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한반도 정세가 격변의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북측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온 남측 대북특사단이 내놓은 ‘방북 결과 언론발표문’에는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요약하면 △4월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남북정상간 핫라인 설치, △북한 체제안전 보장 시 한반도 비핵화 의지 천명, △비핵화 문제 협의 및 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미 대화 용의 표명, △대화 기간 중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 초청 등 여섯 가지다. 어떤 수사를 써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합의들이다. 북측의 ‘통 큰 결단’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남북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모든 합의가 의미 있지만 특히 중요한 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합의는 흡사 2000년 당시의 6.15남북공동선언과 10.12북미공동코뮤니케를 연상시킨다. 두 개를 일정 합한 것과도 같다. 당시 북측은 6.15공동선언을 통해서는 통일 문제를, 10.12공동코뮤니케를 통해서는 평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승부수를 던졌다. 김대중 정부 때의 남측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풀렸으나, 정권교체기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미국과의 관계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두 수레바퀴가 한쪽만 작동하고 다른 쪽은 공회전을 했기에 전진할 수가 없었다. 북한으로서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천추의 한을 남겼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간접제의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이 핵ㆍ미사일 모라토리엄 언질만 줘도 대화에 나설 판인데 비핵화 문제까지 협의할 수 있다고 나왔으니까.

가장 놀라운 건 이러한 합의를 한 북측의 변화다. 한마디로 북측은 기존의 공식을 버렸다. 통일 문제는 남북관계에서만 다루고, 평화 문제와 핵 문제는 북미관계에서만 취급하겠다는 전통적 입장을 바꾼 것이다. 북측은 남측과, 통일 문제와 함께 한반도 평화 문제도 논의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전체를 놓고 높은 수준의 남북공조를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캐릭터를 짚을 수 있다.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남북정상회담도 남측 구역인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자는 것은 실용성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간 두 차례는 평양에서 이뤄졌기에, 세 번째 정상회담은 당장 서울에서 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중간지대인 판문점이긴 하지만 남측 평화의 집에서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게 가능하게 된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주요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의 평화 의지가 통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한반도 8월 위기설’이 치솟을 때 광복절 경축사에서 미국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울러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자며 북측의 참가를 집요하게 촉구했으며, 또 그 성사를 위해 한미 연합군사연습 일정도 연기시켰다. 남측도 한반도 평화 문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기에 북측은 이번 합의에서 그 화답으로 그동안 남측에 금기시해 온 평화 문제의 핵심인 핵 문제도 포함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문 대통령의 일관된 진정성에 김 위원장이 신뢰를 보인 것으로 평가해도 무방하다. 이제 4월말 남북정상회담이 매우 중요해졌다. 남북은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평화 문제와 통일 문제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최고 수준의 민족공조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