같다. 알려진 대로 주석궁은 서거 이전에는 주석의 관저와 공식집무실이었으며 이 광명역을 통해 주석궁 방문객들이 주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거 후에는 광명역을 곧바로 폐쇄하고 그 대신 3년상을 마친 후인 1996년부터 이른바 ‘금수산노선’을 새로 개설한 것이다. 금수산노선은 궤도 전차 노선이며 운행되는 전차의 전동차들은 모두 스위스산 제품으로 매우 산뜻하고 고풍스런 이미지였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는 조문객들과 여행객들을 위한 별도의 노선을 운행함으로서 이용자들에게 전적으로 교통편의를 제공해주려는 차원이었다. 금수산태양궁전 전용노선인 금수산노선은 삼흥역-금수산태양궁전까지만 왕복 운행되며 1996년 4월 15일에 맞춰 개통됐다.
 
이 노선은 평양의 다른 궤도노선들과는 완전히 다르며, 어느 노선과도 연결되지 않고 독립노선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이용요금은 무료이다. 궤간은 다른 표준궤 노선들과는 달리 1000mm이며 선로 미관이나 객차 미관도 매우 깨끗했다. 평양의 수입 전차들은 주로 체코, 동독 등 구공산권 국가들에서 들여온 것들이지만 이곳 금수산노선의 경우 녹색 바탕에 상부에 연두색 띠를 두르고 있는 고급스런 디자인의 스위스 취리히산 차량들이다.

이 객차들은 1940년대 스위스에서 설계된 스위스 표준형 노면전차 IB형 차량을 취리히에서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 금수산선에서 운행되는 전동차량은 대부분 2량 편성해 운행하고 있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필요에 다라 2+2량으로도 긴급 편성되기도 한다고 했다. (계속)

▲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는 조문객들과 여행객들을 위해 운행 중인 금수산노선 궤도 전차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금수산태양궁전 전차 종착역에 도착한 참배객들이 전차에서 내리자마자 첫 관문인 검색대와
소지품 관리실로 향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금수산태양궁전에 정차하고 있는 금수산노선 전용 궤도 전차 모습. 스위스산이며 2량 혹은
필요시 2+2량으로도 운행된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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