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칼 알혼섬은 영하 57도로 숨 쉴 때마다 입김이 올라와 금세 서리꽃이 되었다. [사진 - 이지상] 

추웠다. 그냥 추운 것이 아니고 지독하게 추웠다 코끝이 어는 건 물론이고 두툼한 장갑속의 손끝도 켜켜이 껴입은 낡은 외투 속의 심장까지도 모조리 얼었다. 영하 57도 아무리 이상기온 이라지만 바이칼 알혼섬의 한기(寒氣)는 그나마 옷 밖으로 내놓은 눈알까지도 시리게 했다. 목도리로 칭칭 동여맨 얼굴로는 숨 쉴 때 마다 입김이 올라와 금세 서리꽃이 되었다.

일행은 자연이 만들어낸 서로의 몰골을 마주하며 시베리아를 만끽했다. 혹한에 얼어붙은 맨 이마는 맨손바닥의 온기로만 체온을 회복했고 겨울 절경에 출렁거리는 가슴은 얼음 위를 질주하는 우아직(미니버스)의 덜컹거림으로만 진정시켰다. 흑야(黑夜)의 때 이른 저녁엔 둘러앉아 보드카를 외쳤고 때 이른 취기에 맞춰 스스로의 삶을 한 자락씩 읊어내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누가 물었다. “왜 대륙 입니까?”

안보 국가로 살았다. 촛불민심에 의해 정권이 바뀌면서 더 이상 분단 상권은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라고 예견 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 때 해동기(海東旗)도 아니고 진단기(震檀旗)도 아니고 치욕의 일제가 만들어낸 한반도라는 용어를 쓴 깃발을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촛불정권의 지지율이 10%나 떨어지고 여전히 빨갱이 운운 하는 정치인의 말이 뉴스의 복판을 장식한다. 북한의 참가 결정으로 더 풍성해진 올림픽은 퍼주기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전락하고 어렵사리 만들어낸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공들인 남측 선수들의 출전기회 박탈이라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린다.

“기회가 없는 자유는 악마의 선물”이라는 노엄 촘스키의 말을 떠올리면 공정한 기회란 존재하지 않았던 지난 악마의 시절을 불평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다시 그 시절 주인이었던 자들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풍경을 보며 낙담한다. 그들의 안보 국가란 더 이상 나의 안위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노력과 그로인해 쌓아질 부를 수탈해 가는 주요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시대를 절망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70년 틈만 나면 안보를 외치며 억압했던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큰 가치로 발돋움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륙에 발 딛어 보라. 지금까지 처형, 숙청, 처단 등의 살벌한 언어만 존재했던 대륙 사람들의 온화한 표정을 보고 듣도 보도 못했던 어지러운 도시이름도 몇 개쯤 기억해 보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대 자연, 전 인류를 400년 동안 먹여 살리고도 남을 자원을 품고 있는 그 대륙에서 숨 쉬어 보라.

평화는 밥을 공평히 나누는 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대륙에 밥이 있다. 당연히 대륙에 평화가 있다.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평화를 찾아 가는 일이야 말로 새로운 미래에 대한 도전이다.

“대륙의 꿈은 북한을 넘어서지 않으면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을 신뢰한다. 전쟁에 대한 공포, 양 체제의 반목으로 인한 대립, 즉 분단에서 기인한 각종 불완전 요소가 상재하는 상태에서 대륙과의 소통은 궁극적 평화의 길에 이를 수 없다.

따라서 남북이 화해 협력으로 가는 상생의 방안을 더 많이 찾아야 하고 그 길의 단초로 동해 북부선 연결이 있다. 부산에서 강릉 원산 나진을 거쳐 두만강 철교를 넘어 연해주로 가는 약 1100km의 구간은 동해의 푸른 파도에 비견될 만큼의 출렁거리는 설렘이 있지만 민족의 혈맥 혹은 ‘peace expressway’라고 이름을 붙이면 더욱 의미는 선명해진다.

거기다가 장장 9288km에 해당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의 연결을 상상하면 우리는 대륙에 발 딛고 걸을 자격이 있는 세계인이 된다. 그 평화의 길을 가로 막는 것이 북한만은 아니다. 남측의 강릉에서 고성(제진)까지 구간 104.6km도 끊겨 있다.

희망을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가 닿는 곳부터 시작해야한다.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 사업이므로 난관이 있겠지만 과감히 도전하려 한다. 강릉 KTX역에서 벌어지는 동해 북부선 연결을 위한 심포지엄으로 이론적 근거를 얻고 문화제를 통해 힘을 받으며 남북 철도 연결을 통한 진정한 평화의 길에 머리끈 동여매고 나서려 한다.

취기어린 강의가 짧지 않게 이어졌고 그때 누군가 잔을 들며 외쳤다. “남북 철도 연결 우라!(만세!)”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우리의 밥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이익이 눈앞에 있음에도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역사의 소명을 등지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 말에 고무받아 다시 건배. 영하 57도의 바이칼은 결국 대륙을 소망하는 일행들의 가슴까지 얼리지는 못했다.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는 노래하는 사람

청년문예운동의 시기를 거쳐 노래마을의 음악감독.민족음악인 협회 연주분과장을 지냈고, 다수의 드라마.연극.독립영화 음악을 만들었으며 98년 1집 "사람이 사는마을"2000년2집"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2002년3집"위로하다.위로받다"2006년 4집 "기억과 상상"등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2010년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를 출간했다.

현재 시노래 운동"나팔꽃"의 동인으로 깊이있는 메시지를 통해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음악을 지향하고있으며 성공회대학교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사)희망래일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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