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 / 종주대원

일시 : 2018년 3월 11일 (일요일)
구간 : 지기재~신의터재~무지개산~윤지미산~화령재
거리 및 산행시간 : 15.6Km(접속구간 없음), 7시간(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 인원 : 12명(초등학생 3명)


“대간 길에 이런 길이 있다니”

▲ 신의터재에서 단체사진. 뒤 표지판에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3월 11일, 백두대간 21구간을 탔다. 다음 달이면 1년이 된다. 전체 산행 중 1/3 정도 탔다는 얘기다. 백두대간을 타기 전에는 지리산을 일 년에 한두 번 갔었다. 당연히 지리산이 최고인 줄 알았다. 누가 지어냈는지 ‘세상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지리산을 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간을 타면서는 바뀌었다. ‘백두대간을 탄 사람과 타지 않은 사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이번 산행 코스는 지기재~신의터재~무지개산~윤지미산~화령재이다. 전체 15.6Km,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해서 8시간으로 잡았다. 이 구간은 추풍령에서 시작된 중화지구의 마지막 구간이다. 결론부터 밝힌다면 들머리인 지기재를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해 날머리인 화령재에 오후 4시 30분에 도착했다. 모두 걸린 시간은 7시간. 예상시간보다 1시간을 앞당겼다. 물론 빨리 가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1년 정도 타니 대원들의 산행 솜씨가 발전한 것도 자랑이다. 게다가 산행길도 우리의 속도를 도왔다. 한마디로 난이도가 무척 쉬웠다.

▲  능선 길옆 양지 바른 곳에 무덤들이 있어 대원들은 휴식을 취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야트막한 야산 10여 개를 넘으면 됐다. 산행은 주로 능선으로 이어졌다. 능선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니 임도도 몇 차례 건넜다. 임도와 만난다는 건 산이 낮다는 것이다. 능선을 타니 좌우로 마을과 밭이 보이고 조금 멀리 높은 산들이 지나갔다. 특히 낮은 산만을 연이어 탔다는 건 우리가 지나는 길에 자주 마주친 무덤들이 말해준다. 우리가 지나는 능선 길옆 양지 바른 곳에 무덤들이 꼭 있었다. 가끔 대간길이 아니라 소풍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른 봄에 동산을 걷는 것 말이다. 누군가 말했다. “백두대간 길에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네.”

성큼 키가 커진 아이들

오전 6시 40분. 사당역에서 우리가 출발할 버스에 오르니 벌써 다 와 있다. 모두 12명. 원래는 15명이 신청했는데 상가집에 가거니 바쁜 일에 밀려 막판에 3명이 철회했다. 그래도 12명. 요사이 10명을 못 넘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나마 넘었다. 그 덕택은 두 가족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이기윤-장소영-이가빈-이가희 식구와 조한덕-민성 부자가 참가했다.

▲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조민성 군.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이 된 이가희와 이가빈 양.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오랜만에 초등학생들이 왔다. 지난해에는 자주 왔는데 올해는 처음이니, 그새 한 살을 더 먹으면서 학년도 높아졌다. 민성, 가희, 가빈이가 각각 3, 4, 5학년에서 4, 5, 6학년으로 올랐다. 겨울을 나니 가빈이와 가희는 키가 훌쩍 컸다. 가빈이는 엄마와 키가 비슷하다. 아이들은 잠깐 한눈 판 사이에도 키가 크는가 보다. 근데 민성이는 키보다 옆으로 통통해졌다. 그러자 누군가 “민성이는 이제부터 크려는가 보다. 통통해지고 나서 키가 크는 법이니까” 하고 덕담을 해준다. 민성이가 그 말을 듣고 활짝 웃는다.

출발, 지기재

▲ 이번 산행은 야트막한 야산 10여 개를 넘으면 됐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사당역에서 오전 6시 40분에 출발해 들머리인 지기재에 9시 30분에 도착했으니 세 시간이 채 못 걸린 셈이다. 운전기사가 지기재 거의 다 와서 알바를 했으니 실은 운행시간을 더 줄였을 수도 있었다. 산행 초기 지리산 구간은 운행시간이 4시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남도에서부터 북상을 하고 올라오니 점점 서울과 가까워져 운행시간이 줄어든다.

지기재는 260m로,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 소재로 지기재동과 대포리의 경계지역이다. 이제는 백두대간 해설사 반열에 오른 이지련 대원이 사전에 배포한 자료에 의하면, 지기재는 옛날에 도적이 자주 출몰하였다 해서 적기재라 하였다고 한다. 901번 도로가 지난다. 참고로 이 글에 나오는 산행정보는 주로 이지련 대원이 조사한 자료에 근거했음을 밝힌다.

