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인민들과 뗄 수 없는 독특한 자전거 문화
      
필자에게 있어 평양은 한 겨울이든, 봄기운이 완연한 따듯한 날씨든, 아니면 한 여름 폭염이든 1년 365일 언제나 자전거 바람이 불고 있는 도시로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출퇴근 시뿐 아니라 하루 중 언제든지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갈수록 눈에 많이 띄었고 최근에는 여성들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자전거 운전자의 이동수단뿐 아니라 작은 짐들을 실어 나르는 운반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자전거 이용자가 점점 늘면서 평양에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겼으며, 자전거 임대소와 자전거를 맡아 보관하는 보관소 시설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심지어 대동강 시민공원에는 웬일인지 자전거 주차료를 500원을 내야 할 정도로 비싼 요금을 받고 있었으며 시내 한복판에서는 자동차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자전거 운전자가 관련 법규를 위반하면 교통보안원에게 범칙금을 발부 받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교통규칙은 남측과 대략 비슷하지만, 평소 자전거 운전자에 대한 교통규칙이 엄격해서 그러지 자전거 운전자들은 의외로 준법정신이 강한 듯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교통보안원에게 여지없이 범칙금 고지서를 즉석에서 발부 받기 때문에 나도 입장이 바뀌면 그럴 것 같다. 이처럼 자전거 보유자나 운전자들에 대한 질서와 법규가 엄격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전거가 많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자전거로 인한 범법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와 같이 평양뿐 아니라 전국에서는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대중교통 수단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서 자전거가 주요 운송 수단으로 대치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식량난으로 인해 인민들이 장사나 상업 활동에 나서면서 자전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후 도시나 농어촌을 막론하고 자전거는 인민들의 생활필수품이자 생계수단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주요품목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 북에서는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자전거가 연간 20만대가 된다고 한다.

이북의 교통수단이라고 해서 중국이나 한국,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전거, 오토바이를 비롯해 자동차, 버스, 택시, 트럭, 지하철, 무궤도전차, 궤도전차, 철도, 선박, 비행기, 직승기(헬리콥터)등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크게 승객을 운반하는 수단과 화물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나뉘는데 그중에서도 사람과 화물을 가장 조화롭게 동시에 운반하는 교통수단은 아마 자전거일 것이다.

자전거는 특별한 탑승 기술도 필요 없고 자동차처럼 연료비도 들지 않는다. 또한 자전거를 소유하는 것은 자동차처럼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남녀노유 할 것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다. 서방세계에서도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일종이지만 대개 운동이나 여가용으로 주로 활용되듯이 북측도 머지않아 운동이나 여가용으로 활용될 날이 급속도로 다가올 것으로 예측된다.

북에서는 누구나 자전거 갖기를 원하지만 가격이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라서 일반 가정의 절반 정도 가구가 보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평양시내는 각종 대중교통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어서 자전거 없이도 크게 불편함이 없지만 지방에서는 단거리, 장거리 이동에 자전거가 필수품이다.

▲ 자전거로 출근하는 평양시민들의 활기찬 모습. 대동강변 너머 멀리 주체탑이 보인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대동강변 자전거 전용 도로를 달리는 출근 길의 평양시민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황해북도의 가을 들녘을 달리는 농부의 자전거. 앞 뒤 짐칸에는 평균 용량이 초과되어 보인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시내 만수대 인근 아파트단지 부근에 주차된 자전거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 보통강 인도를 달리는 중년의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외출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자전거 면허증과 번호판 제도를 시행하게 된 까닭
     
