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민 / 새로하나 집행위원

 

4월 27일 3차 남북 정상회담, 5월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의 ‘종전’ 선언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지난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4항에서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남쪽의 친미보수정권이 등장하고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강화하며 북이 이에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종전선언까지 가는 길도 순탄하지 않지만, ‘종전’이 선언으로 그친다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가 오는가? 그런 의미에서 종전조치는 평화조약으로 완결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싶다.
 
첫째, 종전조치가 불가역적인 효력을 지니려면 국가 간의 ‘평화조약’이어야 한다. 북은 체제의 특성상 정부 간 협정이라도 불가역적인 효력을 가지지만, 남과 미국의 경우 정권이 교체되면 정부 간 협정은 언제든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남의 역대 정부와 사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의 법적 효력을 부정해왔다.
 
1994년 클린턴 민주당 정부의 북미 제네바 합의는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다. 클린턴 정부는 2000년 10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의 공동콤뮤니케’를 합의하였으나 2001년에 들어선 공화당의 부시 정부는 이 합의를 부정하였다. 공화당의 트럼프 정부는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쿠바와의 관계정상화 합의, 이란과의 핵 합의를 번복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2007년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평화조약(Treaty)을 언급하였는데, 미국 헌법에 따르면, 조약은 상원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조약의 경우 하원의 동의가 강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약체결 이후 하원이 조약 집행에 필요한 법률 제정이나 예산 지출에 동의해 주지 않아 조약이 유명무실화되는 경우가 있었다.
 
만약 종전조치가 의회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에 의한다면 일반적인 법률제정 절차에 따르므로 의회가 대통령에게 협상권한을 부여하고 의회는 그 결과를 사후에 승인하게 된다. 반면에 순수한 대통령 행정협정이라면 의회의 개입이 없으므로 협정이 유효하더라도 나중에 의회가 필요한 법률 제정이나 예산 지출을 거부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종전조치는 상하원 모두의 동의를 받는 방식에 따라야 한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다. 북은 남북 기본합의서를 최고인민회의에서 동의하였지만 남은 국회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남의 경우, 남북합의서는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한 약속이므로 정부 간 협정이라도 헌법에 따라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된다. 다만, 새로운 정부가 정부 간 협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에 대한 국회의 통제가 헌법에 명문화되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 국회가 강제로 개입할 수 없었다.
 
따라서 종전조치는 처음부터 정부뿐만 아니라 의회가 국가 간의 약속으로 그 구속력을 보장하는 조약의 방식에 따라야 한다. 지금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를 강요하지만, 자신의 약속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임을 확실히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는 정부가 바뀌더라도 합의를 번복하지 않는다는 국가 간의 약속으로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호혜적이고 단계적인 방식, 즉 ‘말에는 말, 행동에는 행동의 방식’이 남과 미국 정부의 변덕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안전장치임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종전조치는 남북의 내전과 북미의 국제전을 종식시키는 베트남 식 ‘평화’조약이어야 한다. 베트남은 1973년 ‘파리협정’(베트남 평화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북베트남(월맹)과 남베트남(월남)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1973년 1월 27일 베트남에서의 전쟁종결과 평화회복에 관한 파리협정이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 4자간에 체결됐다. 일반적으로 국제전을 종식시킬 때는 일방이 완전히 승리하지 않는 한 평화조약은 당사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쌍방 간에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을 통제하는 균형 장치를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남과 북의 내전의 성격도 가미된 한국전쟁의 경우,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식은 남과 북, 당사자들이 독립된 국가들로서 영속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국가성을 해소하여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것, 즉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조약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남과 북의 내전과 미국, 중국이 개입한 국제전의 성격을 지니는 1950년 코리아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조약은 외세가 개입한 국제전의 종식과 함께 내전의 원인이었던 분단을 종식시키는 방향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평화조약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먼저 남북 간, 북미 간 불가침이 확약되어야 한다. 여기서 북미 불가침은 국제전의 종식으로서 영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남북의 불가침은 평화통일이 완성될 때까지 쌍방이 지켜야 할 시한부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6.15공동선언 2항의 연합방 통일국가의 수립과 발전은 남과 북의 상호 불가침 약속이 잘 이행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칙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다시는 코리아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을 약속해야 한다. 베트남의 평화협정도 제5조에서 미군철수를, 제4조에서 월남에 대한 군사적 개입 중단을, 제22조에서 베트남에 대한 내정간섭 금지를 명시하였다.
 
베트남 전쟁이나 코리아 전쟁이나 모든 내전에 있어 외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비극이 그토록 확대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족문제에 외세가 개입하거나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은 민족 학살행위에 다름없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한 자결권을 인정하고 통일 과정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베트남 평화협정 역시 제1조에서 민족자결권과 주권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고, 특히 제15조에서 외세의 개입이 없는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보장하였다.
 
일부 보수층의 우려와 다르게 베트남 식 평화조약은 한반도 공산화전략이 될 수 없다.
 
남북은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체제를 존중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하였으므로 평화협정 이후 내전으로 치달은 베트남과 다르다. 대한민국은 비록 미국의 신탁 아래 건국되었고 오랜 기간 민주적 정통성이 결여되어 왔으나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적 정통성을 확립하여왔다. 따라서 미국의 괴뢰정부에 불과한 남베트남의 패망은 우리 실정과 거리가 멀다.
 
실제로 베트남 평화협정의 조인 당사자에는 친미 남베트남 정부뿐만 아니라 남베트남의 임시혁명정부가 포함되었는데, 이는 남베트남 자체가 그 당시 내전 상태로 국가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였음을 보여준다. 그 당시 월남 정부는 베트남 민족이 인정하지 않았던, 프랑스를 이은 미국에 의한 꼭두각시 정권이었기 때문에 패망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등 외세에 의존하는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나 국민에 의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난 남북합의 내용에 비추어 북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인정하고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넘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통일을 지향하기 때문에 패망의 길을 걸은 월남에 비유할 수 없다.
 
더구나 현재 대한민국은 높은 경제수준과 강력한 국방력, 성숙한 시민의식을 지니고 있어 북이 군사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남북 베트남과 다르게 팽팽한 군사적 균형이 유지되고 있기에 어느 일방도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하여 민족공멸을 자초하면서까지 통일을 위한 전면전을 감행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종전선언은 법적 효력을 갖춘 평화조약으로 이어져야 하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입각한 연합방 통일을 지지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게 바람직하다.

(추가-9일 오전 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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