▲ 곳곳에 아직 잔설이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꽃은 못봤지만 싹들은 보였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보통 때처럼 ‘지기재’라 쓰인 들머리 표지판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산행에 오른다. 처음부터 야트막한 동산(?)이 보이자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번 산행에서는 산수유나 개나리, 진달래꽃이 핀 걸 볼 줄 알았다. 2주 전인 지난 2월 말 20구간 산행 때 나뭇가지에 싹이 움트는 걸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꽃망울만 눈에 들어왔지 꽃은 볼 수 없었다. 아직 잔설(殘雪)이 있을 정도이니 화신(花信)은 시기상조일 터였다. 아쉽지만 땅 속에서 움 튼 싹들은 봤다. 1시간 30분쯤 탔을까? ‘신의터재’라는 묘한 이름의 고개에 도착했다.

‘분수령’의 의미

신의터재는 다른 고개와는 달리 크고 화려하다. 고개에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고 표지판이 여기저기 있기 때문이다. 표지판만 해도 ‘백두대간 신의터재’란 큰 표석(산림청, 2010)과 작은 ‘신의터재’(상주시, 1996) 표석이 정자가 있는 신의터재 공원 내 있으며, 도로 건너에 ‘신의티’(화동면산악회, 2009)란 조그만 표석이 따로 조성되어 있다. 총 3개의 표석이 있는 것이다.

▲ 산림청이 세운 '신의터재' 큰 표석.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상주시가 세운 중간 크기 '신의터재' 표석.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화동산악회가 세운 '신의티' 작은 표석.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신의터재’란 이름이 궁금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명혼용에 따른 설명문’이 큰 표지판에 적혀 있다. 좀 자세히 나와 있는 다른 표지판에 의하면, “신의터재는 임진왜란 이전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렸던 고개로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장이었던 김준신이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임진년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라 불렸으며, ‘지방의 관리나 귀양중인 옛 벼슬아치들이 나랏님(御)으로부터 승진, 또는 복직 등 좋은 소식(義信)이 오기를 기다리던 고개’였다는 사연이 전해지는 고개”라면서, 이어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민족정기를 말살한다고 ‘어신재’로 개명되었으나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이름을 되찾은 사연 많은 고개”라고 적시되어 있다. 굳이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꺼내지 않더라도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는 건 중요하다.
 

▲ '신의터재' 관련 설명문.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그런데 신의터재는 그 지명의 신기함 외에 의미심장한 게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닌 ‘분수령’이라는 것이다. 몇 개의 표지판에는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 “신의터재는 해발고도 280미터의 고개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고 적혀 있다. 분수령! 역사의 분수령이란 말이 있다. 결정적인 것을 가른다는 뜻일 게다. 그러니까 이곳 신의터재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낙동강이나 금강, 둘 중 한 곳으로 흐르는 운명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대간을 타는 사람들에겐 ‘분수령’이란 말이 낯설지가 않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이 있다.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백두대간이란 민족 성산 백두산에서 남한 내륙 최고봉 지리산까지 강이나 계곡을 건너지 않고 이어진 분수령의 연속된 산줄기인 것이다. 백두대간은 분수령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백두대간을 탄다는 것은 곧 분수령을 탄다는 것이다.

이번 산행에서 화제가 된 두 개의 ‘정상’

이른 새벽에 밥을 먹었으니 산을 타고 1시간여가 지나자 벌써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조한덕 대원은 아까부터 배가 고프다고 투덜거린다. 조 대원은 몸집이 크니 쉬 배가 고플 거다. 그는 배가 고프니 산 타기가 힘들다고 툴툴댄다. 하지만 선두에서 가는 전 대장은 식사는커녕 도무지 쉴 낌새도 없다. 오늘 산행거리가 15킬로가 넘으니 점심은 적어도 반 정도는 가고 나서 하자는 의미다.

▲ 이번 구간은 지난 구간에 비해 이정표가 잘 돼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다행히도 이번 구간은 지난 구간에 비해 이정표가 잘 돼 있다. 지난 20구간은 지명이나 거리와 소요시간은 나와 있지 않고 다만 ‘백두대간 길’이라는 짧은 표지판만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이번 구간에는 수시로 안내판이 나타나 지명과 거리, 시간까지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 대략 어느 지점에선가 오늘 산행구간 중 반을 좀 넘었다고 싶은 지점에서 식사자리를 구했다.