필자는 틈나는 대로 이북의 자전거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 만나는 관리들과 안내원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붙들고 이것저것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평양과 각 지역의 자전거가 대중화된 시기는 김일성 주석 서거 후인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한다. 구체적인 발단은 함경북도 청진과 강원도 원산 등지에서 일제 중고 자전거들이 대거 유입되면서부터라고 한다. 당시 일본을 오가던 북측 기업인들과 무역선원들, 무역업자들이 중고 자전거를 일본에서 저렴한 가격대에 대량으로 사들여와 시장에 내다 팔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로 인해 평양은 물론 지방도시와 농촌지역의 시장에도 자전거 전용 매장이 생길 정도로 자전거가 전국에 급속히 보급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무거운 짐이나 곡식을 운반하는 운반수단으로 자전거가 가장 적절했기 때문에 요긴했고, 연료조달 등의 문제로 인해 대중교통들이 제 때 역할을 못하게 되자 자전거는 더욱 요긴했던 것이다. 아울러 자전거로 인해 장사도 활발해지는 효과가 있고 개인이 보유한 기동력 있는 교통수단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당시는 마치 ‘교통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자전거가 인민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각국 시민들의 자전거 이용률을 통계적으로 볼 때 일본은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이다. 그러다보니 길거리에 방치된 자전거와 불법 주차로 인해 압류 당해 당국에 의해 보관중인 자전거가 엄청 많이 발생하게 됐는데 그 숫자가 한해에만 무려 300만대 이상이 됐다고 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일본 당국에 의해 고철로 팔리고, 나머지 일부가 북으로 유입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워낙 수입된 자전거 수량이 많다보니 평양은 물론 지방 각 도시마다 자전거 보급이 활화산처럼 번지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교통법규상 자전거를 아무 데나 세워두면 안되고 지정된 장소에서만 자전거를 주차할 수가 있다고 한다. 불법주차를 하면 지역의 교통 당국에서 무조건 압류해 가져다가 보관소에 비치해두고 주인이 찾아갈 때 까지 메타기 요금부과 방식으로 압류된 시간부터 찾아가는 시간까지 카운트되어 요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또한 일본은 평소에도 자전거 값이 워낙 저렴하다보니 당국이 압수한 자신의 자전거를 찾아가려면 보관료 지불과 찾으러가는 시간과 노력등에 대한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고 새 제품을 산다고 한다.

특히 자전거를 생산하는 일본기업들이 중국이나 제3국에서 조립해 제작하기 때문에 값이 아주 싸고 구매하기가 쉬워지다 보니 당시 일본인들은 자전거를 그냥 쓰다가 버리는 생활용품 정도로 여길 정도였다. 그래서 당국은 자신들이 압수해서 보관한 자전거들이 포화상태가 되면 처리할 방법이 없다보니 중개업자에게 헐값으로 팔게 되고 결국 그 자전거들은 업자들에 의해 마지막으로 거래수단으로 이북으로 수출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인민들이 사용하는 자전거들이 매우 많아지다 보니 돈을 받고 자전거를 맡아 주는 보관소도 생겼으며 자전거를 도색해 주는 도색점포와 수리해주는 수리점포들도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평양시 사동구역에 있는 장마당에는 일제 중고 자전거 판매시장이 밀집돼 있어 자전거를 사고파는 남녀 상인들과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사동구역은 평양에서도 발전이 더딘 낙후된 지역이라 높은 건물도 없고 작은 규모의 아파트들만 간혹 드문드문 있는 정도이고 주로 거주자들의 신분이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이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짐을 싣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인민들, 혹은 자전거 펑크를  때우는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역이다.

한편 일제 중고 자전거들이 인기를 끌자 좀도둑들은 자전거를 훔쳐서 돈을 벌려고 하고 반면 자전거 주인들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갖가지 묘책을 짠다고 한다. 그래서 인민들 사이에서는 자전거가 하나의 재산이다 보니 “자전거와 이불 속에서 같이 잔다”고 할 정도의 농담까지 생겼다고 한다. 집 대문 밖에 세우면 도둑을 맞을 수 있으니 집안에 보관하다보니 이불 속에서 같이 잘 정도로 귀중한 재산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아무튼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일제 중고 자전거가 미화로 약 50달러, 품질이 좋은 고급은 미화 100달러 전후에 거래됐으니 도둑들이 욕심을 낼만 했고 주인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시 세간에는 일제 중고 자전거는 인민들의 재산목록 1호이자 동시에 도난목록 1호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자전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면서 자전거로 인한 도난범죄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결국 정부 당국 차원에서 대책을 세운 것이 바로 자전거 소유자에 대한 등록제도였다. 1997년 평양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3-4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자전거 면허증과 번호판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전거 면허증 미소지자는 교통위반 시에 벌금이 부과됐고 별도의 자전거 운행 도로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범칙금이 부과되었다. 필자가  자전거 번호판을 유심히 바라보니 모든 자전거마다 앞과 뒤편에 빨강색 둥근 원판에 소유자의 등록 고유번호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으로 일본이 해산물을 비롯해 북에서 생산한 모든 물품들에 대한 수입을 전면금지하면서 북측 무역선이 일본에 입항하지 못하게 되며 중고 자전거의 반입도 중단되었다. 그후 계속 늘어나는 자전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당국은 중국과 합영으로 자전거 공장을 설립해 직접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통제하던 여성의 자전거 이용을 전격 허용하기도 했다.

