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민심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 시기, 교학사가 발간한 한국사 교과서가 검인정 교과서로 채택됐지만 외면당한데 이어, 집권 후반기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공들여 추진했다가 정권 교체 직후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로 종결된 아슬아슬한 경험이 있다.

그만큼 국사 교과서는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고, 특히 현대사는 현 정치권 세력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만큼 민감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우리의 현대사는 ‘해전’(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계기로 강단 보수 사관 일색에서 탈피하는 계기를 맞았고, 21세기 역사의 반동이랄 수 있는 뉴라이트(신보수주의)의 등장으로 ‘재인식’(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반격을 받기도 했다.

▲ 임영태‧정창현, 『새로 쓴 한국현대사』, 역사인, 2017. 10. 448p, 25,000원. [자료사진 - 통일뉴스]

79년 첫 권이 발간된 ‘해전’이 10년에 걸쳐 6권으로 완간된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되는 시점에 재야에서 특별한 한국현대사 책이 한 권 발간돼 눈길을 끈다. 임영태, 정창현이 함께 저술한 『새로 쓴 한국현대사』가 역사인 출판사에서 지난 10월 발간된 것.

재야 사학자들의 모임인 ‘현대사연구소’ 출신인 이들은 이미 수많은 역사서들을 꾸준히 내놓으며 내실을 다져왔다.

역사 저술가인 임영태(58)는 『대한민국사 1945~2008』, 『북한 50년사』,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 등은 물론 『스토리 세계사 1~10』라는 역작에 이르기까지 대중적 역사 저술에 힘을 기울여왔다.

언론인 출신 정창현(53)은 『곁에서 본 김정일』, 『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인물로 본 북한현대사』 등 북한 관련 독보적인 저술들과 『암살-왜곡된 현대사의 서막』, 『안중근家 사람들』 등의 현대사 저작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신작 『새로 쓴 한국현대사』는 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를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 △독재와 민주, 그리고 산업화 △민주화와 평화, 그리고 통일 3부로 나누어 35장면으로 풀어냈다.

1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 시기만 보더라도 역사적 맥락 살피기와 주요 인물 배치, 꼼꼼한 자료와 사진 게재 등 오랜 축적과정 없이는 불가능한, 깊은 내공을 보여준다.

분단의 씨앗이 된 모스크바 3상회의와 미소공동위원회, 찬탁과 반탁운동 과정에서 미군정의 언론보도 조작에 관한 분명한 비판 등은 반공의 시각에 갇히지 않은 저자들의 냉철한 현실주의 사관을 보여주고, 좌우합작위원회 사무부장 권태양의 소련과 미국 탓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자체 탓’이라는 통렬한 반성문을 게재한 점은 저자들의 역사기술 자세를 웅변하고 있다.

저자들은 머리말에서도 “역설적이게도 진보 정권이라고 공격받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사회적 불평등은 더 욱 악화되었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우리 현대사의 주역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고 선언하고 있다.

▲ 해당 시기의 주요 만평과 사진, 자료와 도표 등이 매 쪽마다 가득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해당 시기 언론 만평이나 사진, 자료와 도표 등이 매 쪽마다 가득한 것은 그만큼 저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해주려는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구하기 쉽지 않은 자료들을 이렇게 풍부하게 제시한 ‘현대사 교과서’는 전무후무하다 할 만하다.

더구나 북한 현대사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손에 꼽히는 저자들은 시야를 한반도 남단에 가두지 않고 북녘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부터 김정일 시대와 남북정상회담, 김정은 시대 등을 주요 35장면에 포함시킨 것.

물론, 지면 제약 탓이겠지만 김일성 시대의 북녘 상황은 제시되지 못했고, 김정일 시대 역시 저자들의 전문성에 비해 비중이 작게 다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현대사를 이 책에서 처럼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 ‘독재와 민주, 그리고 산업화’ 등으로 다룬 책들은 많지만, 전두환 정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민주화와 평화, 그리고 통일’의 관점에서 서술한 점은 이후 현대사 서술의 큰 틀을 제시했다고 평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시대’와 ‘촛불항쟁’까지를 포함한 따끈따끈한 현대사 교과서는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35장면 중 32번째인 남북정상회담 내용 중 월간지 <민족21>과 인터넷신문 <통일뉴스>의 창간이 사진으로 실렸다는 깨알같은 사실도 다른 역사책에서 과연 찾아볼 수 있을까?

‘해전’ 이후 ‘다현’(다시쓰는 한국현대사)으로 이어지던 재야의 현대사 교과서가 한참이나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던 차에 ‘새현’(새로 쓴 한국현대사)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다. ‘새현’이 재야에서 제시한 현대사 교과서로 자리잡아 나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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