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신년사가 발표되었다. 예측했던 대로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이후, 경제 건설로의 방향 전환을 보여주었고, 그 첫 지점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선택하였다. 우리 정부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제안을 던졌고, 우리 정부 역시 이에 분명한 화답의 신호를 보냈다. 다가오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지루하게 벌어졌던 ‘평화올림픽’에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단지 ‘평화올림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한반도의 평화’까지를 바라볼 수도 있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의 신년사는 북이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분명하게 공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어쩌느냐에 따라 향후 정세가 결정되게 되었다. 이미 목격하고 있듯이, 우리 정부는 이번의 기회를 남북간의 대화 채널 확보와 한반도 문제의 논의를 위한 당국간 회담(고위급 회담)으로 화답하였다.

이에 북은 그 동안 끊어졌던 판문점 연락채널을 복구하고,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위한 실무문제를 논의하는데 동의하고 나섰다. 첫 시작은 평창올림픽 참가 문제가 되겠지만, 이를 넘어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로의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또한, 이 문제가 잘 풀린다면 당국간 회담만이 아니라 민간차원의 교류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지금까지의 단절을 극복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올림픽 기간만이라도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연기되어야 하고, 평화적 환경 마련을 위한 남북 상호간의 조치도 요구된다. 이미 밝혀졌듯이, 현행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으로 드러난 개성공단의 문제도 논의해야 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문제도 남아있다. 남북의 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이산가족 상봉의 문제도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과거의 것을 되돌려 놓는 것이지, 앞으로의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것의 창조에는 이르지 못한다. 대화가 지속되고, 협의가 깊어질수록 새로운 것, 근본적인 것으로의 발전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신뢰를 회복하고, 착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것부터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이번의 신년사와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구조’의 틈바구니에서 나름의 자율성을 추구해왔다. 그래서인지 현재 형성되어 있는 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의 과정에서 지나치리만큼 미국에 의존해왔으며, 미중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왔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이러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났으며, 그 결과 남북관계도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초창기 혼란의 모습도 여기에 연유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역대 정부의 남북관계에서의 ‘실력’은 이 구조의 틈바구니를 잘 활용하여, 우리의 자율성을 얼마나 잘 발휘했는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그 틈바구니가 만들어졌고, 이제야말로 우리 정부의 ‘실력’이 증명되어야 할 때인 것이다.

또 하나, 이번의 신년사 발표와 그 이후의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남북이 함께하면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북도 현재의 국면을 전환하는데 남을 선택하고, 남북의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북의 입장에서도 남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정세 흐름의 방향을 바꾸고, 더 멀리는 미국과의 대화 혹은 압박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우리 역시 북과의 대화 혹은 교류, 나아가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의 입지를 탄탄히 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우리 정부로서도 현재의 꽉 막힌 길을 뚫는데서 북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의 신년사,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현재의 상황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남북이 비로소 한반도 문제의 주된 행위자로 나설 수 있게 된 점이라 하겠다. 이제야말로 ‘운전석’에 착석을 하게 된 것이다.

북의 신년사 발표를 계기로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의 ‘올림픽’을 치루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넘어서야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고개를 넘어갈 것인가? 그 해답 역시 주어졌다. 바로 ‘남북이 함께’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번의 신년사 발표와 그 이후의 상황이 말해주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 교훈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예상되는 주변의 반응을 고려해도 그러하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미간의 이간질’을 경고하고 있고, 국내의 일부 사람은 ‘한미동맹’의 공조가 흐트러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나아가, 일부는 아예 ‘남남갈등’의 조장을 비판하면서 남북의 가까워짐을 경계하고 있다.

앞으로 이를 둘러싼 여론의 충돌은 불가피하며,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도 남북의 대화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자면, 이러한 여론에 휘둘려 ‘남북이 함께’라는 원칙을 포기하는 순간 남북 관계도 후퇴했고, 국내에서 여론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 남북의 대화는 미국을 향해 분명히 우리의 입장을 말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핵과 미사일 문제를 남북의 사이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남북의 대화와 관계의 개선은 북미간의 핵-미사일 협상을 위한 가장 힘 있는 중재자이자, 무시못할 촉진자의 지위를 우리에게 부여하게 될 것이다. 핵과 미사일 문제에서도 우리의 발언력이 강화되는 것이고, 한반도 운명의 당사자로서 우리의 지위를 되찾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남북이 함께’라는 원칙과 그 길 위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루하고 답답했던 남북의 관계가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는 온전히 우리에게 주어졌다. 지금이야 말로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 조금씩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실력’에 달려있다. 이제부터 현 정부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에 따라 평가받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결국 문제는 우리의 ‘실력’인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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