그 이후 점차 자전거 면허제도가 완화되고 2018년 현재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자전거를 많이 보급하는 정책을 세우면서 자전거 면허증과 번호판 제도가 없어졌다.

▲ 필자가 지나가는 자전거를 세워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질문하자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평양시민.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달리는 자전거 운전자를 세우고 필자일행을 위해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흔쾌히 응해주며 카메라 작동법을 익히는 시민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달리는 자전거 운전자를 세우고 필자일행을 위해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흔쾌히 응해주며 카메라 셧터를 누르고 있는 시민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아침 출근길의 평양시민이 교통보안원의 단속에 걸려 범칙금을 발부받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자전거 통행금지판. 금지지역에서 자전거를 타면 운전자는 범칙금을 발부받는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아침산책길에 나선 필자 앞에 자전거를 끌고 가는 시민이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잠시 후 이 자전거 주인은 교통보안원에게 범칙금을 발급 받았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 외곽지역인 사동구역 길가에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서해갑문으로 가는 어촌지역에도 자전거는 인민들에게 매우 요긴한 이동수단이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조중합영회사 자전거공장 제품들이 온통 평양거리를 누비다
     
평양의 각 거리마다 자전거 전용도로들이 개통되면서 자전거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평양의 조중평진자전거합영회사(朝中平津自行车合营会社)에서 생산하는 다량의 자전거들이 평양 시내를 온통 물결치고 있어 앞으로 시민들의 자전거 사용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였다. 이는 마치 중국산 비야디(BYD) 택시가 평양시내를 온통 점령하듯 평진자전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 결과 조중평진합영 자전거공장의 시장 점유율은 이미 70%를 초과했다고 한다. 과거 고난의 행군시절부터 도입된 일제 중고 자전거들은 점차 사라지고 2018년 현재 새로운 제품의 자국산 자전거들로 교체되고 있는 과도기에 있었다.

이렇게 된 까닭은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함께 일본도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일제 중고 자전거의 수입이 크게 줄어들자 2005년부터 조중합작의 평진자전거합영회사가 설립되며 자체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대표 브랜드는 ‘모란봉’, ‘질풍’ 등의 이름을 지닌 제품들이며 하루 생산량이 500~800대, 연간 판매량이 3만~4만대를 넘는다고 한다. 자전거 생산공장은 평진 외에도 여러 개가 또 있다.

한편 새로운 자전거 생산뿐 아니라 다양하고 현대적인 첨단기능의 자전거들이 생산되면서 급기야 전기 자전거까지 개발되어 평양시내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후 전기 자전거는 평양을 비롯해 전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으로 청소년, 노약자나 여성들에게도 매우 인기라고 한다. 또한 새로운 자전거 대여점이 생기면서 전기자전거 사용자들도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시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기다
      
한편 자체 생산하는 자전거들이 봇물처럼 출시되고 전기 자전거도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마침내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생겨났다. 평양시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긴 시점은 필자가 10.4선언 5주년 통일토론회 참가차 북을 방문할 무렵이었다. 필자 일행이 평양에 도착하기 한 달 전인 2012년 9월 초경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로 만든 목적은 여러 가지였다. 시민들이 자전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 결과로 보여졌으며 당시로서는 차도와 인도에 자전거 도로가 따로 분리돼 정해진 것은 매우 혁신적인 조치로 보였다.

또한 자전거 전용도로는 아니어도 자전거를 타기에 편리한 도로망이 도시 전체에서 갖춰있음을 볼 수 있었으며 요즘 평양에서는 과거와 달리 여성들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는 평양이 세계적인 트렌드와 발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또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새로 만든 것은 평양에서 자동차 통행량이 부쩍 증가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예전에 자동차가 많지 않을 때는 자전거들이 차들과 뒤섞여 도로 한복판을 달렸으나 근래에는 자동차 통행이 많아지면서 자전거 이용자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별도의 전용도로가 생긴 것이다.