식사시간에는 맛있는 식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산행에서 산을 타거나 잠시 쉴 때, 특히 점심시간에 화제가 된 건 ‘정상’이란 단어였다. 그것도 두 가지였다. 다름 아닌 ‘정상’주와 남북, 북미 ‘정상’회담.

▲ 즐거운 점심시간. 정상주를 마시며 남북, 북미 정상회담 얘기를 나눴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번 산행 전 단톡방에 정상주(頂上酒)를 금지한다는 정부 방침이 나왔다는 소식이 올라와 대원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하던 터였다. 보도에 따르면, 환경부는 자연공원(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 내 음주 금지 구역을 지정했다는 것이다. 즉 자연공원 내 대피소·탐방로·산정상부 등 공원관리청에서 지정하는 장소나 시설에서의 음주 행위가 3월 13일부터 금지되며, 1차 위반 시에는 5만 원, 2차 위반 때부터는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산행한 때는 3월 11일이니 이날은 다행히도(?) 정상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다.

대원들 대부분은 정부 방침에 못마땅해 했다. 산에 올라 땀 흘리고 상쾌한 기분에 막걸리 한 잔 마시는 것도 막는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것이다.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자제하면 된다는 것. 누군가 요즘 유행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정상주 금지 재고’를 올리자고 한다. 대원들은 대개 정상에 오르면 술 한 잔씩은 하기에 모두가 아쉬워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워할 사람은 김성국 대원이 아닌가 싶다. 김성국 대원은 높든 낮든 산 정상에 오르면 “정상주 한잔 합시다”며 노래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회담이다.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측 선수단이 참가하는 것을 계기로 북측에서 특사 일행이 오고 또 남측 특사단이 북측에 가면서, 급작스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는 모두 평화애호주의자들이고 또 열렬히 통일을 바라기 때문에 이 보도 소식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저마다 남북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전문가가 되어 정세를 이야기하고 또 회담의 결과도 예측해본다. 여러 의견이 나오지만 그래도 합의되는 게 하나 있다. 남과 북이 화해하고 대화를 나누니, 우리 종주대가 북측 백두대간 가는 길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윤지미산과 속리산휴게소

▲ 최고봉 윤지미산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뒤돌아본 윤지미산. 내리막길이 아주 가팔랐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어느 산이나 쉽게 가거나 공짜로 날아가는 법은 없다. 낮은 산이라도 한두 번은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비교적 무난하게 전진하던 우리도 이번 구간의 마지막 산이자 가장 높은 봉우리인 윤지미산에선 약간 힘들었다. 올라가는 길은 험하고 다소 길었다. 정상에 오르니 ‘윤지미산’이라 쓰인 정상석이 볼품없이 작고 거칠었다. 글씨체도 서투르다. 그래도 서너 길이 넘는 대형 바위에 멋지게 쓰인 ‘신의터재’란 표식보다 정겹게 느껴졌다.

▲ 날머리 화령재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내리막길은 아주 가팔랐다. 누군가 “맨입으로 가는 산은 없다”고 투덜거린다. 급경사인 내리막길에서 가끔 막히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하산했다. 날머리인 화령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저녁을 먹긴 이르다. 우리는 서울에 가서 우리의 단골집에서 식사와 함께 음주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장비만 잠깐 정리하고 곧바로 버스에 올랐다.

상경하는 길에 첫 휴게소인 속리산휴게소에서 멈췄다. 하산 후 서울에 급히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기에 잠깐 씻기도 할 겸 해서. 화장실에서 끈적거리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대강 씻은 후 바깥으로 나오자 갑자기 휴게소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적이 놀랐다. 휴게소를 둘러싸고 전후좌우로 멋진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선 것이다.

▲ 속리산휴게소를 병풍처럼 감싼 속리산 구간의 여러 봉우리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아, 여기가 속리산휴게소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다음부터 갈 데가 속리산 구역이지. 그러자 아침에 산악대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다음부턴 속리산 구역입니다. 지금까지 쉬운 구역이었는데 이제부턴 좀 어려워집니다.”

이제까지 지나온 몇 개의 구간이 머리에 떠올랐다. 덕유산 구간과 지리산 구간은 힘들긴 했지만 멋있었다. 덕유산 구간 지나 최근 산행한 너덧 구간은 비교적 쉬웠다. 이제 새롭게 어려운 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봄날은 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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