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 미국 수출 늘리기

북, 러시아, 이란을 각각 제재하는 내용을 하나의 법안에 담은 미국의 국내법이 8월 2일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러시아 제재에서 미국과 단단히 스크럼을 짰던 유럽연합이 이번에는 이 법, 러시아 제재 규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미국 하원의 표결을 하루 앞둔 7월 24일 유럽연합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법안이 유럽연합 내 에너지 기업에 영향을 줄 경우 미국에 보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경고했고, 하원 통과 다음 날에는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직접 나서 “미국이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독자 행동에 나설 수 있다” 대결 불사를 선언했다. 왜 이럴까?

미국 법안에는 “러시아의 가스관 건설 사업에 투자하거나 거기에 물자 및 기술,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업을 제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또한 러시아와 독일을 해저로 직접 연결하는 가스관 건설 사업(노드스트림2 프로젝트)이 “유럽연합의 에너지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는 대목도 있다. 미국의 장단에 춤을 추다가는 독일은 물론 유럽연합 내 에너지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2014년 크림 병합,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등 러시아의 행동에 대응하는 차원이니, 돈 보다 먼저 그 취지를 살펴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를 보자. <본심은 (법안의) 뒷문장에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에너지 수출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미국의 가스 수출을 늘리려고 러시아 제재를 이용했다는 얘기다.(경향신문. 8.3)>

값싼 러시아 가스, 2015년부터 온다더니

2008년 9월 28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가스공사와 러시아의 가즈프롬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을 거쳐 남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을 2011년 착공, 2015년부터 가스 공급을 시작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이 이뤄지면, 공급선 다변화로 가스공급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LNG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를 대량 확보해 국내 가격도 내릴 것이라는 판단이다.(조선일보. 2008. 9.30)” 그러나 공사는 이뤄질 수 없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한국가스공사는 미국 LNG를 2036년까지 연간 280만t을 수입할 계획이다. SK E&S도 2019년부터 20년간 연간 220만t의 미국산 LNG를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동행한 경제인단에 이승훈 가스공사 사장이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로는 유일하게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2024~25년쯤 공급 계약이 만료되는 1000만t 가량의 LNG 물량 가운데 상당 부분을 미국산 LNG 수입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중앙일보. 7.13)”

얼마일까? 국제 LNG 시세에 비해 평균 20% 이상 저렴한 러시아의 PNG보다 과연 얼마나 비쌀까? 가스공사가 가격을 비공개하는 까닭에 알 수가 없다.

미국의 문재인 정부 깨알 견제

문재인 정부 이후 미국의 남북 관계 깨알 견제 사례다. 5월 22일 문정인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조선일보와 만나 “금강산에 입장할 때 관광객들에게 개별로 입장료를 받으면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금강산 관광 재개 의지를 강력히 밝히자, 5월 26일 애덤스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이 VOA(미국의 소리) 인터뷰를 통해 "모든 관광객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그 관광비용이 무엇을 지원하게 될지 잘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한다" 반대 목청을 높인다.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12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개회식에 보낸 영상 기조연설에서 “전쟁 위협이 사라진 한반도에 경제가 꽃피우게 하겠다”며 남북경제공동체를 언급하자, 6월 2일 미국은 갑자기 대북 제재를 발표한다.

“미국 정부가 1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해 초강력 추가 독자제재를 발표했다. 지난 3월 이후 두 번째다(...) 한국의 새 정부에 지금은 북한에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란 지적이다.(중앙일보. 6.2)”

6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북의 핵, 미사일 추가 도발 없으면 조건 없이 대화” 발언에 대해서는 15일(현지시간)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기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 한다” 단칼에 자른다. 사실 이 발언은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모든 핵 프로세스와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때까지는 아니다.(5.16.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내용상 같은데도 이런다.

6월 16일(현지시간) 문정인 특보가 미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두 가지를 제안했다"며 "첫째는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과 논의를 통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으며, 미군의 전략 무기 배치를 축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북한의 비핵화를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연계시키는 것"이라고 발언하자, 미국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6월 19일 연합뉴스다. <시어도어 마틴 주한 미 2사단장(육군 소장)은(...) “한미 연합훈련이 더 필요하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현 수준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 가능성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또 있다. <“군 관계자는 20일 B-1B 2대가 오늘 한반도 상공에서 공군 F-15K와 연합 훈련을 한다”고 밝혔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축소’를 언급한 시점에 나온 미국의 ‘무력 시위’라는 해석이 나온다.(조선일보. 6.20)>

대북 제재의 진짜 과녁은?

이런 촘촘함 끝에 나온 것이 8월 2일의 ‘북, 러시아, 이란 제재법’에 포함된 대북 제재 항목이다. “북한에 원유 및 석유제품 판매, 북한 노동자 고용, 북한 선박의 입항, 북한 온라인 상품 거래, 북한의 식품·농산품·어업권·직물의 구매나 획득 등”에 대하여 미국이 제재를 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유엔안보리가 5일(현지 시각) 채택한 대북 제재결의 2371호에는 북에 대한 원유 공급과 북 노동자 고용 금지 조항이 없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독자 제재를 반대한다. 그렇다면 이 법의 진짜 과녁은 어딘가?

개성공단을 재개하려면 북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며, 금강산에 다시 가려면 북 선박이 남에 입항해야 한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한국의 문재인 정부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북한 문제를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을 재개한다면, 한국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조선일보. 5.29)”

북핵과 남북관계를 종속시키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수중에 핵무기 카드를 갖고 있는 게 결국 많은 억지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봐 왔다(7.22.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연합뉴스. 7.23)”

북과 미국이 서로 억지력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 이것이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의 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북의 핵, 미사일 고도화 임시 중단과 미국의 한미합동군사훈련 임시 중단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내일이라도 북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묶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미국의 영역이다.

그래서다.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일에 우리의 운명을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으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다.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전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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