한편 전용도로가 생긴 또 다른 목적은 평양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적절한 운동을 권장하고 복잡한 교통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공해 없는 맑은 환경을 보장하고 시민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데 일조하기 위한 의도도 엿 보였다. 그동안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 노선이 있는 곳에서는 많은 경우 인도(걸음길)를, 그렇지 않은 데서는 차도(찻길)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해왔는데 이제는 그곳들도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해 흰색으로 표지선을 그었다.

뿐만 아니라 전용도로와 함께 자전거 전용 주차장도 생겼다. 평양과 여러 지방도시, 농어촌에도 자전거 주차장이 늘어나고 있으며 당국에서는 자전거 이용에 관한 규정과 상식에 대해 각 지역 당국이 직접 방송이나 책자로 홍보하며 인민들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아침 산책을 위해 대동강변을 걷다보면 체육공원이 여러 곳 등장한다. 그런데 이 체육공원과 유원지를 이용하려면 입장료가 어른은 20원, 어린이는 10원이며 자전거 주차비는 1시간당 500원이다. 버스비나 전차, 지하철에 비해 자전거 주차비가 매우 비싼 편이었다.

▲ 하늘색이 칠해진 평양시내 자전거 전용도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녹색이 칠해진 평양시내 자전거 전용도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대동강 체육공원 모습. 이곳의 자전거 주차료는 시간당 500원으로 메우 비싼 편이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대동강 체육공원내 입장료를 내는 요금계산소. 자전거 주차비가 시간당 500원이라고 적혀있고, 입장료가 성인은 20원, 아동은 10원이라고 적혀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평양시내 다섯 곳에 자전거 대여 정류소 운영 중
    
뿐만 아니라 현재 평양에 자전거 공유서비스도 실시되고 있다. 2017년 중순부터 평양에 자전거 대여소 설치가 시작되어 8월 첫주부터  본격적으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차원에서 가동되다가 올 2018년 1월부터 정식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전거 공유 시스템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이 대여소들은 평양 시민이나 외국 방문객 누구든지 시내 곳곳에 설치된 자전거 정류소에서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예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이 공유 자전거의 이름은 ‘려명(Ryomyong)’이며 녹색과 노란색등으로 심플하게 디자인돼 있다. 대여소는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필요한 이용자들에게는 매우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평양에서 이미 자전거를 보유해 통근용으로 사용하는 시민들이 많지만 아직도 자전거가 필요한 소수와 외국 여행객들을 위해 이런 대여소를 운영하는 듯했다.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서 이런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와 같은 대여 시스템은 지나가는 지역 거주자들이나 외국 여행객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여소는 평양 시내 가장 중심 지구에 두 군데, 광복로에 세 군데 등 모두 다섯 군데에 설치됐다. 다섯 곳의 임대소 위치를 살펴보면 만경대구역 팔골1동(광복지구상업중심 앞), 칠골 3동(칠골3식료품상점 앞), 갈림길 2동(4월15일소년백화원 옆), 금성 2동(만경대학생소년궁전 옆), 축전 2동(평양교예극장 앞)이다. 평양시내 신도시 개발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광복거리에서 1킬로미터 거리마다 다섯 곳의 자전거 대여소가 즐지어 시범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작년 8월 첫 주부터 대여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평양 시민들은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연말을 기점으로 자전거 공유 정류소 설치공사와 시범운영 기간이 끝났고 2018년 1월부터 모든 대여소가 인기리에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시민권자들의 방북금지를 선포한 트럼프에 의해 작년 가을부터 발목이 잡힌 필자는 평양 과기대교수로 활동하는 지인을 통해 대여 자전거에 대한 자료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그의 전언에 의하면 작년 8월 1일부터 연말까지 5개월간은 임시로 시범운영 기간이었으며 올 2018년 1월 중순(15일)부터 부족했던 보완점을 마무리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한 후 본격적으로 자전거 임대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대여봉사 시간은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이며 쉬는 날 없이 1년 365일 대여 봉사를 한다고 했다.

자전거는 려명자전거카드로 임대 받을 수 있으며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미리 발급받은 카드신청서를 가지고 평양자전거임대관리소에 가서 ‘자전거 성원’을 뜻하는 ‘전성카드’로 자전거 카드를 구입한 후에 카드에 요금을 충전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된다. 자전거 카드신청서는 평양자전거임대관리소 산하에 해당 5곳의 임대소들에서 배포하고 작성하여 제출하면 된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자신이 편리하게 찾아갈 임대소를 아무 곳이나 방문해 사용한 후에 다시 아무 곳이나 방문해서 자전거를 반환하면 된다.

