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된 ‘쌍중단’ 굳혀 본격 대화국면 열어야

한미당국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한미연합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는 것도 남북대화가 오랜만에 재개되고 북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상정하기 어렵다. 이로써 한미연합연습과 북핵 미사일 실험의 동시중단을 의미하는 ‘쌍중단’이 현실화된 것이다.

문제는 이 쌍중단이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한미당국이 연기된 한미연합연습을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실시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화의 기운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전쟁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미 간 불신의 가중으로 사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올림픽 이후 사태의 악화를 막고 대화국면을 지속‧확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 관련당사국들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대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한미당국은 ‘연기’된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을 ‘중단’해야 한다. 합법 운운하는 기만적 언사를 걷어치워야 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최대 규모의 공격적 연합연습 자체가 유엔헌장(2조 4항)이 금지하는 ‘무력의 위협’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북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북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휴전선 인근에서 수십만 병력이 참가하여 남한을 점령하는 연합연습을 벌인다면 한미당국은 어떨지 역지사지해 봐야 한다.

이에 상응하여 북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 한미연합연습을 비롯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한반도 전쟁위기의 근본원인이라 해도 북의 핵미사일 실험이 이와 맞물리면서 정세를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2016년 쌍중단을 정식화하기 전에 북이 먼저 2015년 1월에 이를 제안한 것 아닌가.

쌍중단은 북미양국이 상대방에 대한 당면한 안보 위협을 동시에 거둠으로써 서로에 대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지속되어야 할 조치이다. 쌍중단의 지속, 이것이 대화국면 지속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다행히 남북 대화에 이어 북미 양국 간 대화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으로 보인다. 북에 대해 가장 강경한 발언을 일삼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림픽에 대해 훌륭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남북대화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가 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그 징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이 함께 협상 의제에 올라야

북미양국 사이의 본격적인 협상은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가? 여기서 관건적인 문제는 어떤 사안이 협상 의제에 오르는가 하는 점이다. 의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협상은 시간이 문제일 뿐 거의 절반은 성공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지려면 쌍방의 요구가 함께 의제에 오르는 것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수십 년 동안의 적대관계로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고, 지금도 양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으며, 객관 정세로 볼 때 한쪽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북에 대해 선 비핵화를, 북은 미국에 대해 선 평화협정을 요구하고 있다. 북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는 평화협정 체결 없이 체제의 생존을 걸고 개발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북이 수없이 반복해온 얘기다. 반면, 북의 60년이 넘는 줄기찬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자국 패권 유지를 위해 거부해온 미국도 북핵 포기 없는 평화협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북핵을 인정할 경우 동북아 핵도미노 현상을 피하기 어렵고 그럴 경우 미국의 세계 지배권의 근간인 핵패권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첨예한 대립상태에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통해 한반도의 핵대결과 적대관계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따라서 북미양국의 핵심 요구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가 함께 협상테이블에 오를 때 협상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화 평화협정 동시병행(쌍궤병행)이 필요한 이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그로 인해 야기된 한반도 핵문제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핵심 요인이고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해서 해결할 수 없다. 북미 간 적대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미국의 대북 핵공격 위협을 핵심으로 하는 대북 적대정책이 심화되면서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제 역으로 한반도 핵문제가 북미 간, 남북 간 적대관계를 심화시키고 전쟁위기를 증폭시키며 사드 배치를 필두로 한미일 MD(미사일방어체계) 및 삼각 군사동맹 구축과 일본의 한반도 재침탈의 빌미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한반도 핵문제의 원인인 대북 적대정책을 평화협정을 통해 폐기하는 과정에서 그 결과인 북핵 문제도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한반도의 현재 상황에서 평화협정 없이 비핵화 없고, 비핵화 없이 평화협정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역사적 경험으로 보더라도 ‘쌍궤병행’은 타당성을 갖는다. 북핵 문제가 대두된 이래 당사국 간 주요 합의에는 적대관계의 해소와 핵문제가 함께 포함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합의가 포함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북미양국을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들은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정립했다. 앞으로 대화와 협상이 이뤄진다면 이 토대 위에서 진행될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 각국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쌍궤병행은 신속하고 현실가능한 문제해결 방안이다. 중국은 쌍궤병행을 주창하고 있고, 러시아도 유사한 입장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베를린 평화구상(2017. 7. 6)에서 동시 병행을 명확히 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남북 합의 법제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바 있다.

