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의 딜레마

아킬레스는 거북이보다 1000배는 빨리 달릴 수 있다. 그런 아킬레스가 거북이와 경주를 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그 유명한 제논의 역설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이렇다. 거북이와 아킬레스가 달리기 경주를 한다. 그런데 거북이는 아킬레스보다 1000m 앞에서 출발한다. 자, 이제 경주가 시작되었다. 아킬레스는 열심히 달려 거북이가 출발한 1000m 지점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거북이는 그 동안 1m를 전진해 있었다. 아킬레스가 다시 1m를 전진하니, 거북이는 1/1000m 전진하였다. 이것이 무한반복된다면?.......아킬레스는 절대로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지독한 역설이다. 그런데 현실의 눈으로 이를 본다면 어떻게 될까?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아주 쉽게 따라잡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저 멀리 앞서 달릴 것이다.

북한의 화성-15형 발사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군사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북한 핵 시험 및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평가를 보면, 마치 무한 반복되는 아킬레스의 딜레마를 보는 듯 하다.

요지는 이렇다. 북한이 무언가 새로운 기술적 진전을 이루게 되면, 언제나 다음 단계의 기술을 거론하면서 아직 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1000km의 미사일 사거리를 보여주면, 아직 괌에도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5,000km의 미사일 사거리를 보여주면, 아직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10,000km의 능력을 보여주면, 이제는 대기권 재진입이 증명되지 못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이와 같은 식의 논리이다. 앞으로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을 보여주면, 아마도 탄두 중량이나 안정적인 제어가 가능한지를 물을 것이다.

이번의 화성-15형 발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발표에 ‘대기권 재진입’ 등의 언술이 빠져있으니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눈속임을 통해 – 탄두의 중량을 줄이거나 하는 식으로 – 사거리만을 늘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지상 실험이긴 하지만, 탄두 대기권 재진입을 위한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주장하고 있고, 김정은은 올해 8월 국가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방문하여 ‘엔진과 탄두를 생산’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개발과 실험이 아니라 ‘꽝꽝’ 생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 진실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미진할 수도 있고, 탄두를 엄청난 고열에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못했을 수도 있다. 또한, 탄두를 정확하게 안정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논의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아킬레스의 역설’이다. 북한이 얼마나 기술적 진전을 가져왔는지는 앞으로 점차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따라서 진실은 그때에 가서야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아킬레스의 딜레마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항상 문제가 있으며 종착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사실, 핵과 미사일 등의 최종 종착지는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 핵과 미사일 강국도 항시적으로 이를 현대화하고 보다 더 최신의 기술로 첨단화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을 향해서도 아직 더 나은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핵과 미사일 개발과 실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북한의 행동이 우리의 기대와 달리 점차 더 고도화되고 있고, 기술적으로도 분명 진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으며, 이를 외부에 과시하고 있다.

아킬레스의 딜레마에 사로잡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은 우리의 정책적 실패만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최근 화성-15형 발사에 따른 김정은의 “오늘 비로소 국가핵무력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케트강국위업이 실현되였다”는 언명을 결코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길지 않은 역사적인 경험만을 떠올려 보더라도 우리가 예측했던 북한의 행보는 항상 우리의 예측을 넘어서서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시기에 들어와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핵시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등은 우리의 예상 가능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소탄 시험이 그랬고, 북극성 미사일 발사 시험이 그러하였으며, 이번의 화성-15형 시험도 그랬다. 사실이 이렇다면, 기술적 문제를 앞세우면서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아킬레스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아킬레스의 딜레마가 우려스러운 이유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기술적 문제에 대한 평가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친다는 점이다. 이번의 북한 화성-15형의 발사는 북한의 전략적 행보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 한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 즉,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 쑹타오 중국 특사의 방북과 면담실패 그리고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에 대한 반발인지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새겨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제재와 압박 등의 수단으로 얻고자 했던 정책 목표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었고, 그 만큼 한반도가 불안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밤을 세우는 숙고와 최선의 모색이 앞서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제제와 압박 이외의 새로운 방식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자칫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아킬레스의 딜레마’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서는 헛되이 시간만 보내게 될 뿐이다. 바로 지금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논의를 보면서 걱정과 우려가 앞서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아킬레스의 딜레마, 얼핏 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만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지금의 북한 핵과 미사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킬레스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시간이다. 아킬레스의 딜레마에서 빠져있는 것은 바로 시간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지금의 우리를 보는 듯 하다. 시간이 결코 거북이의 편이 아닌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결코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거북이의 입장에서 아킬레스를 보고 있지 않을까? 그러는 동안, 어느 순간 저 멀리 앞서고 있는 아킬레스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아니 정확히는 우리는 더 복잡하고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대체,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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