특히 임대관리소에서 발급받은 카드를 자신이 임대하고자하는 지점에 설치된 카드 인식기 센서에 카드를 대서 인식시키고 자전거 주차대에 설치된 번호입력기에 고유암호를 입력시켜 자전거를 꺼낸 다음 필요한 시간만큼 이용하고 편리한 임대소에 반환하면 되며 이때 요금을  카드로 자동 결제하면 된다. 분당 요금은 40원이고 시간당 요금은 3천원이어서 저렴하지는 않은 편이다.

대여 서비스가 아주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자전거 정류소에는 담당자가 별도로 근무하는 유인 부스가 있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으며 특히 자전거를 빌리거나 반납할 때, 자전거를 세우거나 뺄 때는 유인 부스에 있는 근무자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 확인을 받으면 친절하게 도와준다.

결재할 때는 자전거 전용 적립카드, 내나라 직불카드로 결재하거나 자신의 신분증과 연동된 카드나 나래전자 직불카드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결재를 마친 이용자가 이 자전거를 보관소 거치대에 꺼내려면 근무자에게 부여받은 특정 비밀 번호를 입력해야 자전거를 꺼내 쓸 수 있고 반납 할 때도 같은 방법이다. 이는 최근 한국, 중국, 미국등지에서 큰 인기를 끄는 공유 자전거 방식을 평양에서 도입한듯했으며 특히 북과 혈맹국인 중국의 교통문화 추이를 세심히 관찰해 중국의 방식을 직접적으로 참고한 듯 보였다.

▲ 평양시 자전거 임대소 유인 부스. 이곳에서 신청서를 발급받아 제출하고 절차를 밟으면 자전거를 임대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만경대구역 팔골1동(광복지구상업중심 앞)에 설치된 자전거 임대소.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칠골3동(칠골3식료품상점 앞)에 설치된 자전거 임대소.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갈림길 2동(4월15일소년백화원 옆)에 설치된 자전거 임대소.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금성 2동(만경대학생소년궁전 옆)에 설치된 자전거 임대소에 보관중인 려명자전거.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평양시내를 활보하는 ‘대한민국’
    
나는 어느 날 차를 타고 평양시내를 지나고 있었는데 도로에 평범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연세가 지긋한 중년의 시민을 창밖으로 목격했다. 그런데 자전거가 휘청거릴 정도로 무거워 보이는 누런색의 큼직한 포대가 짐칸에 실려 있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녹색으로 “대한민국” 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미 쌀포대 자루였던 것이다. 놀란 마음에 옆에 안내원에게 물으니 빙그레 웃으면서 “남조선(대한민국) 쌀 포대는 질이 좋기 때문에 주민들이 많이 사용합니다”라며 별일 아닌 듯 천연덕스럽게 답해 주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대한민국 쌀 포대는 질이 좋기 때문에 그것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돈을 주고 사서 쓰거나 여러 개를 짜집기해서 방수포로 만들어 요긴하게 사용한다고 했다. 또한 40kg 짜리 누런색 대한민국 쌀포대는 북에서 인민들이 곡식이나 물건을 담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운반용기라고 한다.

평양 한복판에 “대한민국”이 거침없이 달려도 아무런 제재나 반감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의 민족, 같은 피를 나눈 동족으로서 남측을 대하는 북 인민들의 여유와 포용, 관용심을 느꼈다. 그러나 반대로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쓰인 글자가 활보하고 다닌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를 생각해봤다.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서울 하늘 아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평양 하늘 아래는 ‘대한민국’이 활보하고 다녀야 진짜 통일인 것이다. 비록 자전거에 실려 평양시내를 활보하는 “대한민국”이었으나 이것마저 북 인민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주었다. 남쪽도 하루빨리 북에 대해 관용과 포용 그리고 내재적 접근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 평양시민이 자전거 짐칸에 짐을 싣고 대한민국 정부미 자루로 덮고 묶은 후 대동강 다리를 건너는 장면.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연세가 지긋한 평양시민이  자전거 짐칸에 짐을 가득실고 대동강 다리 진입로 초입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자전거에 엄청난 분량의 화물을 실고 평양 청춘거리 교차로 인근을 지나는 자전거 운전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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