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 시사평론가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우리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하고 북한이 통 큰 결단을 내리고 미국이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한반도의 정세는 한편의 드라마처럼 급반전되었다.

그 과정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제까지 국제사회에 알려진 김정은은 ‘잔혹한 독재자’ 그 자체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독재자, 무자비한 공포통치를 하고 있는 위험천만한 인물로 김정은은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김정은은 미치광이(maniac)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김정은이 미국 본토를 향해 핵버튼을 누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니 세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김정은이 전혀 다른 인물로 세계에 모습을 나타냈다. 공개된 자리에 등장하여 얘기를 나누는 그는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전해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방북 결과를 놓고 보면 김정은은 매우 합리적이기도 하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남측의 어려움 잘 알고 있다, 이해한다”면서 우리 측이 요구하던 6개항을 수용하는가 하면, 4월에 실시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이해한다고도 했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문 대통령이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까지 했다. 더 이상 일방적인 주장이나 요구를 하지 않고 우리 측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결정들을 내놓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김정은이 달라진 것일까. 우리가 알던 김정은이 허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듯이 위장 평화전술일 뿐일까.

물론 우리는 이를 정확히 판단할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장성택과 김정남 죽음의 진상과 사연이 무엇이었는지, 김정은의 통치 이래 정치적 이유로 처형당한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는 확인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지난 정권 아래에서 김정은을 둘러싸고 무성했던 많은 설들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장차 검증과 확인이 가능한 때가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 김정은이 과소평가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고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고 있다. 그 고비마다 예사롭지 않은 전략적 구상과 행보를 읽을 수 있다. 핵무기로 감히 미국을 위협하는 배짱을 보이면서도 미국과의 전쟁을 어떻게든 피하여 파국으로 가지 않으려는 노련함도 보여왔다.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이 만들어가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들을 ‘미치광이’라 부르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이제 북한의 지도부를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인식하고 판단할 때이다. 김정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는 일이다. 핵무기를 개발한 것도, 핵무기 완성을 선언하고는 미국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화를 제안한 것도 모두 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서 비핵화의 조건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받는 일이 될 것임도 분명하다. 어떤 나라든 그 정권이 자신의 체제를 지키는데 전력을 쏟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광경이다. 그 과정을 굳이 악마와 천사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며 평가하는 것은 그리 이성적인 태도는 아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김정은이 적어도 미치광이는 아닌 것 같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대결해온 북한의 지도자가 제 정신이 아닌 인물이었다면, 북한의 체제가 지금처럼 결속하고 유지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파국 직전의 고비에서 국면을 주도하는 능력을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혹여 라도 김정은을 띄워주는 의미로 해석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앞으로 남북대화, 북미대화를 본격적으로 해나가야 할 상황에서 우리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대화의 상대방을 미치광이나 악마로 생각하는 한, 협상은 불가능해진다. 상대방이 악마와 같은 존재라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필요한 것만 얻어내고 합의된 약속은 지키지 않을 것이 뻔한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로의 이해관계와 입장은 다르더라도, 상대방을 합리적인 주체로 간주할 때 대화의 상대로 존중할 수 있고 상생의 길을 찾는 협상이 가능하다. 지난 정권에서 북한에 대한 대결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과장된 내용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사실에 맞게 바로잡힐 필요가 있다. 우상을 만들어내는 것도, 악마를 만들어내는 것도, 모두 이성에 반하는 일이다.

김정은은 북한 체제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려는 북한의 지도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 신화도, 악마 만들기도 아닌, 합리적 이성의 사고로 그를 바라보고 판단할 일이다. 이념에만 갇히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전) SBS, EBS, BBS 라디오 진행자 역임
전) KBS, MBC, YTN, CBS, JTBC, tbs 등에 고정 출연
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외래교수
전)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국일보 고정 칼럼니스트
전) 국제신문 고정 칼럼니스트 
전) 부산일보 고정 칼럼니스트
전) 시사저널 고정 칼럼니스트
전) 주간경향 고정 칼럼니스트
현) 폴리뉴스 고정 칼럼니스트

<저서>
인문학 저서로는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사우, 2017),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새빛, 2016)이 있고, 정치평론집으로는 『정치의 재발견』 (지식프레임, 2012), 『핫이슈 2017』(시사저널,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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