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가 동북아 정세의 지각변동을 불러오고 있는 가운데, 미국발 ‘전쟁’ 발언이 흘러나오고 보수언론이 이를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전형적인 ‘북한팔이 안보장사’가 횡행하고 있다. 어떤 전쟁도 반인륜적 범죄이자 죄악일 따름이다.

북한은 지난달 4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사거리 1만km 내외로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게 된 것. 아직 확인이 더 필요한 기술적 사항들도 남아있지만 큰 틀에서 북한이 자체 개발한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가격할 수 있는 공격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즉각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고 나섰고, 특히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1일 “이것을 멈추기 위해 전쟁이 있어야 한다면, 그곳에서 벌어질 것”이고, “만일 수천 명이 죽는다면, 그곳에서 그들이 죽는 것이지 이곳에서 죽는 게 아니다. 트럼프는 내 얼굴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공식적으로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1일 브리핑을 통해 “우리가 어느 시점에 마주 앉아서 미래에 대해 대화해야 한다는 점을 그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대화를 언급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2일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역내 동맹과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을 경제‧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게 궁극적으로 보다 생산적”이라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언론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전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하고 미국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란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미국이 검토 중인 ‘모든 옵션’ 중에 당연히 ‘전쟁’도 포함된다며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다르다. 미국이 북한의 ‘화성-14’형 발사에 이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두 차례 북한의 ICBM 시험발사 성공으로 미국 본토가 북한 핵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위기의식 발로인 셈이다.

“그곳에서 그들이 죽는 것”이 아니라 ‘이곳’ 미국 본토도 이제 북한의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간 것이 객관적 사실이 됐다. 핵탄두로 미 본토를 공격하면 그 파괴력은 상상하기 어려운 재앙적 수준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북한이 핵무기와 ICBM으로 무장하기 전에도 수십년간 미국은 ‘모든 옵션’ 중 북한과의 전쟁을 포함한 군사적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했지 정작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곳’에도 주한미군과 관광객, 외교관, 상사원 등 수십만의 미국인이 북한의 사정권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정기적으로 주한 미국인 20만명을 일본으로 피신시키는 ‘비전투원 소개훈련’(NEO)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열도가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에 놓인 지도 오래됐고, 주일미군과 일본 거주 미국인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 소개시킨 미국인까지도 고스란히 북한의 사정권에 놓여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한국정부와 중국정부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반대하는 것도 미국이 ‘모든 옵션’ 중 전쟁 카드를 꺼내들지 못한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한반도의 역사성과 지정학적, 군사적 역관계를 아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이라면 이같은 분명한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동맹’을 자처하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그곳’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흘리고 한국의 언론인들은 그것을 대서특필하는 서글픈 현실을 오늘도 목도해야 한단 말인가.

촛불로 적폐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부를 세운 국민들은 모든 적폐를 불태울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 곳곳의 적폐는 건재하고 있고, 특히 북한을 명분삼은 ‘안보팔이’ 적폐는 아직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미국의 테이블 위에서도 이미 치워졌고,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될 최악의 범죄이자 죄악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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