북의 경우 정부 대변인 성명(2016. 7. 6)을 통해 핵 보유 이유를 “조선반도에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나아가서 반도전역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 비핵화의 조건으로 “▲남한에 있는 미국의 핵무기들부터 모두 공개, ▲남한에 있는 핵무기와 기지 철폐하고 검증, ▲한반도와 그 주변에 미국의 핵 타격 수단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담보, ▲핵 위협 중단과 핵 불사용 확약, ▲미군 철수 선포”를 제시한 바 있다.

수소탄 실험과 화성 15형 발사 성공을 전후하여 북의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조건의 수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쌍중단 제안(이는 북핵문제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상호연관성, 이 두 사안의 동시 해결 필요성을 전제하고 있음)과 한반도 비핵화 의지 표명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 폐기를 명확히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대북정책으로 내세운 트럼프 정부는 제재와 압박만 강화할 뿐 공식적으로 자신의 양보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평화협정을 통한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북에 대해 자신의 양보안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북의 핵심적 요구인 소극적 안전보장(NSA, 핵 위협 중단과 핵 불사용 확약), 미군철수, 한미동맹 폐기를 받아들인다면 북은 기꺼이 자신의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도 전쟁을 치렀고 아직도 수교하지 않은 적대국가로부터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미국 본토 타격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경험들은, 비록 무산되었지만 미국도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조미 수교)을 여러 차례 적극 검토하고 합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94년 조미 제네바 합의에서는 북의 핵개발 포기와 조미 수교가 합의된 바 있고, 2000년 조미 공동코뮈니케에서는 ‘북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 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기로 합의한 바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가질 것”에 합의했고, 이는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에서 재확인되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평화조약을 통해 한국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조선일보, 2007. 9. 7)

2017년 북핵 미사일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미의회 보고서는 북핵 대응을 위한 7가지 군사옵션 중 하나로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조선일보, 2017. 11. 1)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병행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들을 검토하고 최근 트럼프의 태도 변화를 고려할 때 북미양국이 적극 협상에 임하고 문재인 정부와 중국, 러시아 등이 북미양국의 입장을 적절히 조정하고 조율하면 9.19공동성명 때처럼 타협점이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평화와 통일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최근 북의 수소탄 실험과 화성 15형 발사 등을 전후하여 한반도 전쟁위기가 높아지면서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리 사회 양극단에서 제기된다. 이 중 자유한국당 등 반북수구세력은 미국 전술핵무기의 재반입이나 남한 핵무장을 주장한다. 반면, 통일운동 일각은 미국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까지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물건너 갔다면서 전세계 비핵화를 주장한다.

이 양극단의 주장은 대척점에 있지만 각각 미국과 북의 힘을 빌어 한반도의 핵대결을 추구하고 그 결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멀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특히,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요원한 과제인 전세계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도, 평화통일도 전세계가 비핵화될 때까지 무한정 미루자는 매우 비주체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우리나라와 민족의 최우선적인 가치와 목표는 평화와 통일이다. 모든 것은 여기에 복속되어야 한다. 북의 핵미사일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평화와 통일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끝에 실낱같이 찾아온 평화의 기회를 온 겨레와 세계 평화애호민중의 지혜와 힘으로 현실화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특히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동맹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주권 침해와 온갖 굴욕과 피해를 당하고 있는 남한의 민중이 주인된 자세로 한반도의 핵대결을 끝내고 평화와 통일을 여는 길에 책임있게 나서야 할 것이다.

​(수정, 30일 23:46)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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